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뱅의 ‘종교 개혁’ 이전, 시대 앞선 개혁자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프랑스 종교 개혁 발자취 17] 스트라스부르 2

깔뱅의 개혁자의 길을 준비하는 르페브르와 후셀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에서 50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에서 50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1525년부터 모(Meaux) 그룹 개혁자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르페브르와 제하드 후셀(Gérard Roussel)과 미셀(Michel d'Arande)은 스트라스부르로 피신하여 까삐토(Wolfgang Capito)의 집에 머물게 된다.

모 그룹 개혁자들이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할 당시, 까삐또와 마틴 부쳐(Martin Bocuer), 에디옹(Gaspard Hédion)에 의한 개혁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들의 저서는 모 그룹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또한 시지스몽드(Sigismond de Hohenlohe) 백작은 스트라스부르의 최고 행정가로, 프랑수와 1세의 누이로 개혁 사상을 갖고 있던 마흐규리트와 서신을 왕래할 정도로 친분을 갖고 있었다. 그 덕택에 피신한 모 그룹의 사람들은 그의 강력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프랑스 위그노 난민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여왕 마흐규리트는 큰 감명을 받게 되며, 당시 왕에게 감금되어 있던 시지스몽드의 사람들을 금화 20 에쿠스(écus)를 주어 석방시킨다. 시지스몽드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그의 사람들에게 그녀가 갖고 있는 신앙의 진리의 길을 따르도록 독려하게 되며, 또한 시지스몽드도 스트라스부르의 종교 개혁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가명으로 숨어 있던 르페브르를 비롯한 피난민들의 정체는, 곧 독일 개혁자들과 옛 제자들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르페브르는 후셀과 달리 명성을 거절하고 공개적 사역은 하지 않은 채 사적으로 그곳 개혁자들과 만남을 갖고 있었고, 바젤로 가서 에라스무스를 비롯한 다른 개혁자들을 만난다. 르페브르와 후셀을 통해 프랑스 위그노들의 어려운 상황들은 스트라스부르 개혁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난민 위그노들을 수용하며 돕기 위한 활동이 시작된다.

깔뱅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적극적으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앞서 이곳에 온 모 그룹 개혁자들의 활동 덕택이며, 깔뱅이 학업을 위해 위그노 교회 목회를 거절할 때도 피난민들의 형편을 잘 알고 있던 부쳐와 까삐또가 설득에 나서게 된 것이다.

스트라스부르의 종교 개혁 이전 개혁자들

1520년부터 나온 루터의 개혁주의 사상의 글들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인쇄되어 읽히고 있었다. 이 글들은 1521년부터 스트라스부르 책임자가 된 시지스몽드를 루터의 사상에 매료되게 했고, 스트라스부르를 개혁 도시로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하였다.

먼저 그는 사제 마티우 젤(Mattthieu Zell)을 스트라스부르 성당에 청빙하여 복음적 설교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함으로, 젤은 루터 방식의 설교를 하게 되며 1523년 2월 16일에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미사를 처음으로 행한다. 그 후 주교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자, 그는 Saint Pierre le vieux(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에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첫 복음주의적 목사가 되어 1548년까지 활동한다.

그 후 시지스몽드는 1523년 가을에, 인문주의자이며 훗날 이 도시의 개혁자로 활동하게 되는 가스파 에디옹(Gaspard Hédion)을 설교자로 청빙하는데, 그 역시 개혁자가 되고 만다. 주교와 참사원들의 별다른 저항이 없었기에, 신속하게 개혁을 수용하고 개혁자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1518년 대성당 옆 작은 성당에서 마티우 젤은 루터식 설교로 바울 서신과 로마서를 강해하기 시작했고, 상인들과 장인들로 가득 차 공간이 작을 정도였다. 1529년 성당은 복음적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150년 동안 사용되다가, 루이 14세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가톨릭 교회로 돌아가게 된다.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다른 성당들과 달리 성상은 없고 성경적 내용으로 현관이 가득채워져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1518년 대성당 옆 작은 성당에서 마티우 젤은 루터식 설교로 바울 서신과 로마서를 강해하기 시작했고, 상인들과 장인들로 가득 차 공간이 작을 정도였다. 1529년 성당은 복음적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150년 동안 사용되다가, 루이 14세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가톨릭 교회로 돌아가게 된다.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다른 성당들과 달리 성상은 없고 성경적 내용으로 현관이 가득채워져 있다.


▲천지 창조로부터 사도들의 순교까지를 자세히 조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지 창조로부터 사도들의 순교까지를 자세히 조각으로 설명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이러한 개혁을 위한 외로운 투쟁에 까삐토와 마틴 부쳐(Martin Bucer 1491년-1551년)라는 큰 동역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설교가이자 Magnificat의 작곡가이며, 그레고리안 성가를 독일어로 옮긴 뽈리오(Symphorien Pollio)도 성 에티엔느 교회의 목사가 된다.

당국은 부쳐와 까삐토를 청빙하여 여러 곳에서 성경을 공적으로 강해하게 하였고, 말씀의 사역자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자 예배의 개혁이 뒤따랐다. 또한 개혁자들은 교황에 의한 인간적인 제도들을 타파하기 시작하였고, 결혼은 하나님의 질서로 인간의 제도로 깨뜨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제들인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

특히 마틴 부쳐는 1521년 수도사를 포기하고 사제로 활동하던 중, 1523년에 수녀였던 엘리자베스 실브레즌(Elisabeth Silbereisen)과 결혼하게 된다. 루터보다 먼저 결혼을 단행한 것으로, 개혁자 가운데 사제로서는 첫 결혼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Spire 주교에게 파문을 당하고 출교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사제의 결혼이 파문을 당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만은 아니었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비밀히 결혼한 사제들도 있었고, 특히 그 당시 교황 가운데서도 스트라스부르 출신 Pius II(1458–1464)를 비롯한, Innocent VIII (1484–1492), Alexander VI(1492–1503), Julius II(1503–1513), Clement VII(1523–1534), Paul III(1534–1549), Gregory XIII(1572–1585) 등 많은 교황들이 비밀히 결혼하여 자녀들을 갖고 있었다.

▲수녀 엘로이즈와 사제 삐에르 아벨라르의 무덤. 엘로이즈는 자신의 가정 교사이자 당대 유명 신학자인 사제 아벨라르의 아이를 갖게 되고, 결혼과 출산 후 남편 아벨라르가 만들고 원장으로 있던 빠라끌레뜨(Paraclete) 수도원에 들어가 여자 수도원 원장이 된다, 뻬흐 라쉐즈 무덤에 두 사람이 함께 묻혀 있다.

▲수녀 엘로이즈와 사제 삐에르 아벨라르의 무덤. 엘로이즈는 자신의 가정 교사이자 당대 유명 신학자인 사제 아벨라르의 아이를 갖게 되고, 결혼과 출산 후 남편 아벨라르가 만들고 원장으로 있던 빠라끌레뜨(Paraclete) 수도원에 들어가 여자 수도원 원장이 된다, 뻬흐 라쉐즈 무덤에 두 사람이 함께 묻혀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권현익 선교사
pari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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