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종교편향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2)
Ⅰ. 문제제기: 종교와 국가권력
Ⅱ. 서구 기독교 사회의 변화와 개신교 복음주의
1. 존 로크와 관용령
크리스천투데이는 지난해 12월 박명수 교수가 한국종교학회에서 발표한 ‘다종교사회에서의 개신교와 국가권력’ 논문을 연재합니다. 박명수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종교편향’ 문제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다뤘습니다. 박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본지를 향해 “항상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보도해 주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존 로크는 국가가 이런 임무를 감당하면 안 된다고 본다. 로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시민정부는 계약에 의해 이뤄지는데 시민은 국가에 이런 종교적인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둘째, 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곳인데 세속 정부는 이런 것을 맡을 자격이 없다. 셋째, 일반 정부는 항상 강제력을 통해 업무를 추진하는데 영적인 문제는 이런 강제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는 것 등이다. 이런 로크의 사상은 유럽 역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유럽이 세속 사회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종교는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로크는 종교가 근본적으로 자발적 공동체에 속한다고 봤다. 이 점에 있어 종교 공동체는 국가와 다르다. 사람이 어떤 민족으로 태어나는가와 어떤 신앙을 갖는가는 전연 다른 문제다. 예를 들면 영국 시민은 태어날 때부터 영국 시민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영국 시민이 태어날 때부터 영국 국교회 신자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영국 국교회 신자가 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종교 공동체는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로 참여한 신자들의 결정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로크에 의하면 국가는 어떤 특정 공동체의 결정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로크는 종교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일반 시민의 영역으로 확대될 때 국가가 그것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종교의 관용은 종교에 관한 부분에만 국한되며, 그 이상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시민적인 자유와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본다. 아울러 성직자가 종교적 영역을 넘어 세속적인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로부터 벗어난 종교는 기적과 도덕에 의한 ‘설득’에 주력한다
그러면 국가의 보호에서 벗어난 종교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더 이상 국가의 강제력을 기대할 수 없는 종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설득’이다. 이제 종교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설득력으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종교가 참임을 입증해야 한다. 설득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도덕이며 다른 하나는 기적이다.
로크는 더 이상 강제적인 힘이 없는 종교가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삶이 한 단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타락한 종교를 참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사람들은 종교에서 기적을 찾는다.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는 것과 관련해 참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사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었던 것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부활이라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서구 국가의 세속화는 인류 역사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어떤 특정 종교에 기반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가 출현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세속 국가가 기독교 사회에서 이뤄진 점에 주목한다. 기독교 사회는 이런 세속화를 받아들였고, 종교 문제에 국가가 직접 간여하지 않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그 결과 기독교 사회에서는 타종교의 신앙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것을 이슬람이나 불교 국가들과 비교할 때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슬람이나 불교 국가는 세속 국가가 아니다. 그 국가들의 기초는 종교이며, 따라서 타종교에 관용을 베풀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사회는 비록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강한 나라이지만, 국가의 기초를 종교에 두지 않는다. 그 결과 국가가 개인의 신앙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가 타종교에 배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면 맞는 말이다. 개신교는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는 개신교를 전파하기 위해 국가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과거 카톨릭이나 성공회와 같이 국가 교회의 전통을 갖고 있는 교회는 종교 전파에 있어 국가의 힘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근대 복음주의 개신교는 개종을 위해 국가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가 다수인 국가는 불교나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다른 종교에 대해 국가의 힘으로 간섭하지는 않는다.
2. 정교분리와 복음주의 개신교의 등장
근대 복음주의는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출발했다.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종교 선택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였고, 이제는 강제력이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종교를 유지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이를 미국의 유명한 교회사가 시드니 미드(Sidney Mead)는 ‘강요에서 설득으로(from coercion to persuasion)’ 종교의 구조가 변화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새로운 종교 구조를 교회가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전통적 교회는 여전히 정부의 권위나 유아세례에 의해, 또는 사회 구성원의 의무에 기초해 여전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보다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부흥사들이다.
부흥사들은 신앙이 국가나 사회의 강요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었고, 이것 없이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존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경험한 종교 체험이며, 그는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강조했다. 부흥사들은 종교의 위치는 마음이며, 그래서 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봤다. 만일 종교의 위치가 마음이라면 국가는 개개인의 마음을 통치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다루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부흥사들인 것이다.
부흥사들은 더 이상 강요로 신자를 만들 수 없는 새 상황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우선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살펴보자. 부흥사들은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평이한 설교를 했으며, 노래를 통해 이를 전달했고, 때로는 연극도 사용했다. 이것은 전통적 설교자들이 학문적인 언어로 된 지루한 원고 설교를 하는 것과 대조된다. 이것은 설교가 이뤄지는 공간적 측면에서도 분명하다. 부흥사들은 대중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갔으며, 전통적 날짜와 관계없이 대중들이 편리한 시간을 택했다. 이는 설교의 내용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부흥사들은 복잡한 교리를 말하기보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단순화해서 전한다.
이 모두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이후 종교를 더 이상 국가 권력에 의지할 수 없을 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방법들이다. 부흥 운동으로 대별되는 개신교 복음주의는 이렇게 대중들을 설득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개발했다. 이것은 국가의 권력에 의존해 포교하는 종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정교분리가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교파가 등장한다
이같은 부흥운동의 등장과 함께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교파의 등장이다. 국가가 어떤 특정 종교에 기초하지 않게 되었을 때 자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다양한 교파다. 과거 국가들은 어떤 특정 신앙을 국교로 정했고, 그 외에는 이단으로 규정했다. 또 국가는 이단을 박멸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가 더 이상 특정 종교에 특권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종교 시장의 형성이다. 다양한 종교들은 자신의 교리와 예배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종교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어떤 종교가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종교가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어떻게, 또 얼마나 잘 설득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종교 시장이 형성된 가장 큰 원인은 독립 당시 여러 교파들이 비슷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개신교는 독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영국의 지배는 영국 국교회의 지배이고, 이것은 개신교 여러 교파들에 분명한 불이익이었기 때문에, 미국 개신교는 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서도 싸웠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주요 교파들은 자신들의 교파가 국교회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떤 교파도 자신들의 교파를 국교로 만들만큼 강하지 못했다. 결국 어떤 교파도 국가로부터 특별한 특권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의 정교분리가 성립됐다. 이것은 로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장한 것이었지만, 구체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바로 18세기 말 미국의 종교상황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다. 이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하면 미국 의회는 국교를 만드는 법도, 사람들의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금지하는 법도 만들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의 문제를 국가의 영역이 아닌 사적인 영역으로 옮긴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법학자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필드(David F. Filed)는 이런 정교분리는 “미국이 인류의 진보를 위해 만든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미국에 대해 “인간과 그의 창조주의 관계는 사적인 관계이며, 이 관계를 어떤 다른 사람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을 조직된 법률 가운데 명백히 표현한 첫번째 나라”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국교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특정 종교에 특권을 주는 것을 금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종교 시장에 들어서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종교 시장에서는 어떤 종교도 국가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없다. 동시에 미래의 미국 종교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신앙 행위에 의해 성장하거나 쇠퇴하게 될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는 이런 새로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믿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이것이 개신교 복음주의가 갖고 있는 전도전략인 것이다.<계속>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