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17세기 천로역정이라는 걸작을 남긴 존 번연은 1628년 잉글랜드 베드포드 엘스토우 마을에서 가난한 떠돌이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 학교에서 영어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지만, 10살의 어린 나이에 장남으로 아버지가 하신 가업을 전수받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17살까지 아버지 밑에서 땜장이 일만 배웠다.

그러나 번연은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케임브리지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끔씩 들러 모험담에 관한 중고 책들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의 역작 천로역정에 나오는 배경인 ‘허영의 시장’은 어려운 시절 그가 눈물로 읽었던 책에서 얻은 영감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 청교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설교집, 도덕적 대화록, 하나님의 인도에 관한 책들, 폭스의 순교자열전(Book of Martyrs) 및 방대한 민담과 전승에 관한 책들도 닥치는 대로 독서했다. 폭넓은 그의 독서량은 훗날 그의 탁월한 저서들 안에 그대로 담긴다.

번연의 나이 16세가 되던 1644년은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 해 6월 사랑하는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죽었고, 7월에는 아끼는 누이동생 마거릿마저 세상을 떠났으며, 8월에는 아버지가 세 번째 아내를 얻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교도 혁명이 터진 11월에는 본인이 의회군으로 강제 징집돼 뉴포트 파그넬에 있는 수비대의 보충병이 돼 1647년 7월까지 군복무를 하게 된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크롬웰 군대 내의 급진 개혁파 사람들, 공적 권위에 도전하는 퀘이커 교도 및 랜터파(Ranters) 성도들을 다수 만나 비국교도 들의 열정적 종교생활을 관찰하며 참된 신앙생활에 대해 배우게 된다. 특히 신형군(新形軍·New Model Army) 사람들의 경건한 삶은 번연이 앞으로 비국교도로 개종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그는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거룩한 전쟁’이라는 저술에서 설교와 훈련에 매진한 크레던스와 보아너게스라는 에마뉴엘 군대의 중대장들로 설정해 리얼하게 재현했다.

번연은 1649년 거룩성이 몸에 밴 비국교도 아내와 결혼한 뒤 그녀의 영향을 깊게 받아 1655년 비국교도로 전격 개종한다. 개종 이후 신실한 아내와 함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평소 즐기던 세속적인 춤, 종치기놀이, 시골 들판에서 벌이는 운동경기 같은 모든 오락들을 포기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개종한 존 번연은 1660년 11월 12일 사우스베드포드셔에 있는 로어삼셀의 지방 치안판사 앞에 끌려가 과거 엘리자베스 시대에 포고된 구시대 법령에 따라 영국 국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예배를 집례한 혐의로 기소당한다. 비국교도적인 예배 집례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문에 그가 서명하지 않자, 1661년 1월 순회재판소는 유죄판결을 언도하고 주(州) 감옥에 그를 가둔다. 그러나 경건한 아내의 헌신과 교회 성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영적인 암흑기에서 벗어난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번연은 영적인 자서전 ‘넘치는 은혜’를 출판했는데, 자기 영혼의 상태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회상한다.

번연은 이후 1655년경 베드포드 분리파 교회에 출석해 존 기퍼드로부터 큰 영적인 도움을 받았고, 교회의 정식 교인이 된다. 베드포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거룩한 생활을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성도로 받아들였으며, 개방적이고 세련된 성찬식(open-communion)을 수행했다. 이때 존 번연은 평신도 설교가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나타낸다.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연약한 사람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는 생생한 메시지를 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나 자신도 쇠사슬에 묶인 채 그들에게 갔고,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내 양심에서 얼마 전에 타오르던 불을 담아 갔다”는 그의 신앙고백은 번연이 설교 준비에 얼마나 철저하게 매진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국교에 일치하지 않는 불법적 설교를 했다는 혐의로 다시 감옥에 갇힌다. 그의 두번째 감옥생활은 비록 6개월 정도였지만, 그는 치욕스런 감옥 생활에서 천로역정이라는 대역작을 완성한다. 그 책은 당시 잉글랜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천로역정은 근대 계몽주의 교육이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전, 일반 대중의 민간 전승을 리얼하게 표현한 최후의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의 개혁주의자 존 번연이 세기적인 역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어진 가난과 고통스런 감옥생활 때문이었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중고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은 것이 놀라운 역작을 만들어 낸 뿌리가 됐다. 길지 않은 우리 인생 속에도 수많은 고난들이 닥칠 수 있다. 그것들을 신앙 안에서 역동적으로 극복해 내면 우리들의 뇌에 무너지지 않을 강력한 ‘뇌 근육’이 생기게 된다. 고통은 미래의 문제 해결을 위한 뇌 근육 형성을 위한 필수매체요, 도구이다. 존 번연이 엄청난 고통 중에 대작 천로역정을 쓴 것처럼 말이다. 근래에 불어닥친 신종플루 때문에 발생한 세계적 어려움을 미래 지향적인 뇌 근육 형성 도구로 삼고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때다.

[송태흔 목사의 <시사교회사> 지난 연재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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