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리더십 50인] 분당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 편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난 9일 오후 1시 분당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의 눈에는 피로감이 비쳤다. 새벽 장례식에 다녀온 후 수요 오전예배를 드리고 인터뷰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우리는 2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다. 애초 1시간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이 목사는 거침이 없었다.
-한신교회를 담임하신지 4년째십니다. 스스로 지난 날을 평가하신다면.
“자리가 자리인만큼 처음엔 부담도 좀 됐고 교인들과 가까워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니, 담임 목회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를 거쳤죠. 지금은 교회도 그렇고 저 또한 많이 안정이 됐습니다.”
-故 이중표 목사님의 별세목회를 이어받는 과정도 물론 과도기에 포함됐겠죠?
“물론입니다. 한신교회는 곧 별세목회의 다른 말이기도 하기에 별세목회를 온전히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담임인 제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죠. 비록 일천한 경험과 부족한 소양이지만 지난 4년간 하나님의 은혜로 별세목회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이라면.
“이중표 목사님의 별세목회는 자기부정이 특별히 강조된 것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이 극심한 육적 고통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실존적 물음의 산물인 거죠. 그런데 저는 바로 그 다음을 봅니다. 십자가가 죽음이라면 부활은 삶인데, 별세목회는 바로 이 죽음과 삶을 하나로 꿰뚫고 있어요. 이중표 목사님이 죽음을 강조하셨다면 전 삶을 강조해요. 죽음을 경험한 성도는 반드시 살게돼 있고, 또한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되죠. 죽음으로 살고, 살린다는 것이 제 목회의 대명제입니다.”
-처음엔 한신교회 담임 목회자 자리를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 느꼈고 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죽음을 앞두신 이중표 목사님을 생각하니 차마 끝까지 거절할 수 없겠더군요. 자신을 이어 교회를 맡을 목회자가 누군지도 모른채 눈을 감게 하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게 하셨던 세 가지 말씀이 있는데, 목회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과 저더러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 마지막으로 별세목회를 부탁한다고 하신 것이에요. 아직도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네요.”
-‘거지(巨知)’(이중표 목사의 호)를 이어 가기에 부담이 클텐데.
“없을 수 없죠. 역량이 부족해서 가끔은 자책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가장 힘들어요. 사실 남들이 비교하는 건 상관하지 않아요.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압니다. 부족할수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서 전진해야하니까. 거룩한 책임감을 가지려고 해요.”
-말이 나왔으니 리더십 얘기를 해보죠. 지금은 조용기 목사님이나 옥한흠 목사님과 같은 1세대 리더십에 이어 2세대 리더십이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리더십 계승을 경험하셨으니, 1세대와 2세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 마디로 계승과 발전이라고 봅니다. 선배 목회자들의 훌륭하고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전통 위에서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죠.
역사를 배제하고 과연 교회를 말할 수 있을까. 과거를 돌아봤을 때 그 누구라도 그가 감당해온 훌륭한 역사가 분명 있을텐데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요. 조용기 목사님은 왜 70~80년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느냐, 문익환 목사님은 왜 교회 부흥을 이룩하지 못했느냐라고 비판한다면 이 세상 그 누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겠습니까. 결국 좋은 선배는 좋은 후배들이 세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13년 WCC 총회가 한국의 부산으로 결정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국교회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우수한 영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들이 자꾸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이번 총회 유치를 계기로 분열된 한국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될 거에요. 더이상 좌우 이념적 시각에서 서로를 비판하거나 구별지어선 안 됩니다. 각 단체가 걸어온 역사적 발자취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한국교회는 신학적인 면에서 깊이가 있지만 그 스펙트럼은 다소 좁은 듯해 안타까워요.”
이 목사는 부드럽다가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목소리가 커지고 기상이 백배해진다. 돌아가신 선배를 떠올릴 때는 온순한 양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던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는 한 마리 사자와 같다. 한신교회 예배에 참석해본 일은 없으나 만약 누가 이 목사의 설교 스타일을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치 단상에 오른 설교자처럼 말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목사의 설교를 간접 체험한 셈이다. 그 느낌을 이어 물었다.
-어떻게 설교하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 바로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삶과 연결된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살던 시대, 제자들이 살던 시대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없이는 깊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없어요. 일단 그것이 되면 다음은 그 안에서 복음을 풀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는데, 그 깊은 곳이란 무엇일까. 묵상하고 또 묵상하다보면 아, 우리 영혼의 깊은 곳을 말씀하시는 것이구나. 그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의 그물을 던지라는 것이구나. 이것을 알게 됩니다.
요즘 한국교회 설교가 가벼워졌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죠. 저 또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반드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받는 것도, 그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결국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 목회자들의 몫입니다.”
-담임에 취임하실 때만 해도 이곳, 판교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어요.
“예전에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한 꼬마가 자치기할 때 쓰는 막대기로 집집마다 다니면서 문을 툭툭 치는 거에요. 그러자 집 문에서 어린 양이 한 마리씩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신기했죠.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허락하실 모양이구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걸 보니 꿈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큽니다. 앞으로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겠죠.
우선 오는 20년까지의 청사진을 세워봤습니다. 일명 비전2020으로 9개 분과에서 총 2백여 명이 중심이 돼 추진 중에 있죠. 전도와 국내·외 선교는 물론 다양한 복지사업 등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차근 차근 이뤄갈 계획입니다. 향후 한국교회의 좋은 모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테니 지켜봐 주세요.”
이 목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교회 앞 주차장 입구까지 기자들을 배웅했다.
“목사님, 피곤하실텐데 이렇게 성심껏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처음엔 조금 피곤했는데 인터뷰하면서 다시 깨어났어요.”
“죽고 다시 사신 거군요.”
“하하하 그렇네요. 역시 별세가 해답이죠?”
이윤재 목사는
전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신학대학교(신학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조직신학, 신학 석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조직신학, 목회학 석사)을 나왔다. 이후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성서역사학과 영성신학을 공부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주 희년교회와 서울 능동교회에서 담임 목회자직을 수행한 바 있다. 「별세와 한국교회」(쿰란) 「별세와 부흥」(쿰란) 「변화」(쿰란)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