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양창근 선교사 선교편지] ‘칠레여 일어나라!’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소식에 열광하던 중에, 이웃 나라 칠레에서 규모 8.8의 강진으로 2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150만 채의 건물이 파괴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지진 발생 다음 날인 지난 2월 28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인 조현삼 목사님으로부터 칠레 지진 구호팀 합류 요청의 전화를 받았고, GMS 강대흥 사무총장의 권유로 칠레행을 갑작스럽게 준비하게 되었다. 이미 연합봉사단 팀장 이석진 목사님, 전종건 집사, 홍철진 간사로 구성된 긴급 구호팀은 한국에서 칠레로 출발한 상황이었다.
칠레 공항의 정상적인 운행이 어려워 우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비행기로 간 후 20시간 버스를 타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산티아고까지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기 전 칠레에서 규모 6.8의 여진이 있었다는 뉴스 속보를 보면서 두고 온 가족이 생각이 나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함께 동행한 파라과이 현직 소방관 구스타보(Gustavo) 형제의 노란 소방관 제복을 보며 감사를 표하는 칠레 사람들의 성원이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3월 4일 목요일, 칠레에 먼저 도착한 3명의 한국 구호팀과 합류한 후 칠레 한인연합교회(왕익상 목사 시무)에서 긴급대책 회의를 시작하였다. 국가 재난 관리국(ONEMI)을 통해 현지 구호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었다. 콘셉시온 도시로 가는 도로가 안전하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구호품 구입과 운반, 구호에 협력할 현지 교회 및 단체와의 연결, 위급한 상황에 도와줄 현지 군인, 경찰과의 연결을 위해서 의논하였다.
출발 전 파라과이에서 전화로 통화한 칠레 제2장로교회 마우레라(Maurera) 목사님과 칠레목회자연합회 부총회장 출신인 마누엘(Manuel) 목사님의 소개로 장성급 군목 호르헤(Joge) 목사님, 경목 에릭(Eric)목사님이 연결이 되어서 위급 상황 때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또 한 팀은 구호품 구입에 나섰는데 4시간 동안 필요한 양의 30% 정도의 물량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진이 난 후 사재기로 인해 물건이 바닥이 난 상황이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구호품을 구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월 5일 금요일 아침 일찍 구호팀은 세 팀으로 흩어져 다시 물품 구입에 나섰다. 기적적으로 한 도매상에서 필요한 물품의 대부분을 구입 할 수 있었다. 칠레 연합교회 성도 30명과 제2장로교회 현지인 청년 20명이 구호팀 등과 함께 6시간이 넘게 물품들을 구호 봉지에 넣으면서 작업하였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칠레인과 한국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기쁨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준비한 구호품 40톤 중 10톤 분량을 대형트럭 한 대에 싣는 시간만 3시간이 걸렸다. 작업이 끝난 밤 12시 우리는 바로 콘셉시온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잠깐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지쳤지만, 땀과 희생이 수반된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구호 사역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3월 6일 토요일, 산티아고에서 콘셉시온까지 12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8시간만인 오전 8시에 도착하였다. 군인들이 도시 전체를 통제하여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6시간 이외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콘셉시온의 현지 교포 장진모 집사가 미리 통행 허가증을 준비하여 구호 활동을 시작 할 수 있었다. 같은 날 UN 반기문 사무총장의 콘셉시온 지역 방문 소식을 접하였고, 마침 취재 나온 모 방송국에서 우리 구호팀의 구호 활동 현장을 촬영하였다.
칠레의 제2도시 콘셉시온의 피해가 매스컴을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실제로 더 큰 피해는 쓰나미가 강타한 해안 지역의 마을이었다. 먼저 디차또(Dichato)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민들이 500m 높이의 산 속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산을 넘어 들판까지 밀려 온 4척의 배를 보며 해일이 얼마나 무섭게 강타했는지를 볼 수 있었고, 높은 산속으로 피한 이재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큰 트럭에 구호품을 싣고 다니며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했다.
