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리더십 50인] 고시영 목사 편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이고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이끌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결속력 강한 성도들만 있다면 비록 그 수가 적다 할지라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50을 넘은 나이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 먹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고정관념보다 신념과 목표가 앞서는 사람에겐 이것도 예외일 수 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부활교회 담임 고시영 목사는 11년 전, 나이 쉰 넷에 이 교회를 개척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몇 명만 있다면…, 비록 어렵더라도 이겨내리라.” 늦은 나이에 그가 개척을 결심하게 된 동기다.
개척이 으레 그렇듯이 고 목사도 건물 지하를 임대해 목회를 시작했고 온갖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며 지금까지 하나님만 의지해온 사람이다. 이제 그 기도와 노력이 결실을 맺어 부활교회는, 적어도 교회 살림 걱정하지 않고 베풀 수 있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 길 가운데 “내가 가진 영적 가치를 지지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고 목사를 이끈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됐다.
고 목사가 교인들과 공유하는 영적 가치란 그 어떤 거창한 철학적 명제가 아닌, 복지라는 너무도 일반적인 가치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일은 모든 교회가 다 하는 것이기에, 한 마디로 특별할 것이 없다. 차별적 가치에 이끌려, 고 목사 말대로 그와 동거동락할 동지가 쉽사리 생기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요즘같은 특성화 시대에 교회라고 예외일 순 없지 않은가. 이 논리에 대한 고 목사의 항변은 이랬다.
“원래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모든 사람이 너무도 잘 알아서 쉽게 그 소중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치의 실현에 얼마나 진정성을 담느냐 하는 것이죠. 진리가 구호가 되고 형식에 머무를 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고 목사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이 복지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일관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가 추구하는 복지라는 가치는 구체적으로 ‘교인 복지’를 말한다. 이 교인 복지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가 비신자들을 돕는 것이 아닌 교회가 교인들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고 목사의 목회에도 다소 차별성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좀 막연할 때가 있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그 분의 위대한 능력을 말하지만 그것이 잘 와닿지 않을 때가 많고, 또 입으로 믿습니다라고 하면서도 그것이 입버릇처럼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을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교인들이 병에 걸리거나 직장을 잃고, 자녀들 학비 문제로 고민이 있으면 부활교회는 그러한 교인들의 어려움을 교회의 어려움으로 떠안는다. 정신적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재정적 어려움도 함께. “그래서 교인들에게 아, 이 교회는 나를 버리지 않는구나, 정말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수평이동이니 뭐니 걱정할 필요가 없죠.”
고 목사가 이처럼 교인 복지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유는 과거 어떤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자신이 알던 한 청년이 죽을 운명에 처했는데 그가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2살 난 아들의 장래를 더 걱정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죽어 천당 가지만 이 세상에 남은 저 아이는 아빠 없이 홀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걱정 때문에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하는 청년을 보면서 고 목사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돌아보니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고 목사는 말했다. 교인 복지라는 자신의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든든한 교인들이 생기고 어느정도 목회의 자리가 잡혔다는 점에선 성공이지만, 교인들 하나 하나를 만나 그들의 영적 필요와 가슴 깊은 아픔들을 보다 더 경청하지 못했던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이다. 앞으론 교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데 집중하겠다고 고 목사는 말했다.
“시골서 어렵게 목회하시는 분들이 모두 멘토”
교인들과 함께 가치를 공유하며 단결력이 강한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고 목사의 신념인만큼 리더십에 대한 그의 생각도 남달랐다. 고 목사는 일단 교역자가 세워지면 적어도 2년간은 간단한 권면 외엔 간섭을 하지 않는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목회철학 때문이고,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그의 ‘실패 철학’ 때문이다.
“교역자가 어떤 일에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간섭한다면 교회가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배우게 되는데, 그러자면 비록 실패를 해도 믿고 일을 계속 맡기는 것이 중요하죠. 교역자들에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을 믿고 시도해보라고 권면해요.”
고 목사가 최근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힘을 쏟는 일은 네 가지다. 병과 남자, 아이들, 그리고 신학교육이다. 부활교회는 1년에 두 번, 몸이 아픈 교인들만을 위한 모임을 대대적으로 갖는다. 고 목사는 몸이 아픈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동지의식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곧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고 목사는 남성들의 성경공부에 심혈을 기울인다. 여성의 비율의 높은 한국교회 특성상 남성들만을 위한 목회에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이 고 목사의 판단. 그래서 여성들에 비해 이성적 특성이 강한 남성들에게 강해 위주의 성경공부를 마련해주고 있다.
세번째 고 목사의 관심은 주일학교에 있다. 주일학교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 고 목사도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 고민을 거듭해왔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바로 아이들은 아이들이 전도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아이들 또한 또래의 말에 가장 솔깃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 목사는 몇 명의 신실한 아이들만 있으면 주일학교의 부흥은 시간문제라고 믿는다. 문제는 그러한 소수의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인데 결국 그것 또한 어른들의 신앙에 달려있는 것이기에 고 목사는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말했다.
고 목사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신학 교육이다. 고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로 교인 수 감소와 교회 세속화, 믿음의 질적 저하, 미성숙한 목회자들을 꼽는데 이 중에서 가장 빨리 개선할 수 있는 것이 미성숙한 목회자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곳이 신학교이기에 신학 교육만 제대로 될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성숙한 목회자들로 인해 아주 밝을 것이라는 것. 고 목사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겨 오는 10일 서울장신대학교 이사장에 취함한다. 처음 이 자리를 제의받고 두려운 마음에 망설였지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
그에게 끝으로 멘토가 있느냐 물었더니 “시골 교회나 도시의 개척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하시는 모든 목회자분들이 다 멘토”라고 했다. 그가 직접 개척이라는 길을 걸었기에 누구보다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또한 그들에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초심’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고 목사는 자신 앞에 놓인 본지 신문을 한참 뜯어 보더니 고개를 들어 기자에게 말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 많이 실어주세요. 그래서 혹시 제가 초심을 잃으면 이 신문 보고 다시금 날 돌아볼 수 있게”
고시영 목사는
성균관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거쳐 서울장신대와 동 신대원을 졸업했다. 장신대 총동문회장 겸 동문 발전위원장, 지역신학대학교 총동문연합회 회장, 신촌선교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오는 10일 서울장신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