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이 많은 목회, 그리 좋지만은 않다”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한국교회 리더십 50인] 김고광 목사 편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수표교교회 김고광 목사. ⓒ송경호 기자

▲수표교교회 김고광 목사. ⓒ송경호 기자


이 교회 느낌은 뭐랄까, 좀 무겁다. 수표교(水標橋)는 그리 흔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이름이다. 서울 청계천에 있는 수표다리를 알건 모르건, 역사의 무게가 그 이름 안에 밴 듯하다.

최근 수표교교회는 창립 1백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담임인 김고광 목사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1백년의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 각종 세미나 등 교계 행사보다는 목회에 전념하는 그였기에 근엄하고 과묵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와 대면했다. “허허허!” “하하하!” 둘 사이에 놓였던 포도만큼이나 싱그러웠던 그의 웃음. 이 느낌은 뭐랄까, 참 인간미 있다.

-창립 1백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교회를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제 자신이 이 역사 깊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곳에 온지도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 동안 교회에 많은 열매가 맺힌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유서 깊은 교회를 목회하시는데, 남다른 목회철학을 갖고 계십니까?

“미국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신학 있는 목회를 하자’는 것이 제 철학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변함없고요. 사실 지역교회의 목회자가 될 줄은 몰랐어요. 신학 공부를 할 땐, 그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성격도 그게 더 맞는 것 같고 신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신감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목회를 하고보니 자연스레 그 때의 신학에 대한 애정이 목회철학이 된 것 같아요.”

-미국에선 얼마나 목회하셨나요?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21년간 했어요. 이미 말했듯이 신학을 기반으로 목회했는데 많은 지성인들이 교회를 찾아줘서 꽤 성장했었죠. 제 목회 인생에 있어 밑거름이자 자랑거리에요.”

-미국과 이곳 수표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지요?

“수표교교회를 담임하셨던 전임 목회자분들 역시 저와 비슷한 목회철학을 갖고 계셨기에 적응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미국에선 제가 직접 개척한 교회를 목회했고 여긴 부임해온 것이기에 그런 면에서 다소간 차이는 있어요. 말하자면,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있어서 미국에 있을 땐 누가 누구고 그 사람이 어떤 형편인지 비교적 자세히 알았지만 여기선 교인 수도 많다보니 개개인을 자세히 알기 어렵죠.

또 미국에 있을 땐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하면 그 흔적이 깊이 남거든요. 내게 섭섭했던 점들도 말하고 하면서. 그럴 때면 마음 아프기도 하고 힘도 많이 드는데, 여기선 그런 점들이 조금 덜한 편이죠. 수표교교회는 이미 많은 목회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담임 목회자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다 장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는 건 목회에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표교교회 김고광 목사. ⓒ송경호 기자

▲수표교교회 김고광 목사. ⓒ송경호 기자


-신학 있는 목회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교인들이 어려워하진 않습니까?

“그런 부분이 있긴 해요. 하지만 교인들 수준도 많이 높아졌고 여러 다양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교인들도 수표교교회의 특색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셈이죠. 물론 성향에 맞지 않아 교회를 옮기는 분들도 있지만 그리 나쁠 건 없습니다. 그러한 분들이 다닐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도 좋은 일이지요.

교회가 획일화 된다거나 교인수에 맞춰진 부흥개념 아래에선 더이상 한국교회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시대가 변했고 교인들도 다양한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지역 사회에 맞는 특색 있는 교회들이 더 많이 생겨야한다고 봅니다. 목회자들도 오로지 설교에 초점을 두기 보다 개개인의 자질에 맞는 목회 영역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옛날 방식으론 안 되는 시대가 된 겁니다.”

-현재 개신교 교회에 대한 대사회적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도 교회가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인가요?

“그렇습니다. 일종의 과도기인 셈이죠.”

-평신도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어야겠네요.

“이제 평신도는 목회의 대상이 아닌 목회 파트너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지요.”

-한국의 신학교육은 어떤가요?

“제가 60년대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했는데, 최근 몇몇 신학교에서 세미나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커리큘럼이 그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느껴요. 참 놀랐죠. 신학대학의 교육 과정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시대가 요구하는 목회자들을 길러내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미국의 신학교들이 끊임없는 변화로 다양한 신학을 발전시켜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이같은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하물며 미국에서 신학을 배우고 온 사람들도 한국에 와서 안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미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나요?

“미국에서 죽음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죽음이라는 문제를 두고 구약 및 신약을 전공한 신학자들은 물론 의사와 변호사들도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죽음의 문제를 고찰했어요. 심지어는 가톨릭과 정교의 사람들도 나와 발제했죠. 이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갑니다.

또 한 가지 예로 과거 미국의 신학교들에서 실천신학과 관련된 커리큘럼은 조직신학이나 설교와 관련된 것과 비교해 그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많이 좁혀졌어요. 그만큼 어느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고른 발전을 이뤄가고 있는 겁니다.”

-수표교교회가 한국교회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특색있는 교회의 한 모델이 될 것 같네요. 또한 그 이름과 같이 교회와 민족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는 하늘 척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하늘과 땅, 세상과 복음,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교류, 새로운 희망과 꿈을 이루는 시대와 민족의 징검다리가 되는 사명을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어떤 목회자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기도가 삶이 되고, 또한 그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그런 목회자로 남고 싶습니다. 추상적인 말 같지만 제겐 너무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꿈이랍니다.”

수표교교회는 1909년 창립돼 3·1운동 당시 항일 투쟁의 거점이 됐고, 7대 담임이었던 신석구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로 활동하다 수감되기도 했다. 33인 중 오화영, 정춘수 목사도 이 교회에서 목회했다.

백살의 교회, 사람으로 치면 천수(天壽)를 누렸다. 삶의 희노애락 속에서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다간 사람이 아름답듯, 천수를 누린 이 교회도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 천명(天命)을 다했다. 그리고 또 다가올 한 세기를 준비 중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일어나면서 “건강하세요”라고 했더니 “걱정 말아요. 백년된 교회에서 목회하니 건강할 수밖에”라는 말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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