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왕이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의 내용이 희한했는데 자신의 이빨이 하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다 빠져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진 왕은 나라의 유명한 해몽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자신이 꾼 꿈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해보라고 하였습니다. 해몽자가 해석하기를 그 꿈은 왕의 친척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다가 마침내 왕만 남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분이 상한 왕은 해몽자를 죽여 버렸습니다.
왕은 다른 해몽자를 불러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새로 불려온 해몽자는 이전의 해몽자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한 채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은 그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용을 다 들은 해몽자는 왕에게 해석해주기를 왕이 집안의 모든 친척들보다 오래 살아서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되는 내용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무척 기뻐하면서 해몽자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의아한 마음이 듭니다. 첫번째 해몽자의 해석이나 두번째 해몽자의 해석은 사실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같은 내용의 말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말한다 해도 표현 방식에 따라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고 기분 좋게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은 말로 인해 좋아지기도 하고 얽히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말을 지혜롭게 한다고 하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을 잘 해서 큰 유익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말 한 마디 함부로 한 것으로 인해 평생 원수처럼 지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이나 사건을 겪었을 때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좋은 쪽으로 해석할 때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사건 자체보다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인데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는지요?
너무나 유명한 에디슨은 청각장애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에디슨의 청각에 장애가 생긴 것은 소년 시절 신문을 팔다가 기차에서 굴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팔아 돈을 버는 에디슨이 기차의 한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실수로 불을 내었고, 화가 난 차장이 에디슨을 밀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자신의 청각을 망가뜨린 차장을 향해 원망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실험하고 또 실험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위대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에디슨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연구하기 힘들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딴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얼마나 해석이 긍정적입니까?
우리는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는지 모릅니다. 틀린 부분, 잘못된 부분, 모자란 부분을 잘 지적하는 것이 예리한 안목을 가진 것처럼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정적인 해석과 말들이 홍수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은 질책이 아니라 칭찬이며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것은 부정적일 때가 아니라 긍정적일 때입니다. 타인을 향해서도, 자신을 향해서도 상황과 사건에 대해 밝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자신과 타인 모두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을 향해 이를 갈며 살았다면 불행했을 요셉이지만 하나님이 뜻이 있어 그렇게 하셨다는 해석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 되었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