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박해도 식힐 수 없던 복음의 열정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프랑스 종교 개혁 발자취 24] 종교 개혁 당시 교회의 모습 5

3) 귀족들이 개혁에 동참하다

개혁주의에 대한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1557년부터 남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라 브리(La Brie), 샹빠뉴(Champagne) 지역의 귀족들과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개혁사상을 수용하는 진귀한 현상이 일어난다.

보편적으로 권력자들은 권력의 편에 손을 들어주거나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1558년 5월 14일부터 19일까지 루브르 왕국 맞은 편 세느강 좌안에 위치한 Pré-aux-Clercs 거리에서 귀족들을 포함한 4천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는 왕의 4촌이며 나바르 왕국의 왕인 앙뚜완 (Antoine de Bourbon 1518-1562)을 비롯한 앙뚜완의 동생 꽁데 공작과 훗날 위그노의 수장(首將)이 되는 꼴리니 제독과 그의 동생 프랑수와 당델로도 함께 하였다. 신앙에 대해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제한하거나 구속할 수 없음을 밝힌 전대후문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앙리2세는 사촌 형인 앙뚜완을 공격하지는 않고, 시위 기간 중 당델로를 소환한다. 소환된 당델로는 왕에게 ‘내 칼과 내 생명은 왕에게 있지만, 내 영혼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는 말과 동시에 화가 난 왕은 접시를 당델로의 얼굴을 향해 던진다. 그리고 구금시키고 그의 직위를 박탈한다. 영주가 신앙의 문제로 체포된 최초의 사건이다.

깔뱅은 5월 10일에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헌신으로 감옥에 갇힌 당델로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신앙의 정조를 끝까지 지킬 것을 권면하였다. 그러나 당델로가 왕의 강력한 권력 앞에 굴복의 기미가 보인다는 소식을 접한 깔뱅은 7월 12일에 더욱 강력한 편지를 다시 보낸다.

▲ 붉은 색으로 표시된 거리가 시위했던 거리이며, 파란색으로 표시된 거리는 총회가 열렸던 거리이다. 당시 이 거리들의 전방은 세느강까지 들판으로 형성되어 있어 왕궁이 바로 보였다.

▲ 붉은 색으로 표시된 거리가 시위했던 거리이며, 파란색으로 표시된 거리는 총회가 열렸던 거리이다. 당시 이 거리들의 전방은 세느강까지 들판으로 형성되어 있어 왕궁이 바로 보였다.

▲ 위그노들이 시위를 벌였던 Pré-aux-Clercs 거리.

▲ 위그노들이 시위를 벌였던 Pré-aux-Clercs 거리.

1559년 5월 25일에 François Morel 목사의 인도 하에 프랑스 2천여 개의 개신교의 첫 총회가 왕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열렸으며, 총회 기간 중에 박해 받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게 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들의 정신, 권력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권력과 야합하지 않았던 위그노의 시대적 정신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1559년 6월 2일에 왕은 이단자들을 화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에꾸엉 칙령(l'édit d’Ecouen)에 서명하지만, 몇 달 후 두 명의 파리 의회 소속인 Anne du Bourg 와 Laporte가 체포하며 화형을 행한다.

총리 Antoine du Bourg의 조카이며 파리 의회 의원, 대학 교수인 Anne du Bourg는 왕이 참석한 파리 의회에서 개혁자들에 대한 왕실의 억압 정책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화가난 왕의 명령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투옥된다. 왕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용기 있는 학자이며 개혁자인 그는, 마가복음 13장 9절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는 말씀을 삶으로 증거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앙리 2세가 그해 7월 10일에 사고로 급작스럽게 죽었기에 법적으로 안느를 구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2월 23일에 현 파리 시청 광장인 그헤브 광장(place de Grève)에서 화형을 당한다. 그 이유는 앙리 2세를 이은 아들 프랑수와 2세가 15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될 때, 그의 처족(妻族)인 기즈 가문의 정치와 종교적 권력의 횡포로 성직자들과 의회를 움직여 결국 화형을 집행시킨다.

형장에 선 안느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청중들을 향하여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도둑이나 살인자로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1559년 12월 23일 안느 듀 부흐(Anne du Bourg) 의 화형 장면.

▲1559년 12월 23일 안느 듀 부흐(Anne du Bourg) 의 화형 장면.


▲그레브 광장(현 파리 시청 광장)은 안느 부르그를 비롯한 개혁자들의 순교 장소이다.

