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母)교회? 1년 안에 변하지 못하면 실패”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한국교회 리더십 50인] 인천 내리교회 김흥규 목사 편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내리교회 김흥규 목사 ⓒ 송경호 기자

▲내리교회 김흥규 목사 ⓒ 송경호 기자

여자 전도사님은 기품 있는 도자기를 내왔고 김흥규 목사가 두 손을 기울여 살며시 따라냈다. 자스민의 진한 향이 초면(初面)의 공간을 메운다. “무얼 들을게 있어 이곳까지 오셨나. 차 좀 들어요. 향이 좋지?”

인천시 내동의 고성(高聖) 한 켠에는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를 비롯한 흉상 3개가 있었고, 현관에는 미주 선교 1백주년 기념 공로패가 박혀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리교회는 올해 창립 124주년을 맞은 한국의 모(母)교회다. 김 목사는 5년 전 이곳에 와 ‘변화’를 외쳤다. 전통이 깊으면 그만큼 경직될 수도 있기에 과감히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나이 44세 때.

-젊은 목회자 입장에서 소신을 펼치기 쉽지 않았을텐데요.

“교인들도 제게 거는 기대가 있었어요. 뭔가 신선한 것을 바랐던 거죠. 다행히 그런 교인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며 보고 배운 것들을 예배에 접목시켰고 그외 많은 프로그램들에 변화를 줬죠. ‘1년 안에 변하지 못하면 실패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성공하셨습니까?

“교인들 의식이 많이 변했죠. 가장 오래된 교회지만 또한 가장 젊은 교회라는 자부심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제가 잘했다기보다 전임 목회자셨던 고 故 이복희 목사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은 거지요.”

-그럼 지난 5년, 부족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부족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조나단 에드워즈(1700년대 미국의 목사이자 신학자)는 스스로 온유함이 부족했다고 했는데, 아마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내 생각이 옳고 나만이 의인이라는 독선에 혹여 빠지지 않았나를 늘 자문하며 보다 넓은 마음으로 목회하려 합니다.

기도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목회는 하면 할수록 내 힘으론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데, 하나님께 길을 묻고 그 능력을 받을 수 있으려면 항상 기도해야지요.

마지막으로, 이건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가 정치력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목회에 열중하다 보니 정치를 다소 백안시 했던 것 같아요. 정치란 것도 필요한 것이기에, 복음적으로 할 수 있다면 관심을 둬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의 모교회로 부임해오셨을 때 자부심도 크셨겠지만 부담 또한 크셨죠?

“부담이 많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자생적 교회인 소래교회를 포함해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와 더불어 한국을 상징하는 교회인만큼 많은 교회들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짐이 됐던 건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거룩한 부담이라고 해 두죠. 부임하기 전 14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개척교회 목회도 경험하면서 신앙적으로 많이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이 이곳, 모교회 목회에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의 교회 개척은 어땠나요?

“아마 제 신앙 생활에 있어서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석 달 동안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배 드릴 곳이 없어 이곳 저곳 옮겨다녀야 했고 어렵게 전도를 해서 직분을 주면 또 큰 교회로 떠나버려요. 정말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긍휼을 얻으려고 40일 금식 기도를 하다가 신장결석증이 걸려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도 나네요.”

▲김흥규 목사가 교회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전시관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김흥규 목사가 교회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전시관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그런 고난의 기간이 있으셨군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목회란 무엇입니까?

“……,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빨리 정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처음부터 서두르다 보면 나중엔 힘이 빠져 올라갈 힘이 안 생기고, 또한 정상에 올랐다 해서 방심하면 내려올 때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죠. 인내로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 하고 내려올 때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됩니다. 그게 산을 오르는 이의 자세이자 목회자의 자세입니다. 경쟁하듯이 교회 성장에 치중하고 교회가 부흥했다고 해서 마음을 풀어버린다면, 목회라는 거대한 산은 결코 그 자신을 열어 조물주의 경이(驚異)를 보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목회에 있어 설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어떻게 설교하십니까?

“제사장적 설교가 있고 예언자적 설교가 있죠. 전자가 위로와 긍휼을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보게 하는 것이겠지요. 전 비율로 따지면 한 7대 3정도인 것 같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를 자주 듣곤 하는데 그의 설교의 많은 부분에서 예언자적인 성격이 강하게 묻어나요. 그런데 그것이 듣기 거북한 것이 아니라 참 마음에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아마 빌리 그래함 자신이 성령을 의지해 메시지를 선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언자적 설교를 하든 제사장적 설교를 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설교자 본인이 얼마나 성령에 의지하는가가 아닐까요. 어쩌면 평생을 두고 이것과 씨름해야 하지 않을까….”

-목사님 설교에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설교가 항상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설교가 어떤 윤리적 차원에서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강해설교를 선호합니다.

두 번째는 가해성이에요. 이성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 ‘그럼 믿음이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비판할지 모르는데, 물론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가해성이란 믿음을 이성으로 받아드리자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를 멀리하자는 차원입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샤머니즘적 기질이 강해 자칫하면 극단적 기복신앙이나 편협한 믿음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성장 과정을 봤을 때 한국인들의 이러한 기질이 많이 작용했다고봐요.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됩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고, 진리에 대한 깊이있는 물음이 필요한 때이지요. 이런 면에서 리더십 또한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권위주의에 기대거나 카리스마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교인들과 지역 상황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교가 성경적이고 가행성이 있으며, 상황에 적합하다 해도 성령이 빠지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지금 여러모로 교회가 위기에 있다고들합니다. 모교회의 목회자로서 많이 안타까우실텐데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희망도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훌륭히 목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 이런 분들의 선한 영향력이 교회 전반적으로 번져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나가야겠죠. 그런 점에서 교파간 연합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올해 내리교회 표어가 ‘장벽을 허무는 교회’인데, 이를 위해 근처 장로교회와 교환예배를 드렸고 앞으로도 교파는 물론 종파를 초월해 연합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상당히 진보적이시군요.

“일면 그렇지만 제 신앙 자체는 상당히 보수적이기도 해요. 정치적 입장은 가지지 않습니다. 존 웨슬리가 ‘본질적인 것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엔 자비를’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제 생각이라면 좀 설명이 되나요?”

-2013년 WCC 총회의 한국 유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교회에 분명 좋은 일이겠지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 이상 자세한 건 잘 몰라요. 연합기구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그러한 일들을 알리는데 좀 더 적극성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그저 몇 사람만의 잔치로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어떤 목회자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혹시 나귀의 착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찬양하고 경배하니까 나귀는 자신에게 그런 줄 알았답니다. 나 자신보다 항상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진실한 목회자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동안 우리는 차를 몇 잔씩 비워냈고 그 때마다 자스민의 온기는 조금씩 식어갔다. 그런데 그 향만은 전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그의 말처럼 “인생을 두고 투신해야 하는 것이 목회”라면 비록 나이들어 몸의 온기는 조금씩 식어갈지라도 그 향만은 오래도록 남으리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 차, 향이 참 좋네요”라는 말을 또 한 번 했다.

김흥규 목사는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육군 군목을 거쳐 서울 돈암감리교회 부목사를 역임했다. 이후 미국에 유학,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M.Div와(1992) Ph.D.(1998) 학위를 받았다. 네브라스카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성루가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지난 2005년 내리감리교회로 부임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겸임교수와 학교법인 영화학원 이사장에 있다. 「가라 모세 - 소명을 향한 제3의 인생으로」(생명의말씀사) 「그 무엇도 우리를」(쿰란출판사)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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