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은 왜 고종의 ‘개신교 국교화’를 반대했을까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특별기고] 종교편향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4)

▲ 박명수 교수.

▲ 박명수 교수.

Ⅰ. 문제제기: 종교와 국가권력
Ⅱ. 서구 기독교 사회의 변화와 개신교 복음주의
Ⅲ. 한국의 종교시장과 타종교

1. 개항기 한국의 종교상황과 개신교 선교

정교분리는 조선 사회에서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신라와 고려는 불교 국가였고,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조선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인 유교가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갑오경장 시행으로 과거제가 폐지되자, 유교 사회는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여전히 유교는 조선의 국교였고, 유교 의식은 국가의 공식 행사였다. 이것은 대한제국이 양력을 채용했으면서도 음력을 함께 사용한 데서 잘 나타난다. 음력은 유교 제례에 필요했으며, 대한제국은 음력을 중심으로 한 유교 제례를 충실하게 지켰다. 대한제국은 황제를 제관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유교 국가였다. 하늘에 드리는 제사는 중국의 천자만이 드릴 수 있었다. 조선이 그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더 이상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여간 대한제국은 여전히 유교 중심 사회였다. 그렇다고 하여 유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유교가 힘을 잃어가는 동안 불교가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당시 조선 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은 일본 불교를 조선에 이식하려 했다. 우선 일본은 불교 차별철폐를 시행했다. 1895년 조선 정부는 일본 불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가 도성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입성해금(入城解禁)을 선포했다. 이는 전통종교의 재건을 알리는 것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정부는 조선 불교를 모두 자신의 통제 아래 뒀고, 동대문 밖에 원흥사를 둬 조선 불교의 총본사로 삼아 국가 종교정책의 지도를 받았다. 불교가 국가의 통제 아래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불교계는 이를 환영했다. 과거 사적인 종교에서 공적인 종교로 격상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어떤 종교도 주도권 행사 못해… 자연스러운 다종교 상황으로

당시 조선의 유·불교는 정교분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가 권력에서 자유로운 종교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다. 이는 천주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천주교는 거꾸로 프랑스의 권세를 빌려서 선교하려 했다. 원래 황사영 백서를 통해 서구의 힘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으려 했던 천주교는 1886년 조불조약을 맺은 후 프랑스를 의지해 선교하려 했다.

그들은 조선 정부를 무시했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은 관리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을 성당 건축비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했을 정도였다. 이것은 황해도 지방에서 특히 심했고, 제주도에서도 큰 사건으로 나타났다. 이런 갈등이 계속되다 1904년 프랑스와 대한제국은 조약을 맺어 선교사는 한국인에게 천주교를 강요하지 못하며, 정부는 천주교신부에게 선교의 자유를 허락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개항기 한국사회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당시 사회는 다종교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종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교는 쇠퇴하고 있었고, 불교는 새로운 대안이 되지 못했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외국 종교였다.

이런 다종교적인 상황이 한국에 ‘종교시장’을 형성하게 만들었고, 결국에 가서는 정교의 분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정교 분리는 어떤 특정 종교가 그 사회를 독점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 한국에서의 정교분리는 궁극적으로 이런 다종교 상황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개화파 지도자인 박영효의 상소에도 나타난다. 그는 1888년 고종에게 보낸 상소에서 “모름지기 종교는 백성에게 맡겨 자유롭게 신봉하게 하고, 정부가 관여 간섭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자고로 종교로 관련된 쟁론으로 말미암아 인심이 동요되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람 목숨을 해치는 일이 수로 셀 수가 없으니 가히 거울로 삼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서 주로 들어온 복음주의 개신교, 탈권력적 종교 지향

이같은 상황에서 복음주의적인 개신교는 어떻게 선교했을까? 무엇보다 개신교는 국가 권력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의 개신교 선교가 주로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대로 미국은 이미 정교분리 사회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모든 국가들 가운데 종교 문제에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종교를 근본적으로 사적 영역으로 인식했다. 미국 공사가 선교사들을 도운 것도 그들이 선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시민이기 때문이었다. 복음주의 선교사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것 없이는 참 신자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복음주의 선교사들은 국가권력을 이용해 힘으로 선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개신교가 이런 탈권력적 종교를 지향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다. 한때 조선 정부는 개신교를 국교로 삼을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실제 박영효는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개신교를 국교로 삼기를 고려했다. 박영효는 조선이 개화되려면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광범과 선교사들은 이것을 반대하고, 단지 신앙의 자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헐버트도 고종이 선교사들에게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언더우드도 정부 관계자들이 장로교회를 국교로 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선교사들의 반응은, 진정한 신앙은 국가 권력에 의존해 전파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요구했던 것은 신앙의 자유이지, 기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니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원했던 것은 기독교에 대한 국가의 혜택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는 선교의 자유였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선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전하는 종교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접근했다. 선교사들은 권력을 가진 한국의 지배 계층보다는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여성과 보통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한국 장로교회가 받아들인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의하면 개신교 선교사는 천주교와 달리 국가의 법적 소송에 관여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사실 조선 정부는 끝까지 개신교에 신앙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적이 없다. 조선 정부가 개신교를 용인한 것은 이미 개신교가 널리 받아들여져 더 이상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의 복음주의 개신교가 이같은 종교시장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어떻게 잘 전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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