▲그레브 광장(현 파리 시청 광장)은 안느 부르그를 비롯한 개혁자들의 순교 장소이다.


‘화형’이라는 극단적 조치로 귀족들이 개혁에 동참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안느의 죽음은 더 많은 귀족들로 하여금 개혁사상에 참여케 하는 도화선이 된다.

4) 당시 유럽의 정세

1555년에 독일 개혁주의 제후들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 화의(和議)를 통해 개신교를 신성로마제국의 한 기독교 종파로 승인하므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

1556년 1월에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는 스페인을, 동생 페르디난트 1세(Ferdinand I)에게는 신성 로마 제국을 넘겨 주므로 합스부르그 가문은 스페인과 독일 지역이 분리된다.

펠리페 2세는 본가인 합스부르그 가문이 개신교 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의 신앙을 허가해준 일에 불만을 품고 “나는 이단의 통치자가 되어 하느님의 가호와 신앙에 손상을 입히느니 차라리 국가와 함께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할 정도로 가톨릭의 맹주로 자처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에도 개입하여 가톨릭측을 지원하므로, 전쟁의 장기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프랑스와 1559년 4월 3일에 까토 깡브레시 조약(Traités du Cateau-Cambrésis)을 맺으므로 두 나라간의 65년(1494~1559) 동안의 분쟁은 마무리된다. 펠리페2세는 스페인의 경제 파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앙리 2세는 자국의 개혁자 세력을 섬멸하기 위함이다.

이 조약 중 하나로 두 번의 사별을 경험한 펠리페 2세와 앙리2세의 딸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을 행한다. 그러나 자국의 개혁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조약 시행의 결혼식은 결국 앙리 2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혼 축하연으로 만취된 앙리는 훗날 위그노들의 강한 후원자가 되는 스코틀랜드 출신 가브리엘 몽고메리 (Gabriel Montgomery) 백작과 창 겨루기 시합을 하다가 한쪽 눈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앙리 2세는 궁정 의사이며 개혁자인 앙브와즈 빠헤(Ambrois Paré)의 수술을 받았지만, 극한 고통을 호소하다가 결국 10일만에 40세의 나이로 12년의 통치를 마감하고 사망한다. 깔뱅은 박해자 앙리 2세의 죽음을 “프랑스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였다”고 언급한다.

▲앙리 2세의 마상 대회.

▲앙리 2세의 마상 대회.

▲ 앙리 2세를 치료하는 앙브와즈 빠헤(Ambrois Paré 1509-1590). 그는 “나는 환자를 생각할 뿐이고, 오직 하나님께서 치료하신다”는 말을 남긴 개혁신앙을 가진 현대 외과의 창시자. 개혁자들을 잔혹하게 죽인 앙리 2세와 그 아들 프랑수와 2세의 죽음을 끝까지 돌봤던 개혁자 앙부와즈. 그의 품에서 죽어갔던 핍박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며 죽어갔을까?

▲ 앙리 2세를 치료하는 앙브와즈 빠헤(Ambrois Paré 1509-1590). 그는 “나는 환자를 생각할 뿐이고, 오직 하나님께서 치료하신다”는 말을 남긴 개혁신앙을 가진 현대 외과의 창시자. 개혁자들을 잔혹하게 죽인 앙리 2세와 그 아들 프랑수와 2세의 죽음을 끝까지 돌봤던 개혁자 앙부와즈. 그의 품에서 죽어갔던 핍박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며 죽어갔을까?


▲앙리 2세가 죽은 호텔 hôtel des Tournelles.

▲앙리 2세가 죽은 호텔 hôtel des Tournelles.

그리고 앙리2세의 사람으로 60세의 애첩 디안느는 앙리 2세가 줬던 모든 보석을 까뜨린에게 몰수당하며, 시농소 성을 포기하고 대신 요새같이 생긴 쇼몽 성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던 권력자들의 허무함이라 해야 할지…….

앙리 2세 하의 극심한 박해에도 파리에서 첫 교회의 설립(1555년)과 첫 총회(1559년)가 열렸던 것은 막강한 권력으로도 복음을 향한 그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프랑스 개혁교회의 요람, ‘작은 제네바’ (2) 참조).

▲앙리 2세의 무덤. 1559년 7월 10일에 그는 몸을 비틀며 고통 가운데 처참히 죽어갔다.

▲앙리 2세의 무덤. 1559년 7월 10일에 그는 몸을 비틀며 고통 가운데 처참히 죽어갔다.

프랑스 파리에서, 권현익 선교사
pari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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