부활하신 예수: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심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영한 교수]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48)

▲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장사된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죽음이 그를 묶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의 독특성은 그의 대속의 죽으심에만 있지 않고 그의 다시 살아나심에 있다. 그가 다시 살지 못하셨더라면 그의 죽음은 우리의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빛 속에서 그의 죽으심은 다시 조명되어, 그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사(四)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은 가장 명료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1. 돌 무덤에 안장(安葬)됨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셨다. 저물었을 때에 제자인 아리마대 요셉이 와서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屍身)을 달라고 요구한다(마 27:59). 마가는 요셉에 관하여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막 15:4)라고 언급하고 있다. 마태에 따르면 그는 예수의 한 제자이다. 당시 치욕의 극형을 당한 자의 시체를 달라는 것은 제자됨의 용기가 없는 자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부자로서 당시 사회에서는 안정된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올 수 있는 불이익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예수의 시신을 요구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요 19:38).

복음서 저자 요한은 밤에 예수의 사역 초기에 그를 찾아와서 중생의 도리를 배우고 돌아갔던 니고데모의 조문(弔問)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요 19:39). 백근은 33Kg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으로서 망자(亡者)에 대한 탁월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로 보아 니고데모는 예수를 만난 그날 밤 중생을 경험했고, 유대 관원으로서 예수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는다(마 27:60). 예수는 돌 무덤에 안장되었다. 제자들의 관점에서는 모든 일이 끝났다. 제자들은 자기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운동은 그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행하신 것이다. 그것은 죽으신 예수께서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심이다.

2. 안식일 후 첫날의 사건

여인들은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된다. 마태는 다음과 같이 부활 사건을 전해주고 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다(마 28:1).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마 28:2).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무덤에서 일어난 사실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급히 가다가 살아나신 예수를 만난다.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8-10).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가장 먼저 만나고 체험하는 영광을 얻는다. 여인들은 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예수 부활 사건의 첫 증인이 되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3. 빈 무덤의 사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부활사건의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때 경비병들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린다(마 28:11).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빈 무덤에 대한 허위 해명을 유포하도록 뇌물을 준다: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마 28:13-14). 로마 군인들은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밤에 도둑질하여갔다는 허위 사실이 유포되어 있다(마 28:15).

마가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5-6).

누가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눅 24:1). 이들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했다(눅 24:2-3).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다(눅 24:4).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일러준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눅 24:5-7). 여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눅 24:8)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린다(눅 24:9).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었다(눅 24:10).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눅 24:11),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인다. 그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간다(눅 24:12)

요한의 증언은 마태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자세하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본다(요 20:1). 이 여인들이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알린다(요 20:2).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달음질하여 가서 확인한다(요 20:3-4). 다른 제자가 먼저 도착하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다(요 20:5).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요 20:6),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다(요 20:7).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부활 사실을 믿었다(요 20:8).

4. 예수 부활 사건의 세 가지 특징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닌 실재적으로 일어난 경악의 사건이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의 부활 사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사실은 제자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요 20:11),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요 20:12). 여기서 마리아는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그가 부활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천사들이 묻는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한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 20:13).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천사들이 부활의 사실을 설명해준다. 여자들은 두려워하여 얼굴을 땅에 댄다. 두 사람이 여인에게 말한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24:5-6).

둘째, 몸의 부활이었다. 예수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다.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사도와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인 가운데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제자들은 “이 말을 할 때에” “친히 그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 24:36) 하시는 예수의 나타나심을 보고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다”(눅 24:37).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는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 예수는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제자들이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긴다”(눅 24:40). 이럴 때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눅24:41)고 물으신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에게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예수께서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신다”(눅 24:42-43). 영은 신체가 없으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생선을 잡수신다. 이것은 그의 부활이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인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 신앙의 눈으로만 알 수 있다. 요한의 기록은 이 사실을 명료히한다. 무덤 속에서 마리아는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했다 (요 20:14). 예수께서 말을 건네신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부탁한다: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이 때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신다. 마리아가 알아보고 대답한다: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요 20:16). 막달라 마리아는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이른다(요 20:18).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예수와 동행했는데 처음에는 일반 동행인으로만 알고 대화한다. 그런데 나중에야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도 떼어 저희에게 줄 때 비로소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눅 24:30). 그래서 이들은 서로 말한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5. 성경의 예언대로 살아나심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는 예기치 않은 사실이었으나 이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적 경륜 속에서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사실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 예수 부활을 믿었으나,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 20:9)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일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엠마오로 내려 가는 글로바라 하는 제자와 또 한 제자는 낯선 이와 동행한다. 이 낯선 이는 부활한 예수였다. 그러나 이들은 눈이 가리워 자기들이 동행하는 자가 예수인 것을 알지 못한다. 글로바는 동행자에게 근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중대한 일에 대하여 알려준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19-21). 이들은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그에 대하여 걸었던 메시아적 기대가 빚나가게 된 것에 대하여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여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들만 나타남을 보았고,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빈 무덤에 가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눅 24:22-24). 이에 예수는 이들에게 말씀하신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그리고 예수는 다시 제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이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성경을 풀어주신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5-47).

6.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의 죽음은 한 의인의 숭고한 죽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죄와 죽음의 권세는 여전히 인간 사회를 지배했을 것이다.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더라면, 예수의 죽음은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부처나 마호메트의 죽음과 같았을 것이다. 이들 비기독교 종교들의 교주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하여 아무런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다. 코란은 지옥과 낙원에 관하여 말하나 이것은 많은 부분 기독교의 내용을 표절 내지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코란은 마호메트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그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는 특별히 죽음과 대결하셨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는 종교의 본체(本體)이다. 모든 종교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겨났는데 이들 종교들은 이 문제를 사실상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종교들은 이 본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들 교주들은 다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음을 죽이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셔서 음부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8-20). 이 베드로후서의 구절은 신약에서 단 한 번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난 후에 음부에 내려가셔서 옥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하여 음부에서 노아시대에 불순종하여 죽음을 당한 영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음부에 내려가신 예수는 육체로는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하였으나, 영으로는 그 속에 계신 신성으로 음부에 내려가는 일반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분이었다. 예수는 죽음의 세계에서 망자(亡者)의 신분이 아니라 산 자의 신분을 가지시고, 지상에서와 같이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그에게 묵시로 나타나신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하-18).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그러나 이제 예수는 다시 살아계신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나 곧 산자라.” 나사렛 예수의 본성은 우주의 처음이요 나중이며, 생명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음부에 갇힐 수 없고, 죽음의 세력에 의하여 감금될 수 없다.

7. 자연적 우주과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신 주

예수의 부활은 우리 인류에게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셨다. 역사는 희랍인이 표상(表象)하는대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영겁회귀의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향적이며, 종말이라는 대단원이 있다. 그리고 죽음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질서,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우주질서의 어두운 부분에 속할 뿐이다. 죽음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대한 우주과정의 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해야만 빛이 지배하는 생명의 세계에 도달한다. 삶과 죽음이란 우주과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다.

이러한 우주의 자연적 과정을 너머서서, 성경은 부활 사건을 통하여 자연적 우주의 과정을 넘어서서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부활은 이제 죽음이 극복된 영원한 삶의 세계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예시(豫示)해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3-14). 부활의 생명이란 이러한 삶과 죽음의 과정을 너머서는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의 세계통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활은 죽음이 죽은 곳이며,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다. 하나님 자신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인류에게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실제로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 단지 영혼의 지속함이 아니라 몸이 다시 살아나셔서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영생의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영혼의 재생이나 환생이 아니라 영과 몸의 부활이라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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