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거지에게…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청년 바보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한국이 낳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잘 알려진 장기려 박사는 1911년 음력 8월 14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장윤섭과 최윤경의 작은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신실하게 살았다. 그의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이 참된 크리스천임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신앙 속에서 개성송도 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장기려는 여순공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를 치렀으나 예비시험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이후 의사가 되고자 경성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수석으로 졸업하고, 같은 해4월 김봉숙과 결혼했다. 장인 김하식의 소개와 권유로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 문하에서 외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충수염 및 충수복막염에 대한 세균학적 연구’라는 논문 제목으로 1940년 9월에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스승 백인제는 탁월한 의술과 훌륭한 인격을 지닌 장기려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그가 스승의 곁을 떠나 평양의 기홀병원으로 사역지를 옮기자 무척 아쉬워했다.

기홀병원으로 자리를 옮긴지 두달 후 그의 탁월한 능력과 인격에 감동한 전임 원장이 장기려를 자신의 후임 원장으로 전격 취임시켰다. 그러자 인사에 불만을 가진 동료 의사들의 질시와 텃세를 심하게 받았다. 그는 병원의 평화를 위해 두달 만에 원장직을 그만두고, 외과 과장으로 스스로 강등해 봉직했다.

1947년 1월부터는 북한 김일성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은 장기려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겼다.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북한에 남겨두고 차남 장가용과 단둘이 남한으로 피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 장기려는 1951년 부산에 정착해 인근에 있는 허름한 창고를 빌려서 지금의 고신대학교 부설 복음병원의 전신인 무료병원을 시작했다. 그는 15년 동안 복음병원 원장 겸 의사로 일하면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행려병자 등을 온갖 사랑으로 치료했다. 그의 사랑에 관한 다음 일화는 우리들의 가슴을 오늘까지도 울리고 있다.

하루는 장기려가 병원문을 나서는데 늙은 거지 하나가 구걸을 했다. 그때 장기려는 호주머니에 돈을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중에 돈이 없다는 장 박사의 말에 거지 노인은 실망해 발길을 옮겼다. 장 박사는 갑자기 뒤돌아서 그 노인을 큰 소리로 불렀다. 양복 속 주머니에서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꺼내서 노인에게 전했다. 수표를 건네받은 노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이 종이 나부랭이가 돈이란 말이오?” 라고 말하면서 화를 냈다. 장 박사는 “이것은 수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돈으로 바꿔줄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수표를 그의 손에 쥐어줬다. 며칠 후, 장 박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은행입니다. 혹시 수표를 잃어버리신 일이 없으신지요? “웬 거지 노인이 박사님이 사인한 수표를 가지고 왔는데요?” 장 박사는 그제서야 며칠 전 거지에게 준 수표가 생각났다. “그 수표는 내가 준 것이니 그리 알고 돈을 그 노인에게 지불해 주시오”라고 말했다.

장기려는 1961년에는 간암에 대한 연구로 대한의학회에서 주는 학술상을 수상하는 등 학술적으로도 뛰어난 활동을 벌였다. 1968년에는 민간 주도로 이뤄진 최초 의료보험 조합 ‘청십자’를 세웠다. 고통스러운 간질환자 치료를 위해 ‘장미회’를 설립하고 온갖 정성을 쏟았다. 봉사단체인 부산 생명의전화 설립, 장애자재활협회 부산지부 창립에도 앞장섰다. 1975년에는 그의 헌신으로 민간 의료보험조합 직영의 ‘청십자 병원’이 문을 열었다.

이후 1976년 국민훈장동백장을,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부문)을 받았으며, 1995년 인도주의 실천의사상을 받았다. 노년에 병고(당뇨병)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박애와 봉사정신으로 인술을 펼쳐 한국의 성자로 칭송받았다.

한편 장기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교회 장로로 봉직했지만, 당시 무교회주의자인 함석헌, 김교신과 깊이 교제했다. 32년 동안 무교회주의 성격을 지닌 ‘부산모임’ 집회를 자신의 집과 사무실에서 주관했다. 국제 교회개혁 모임인 종들의 모임에서도 역동적으로 활동했다.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에 ‘종교 개혁’과 같은 기독교 변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신앙과 신념 때문이었다.

평생 남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손수 실천한 한국판 슈바이처 장기려는 1995년 성탄절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의사 장기려는 단순히 사람의 병만을 치료한 의사로 살지 않았다. 이기주의로 병든 쓰디 쓴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치료하다 간 사회개혁자요, 인술을 베푼 탁월한 의사였다. 문학가 춘원 이광수가 장기려를 그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모델로 삼은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자신의 적금 통장과 자식들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장기려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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