120가구가 모여 있는 이재민 텐트촌 대표인 루스(Luz) 자매를 만나, 1만5천명이 사는 마울렛 지역에 쓰나미가 강타해 60여명이 사망하고 마을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자녀를 둔 루스 자매는 “지진이 나자마자 가족들과 함께 산 위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정부 방송에서 쓰나미가 없을 거라는 뉴스를 듣고 안심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쓰나미가 덮쳐 많은 이웃 주민들이 죽었고, 그나마 목숨만 건진 것도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비록 큰 재난을 당했지만 텐트촌에서 이재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한다는 루스 자매를 보며 쓰나미도 덮치지 못한 반석 같은 믿음을 볼 수 있었다. 루스 자매의 안내로 텐트촌 8곳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3월 7일 주일, 콘셉시온에서 떠나 칠리안(Chilian)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잠시 잠자리에 든 후 7시에 지진 피해가 심한 딸까(Talca) 도시로 이동하였다. 칠레 장로교가 운영하는 장애자 학교에서 40개 교회 대표 5명의 목사님들과 함께 구호품 배분에 대해 의논한 후, 이재민 리스트를 만들어서 600개의 구호품을 전달하였다. 오후 3시에 딸까에서 쓰나미 피해로 인해 유령도시로 변했다는 꼰시띠뚜시온(Consititucion) 도시로 이동하였다. 현재 칠레 지진 피해로 확인된 공식 사망자수가 802명인데 인구 2만의 꼰시띠뚜시온에서 사망한 숫자가 348명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연락을 받은 이재민 340가구가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여 있었다.
현지 교회 이반(Ivan)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와 집이 쓰나미로 인해 무너져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교회 성도들뿐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재민들을 모아서 구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성도 집 주차장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는 이반 목사님은 구제품으로 받은 우유 몇 개를 보여 주면서 이웃에게 이것을 전해 주어야 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쓰나미로 꼰시띠뚜시온의 25개의 교회가 사라져 버렸고 목사님들의 집 또한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지만, 먼저 지역 이재민들을 돌보는 이반(Ivan) 목사님의 섬김의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로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무너진 꼰시띠뚜시온의 교회들이 재건되기 위한 한국 교회의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딸까와 콘시띠뚜시온 지역의 피해가 유난히 큰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진흙으로 지어진 건축 구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역 전체가 지진과 해일에 힘없이 초토화되었다. 지진을 대비해 내진 설계를 잘 한 부유층의 집들은 건물에 금이 가는 정도였지만 가난한 해변 지역 주민들은 많이 목숨을 잃었다. 어느 누구도 천재지변을 피할 수 없지만 재난의 피해는 빈부의 차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안타까움은 더 커져갔고 언론에 나오지 않은 피해 지역 이재민들에게 더 많은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20년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로서 이번 칠레 구호 활동으로 새로운 깨달음과 관점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는 칠레 국민들이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칠레 정부는 현재 조직적, 체계적으로 지진 사태를 수습하고 있으며 칠레 국민들은 ‘칠레여 일어나라!(Levantate Chile)’와 ‘칠레 사람들이 칠레를 돕는다!(Chile ayuda a Chile)’라는 두 구호를 외치며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는 힘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구호품을 받은 칠레 사람들은 모두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한국교회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며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감사를 알고, 받은 사랑과 은혜를 아는 칠레 국민들의 모습과 위기 대처 능력은 참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 목사)의 순발력과 18개국에서 재난 구호를 해 온 풍부한 경험, 현장 중심적인 구호 활동, 생명의 위험에도 기쁨으로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 그들의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 칠레는 한국에서 땅 끝처럼 먼 곳인데 재난의 소식을 듣자마자 짐을 싸고 비행기표를 구입해 달려 왔다는 이석진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영혼에 대한 사랑은 거리를 초월해 달려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지진 같은 재난이 복음 전파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과 실라가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해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 것처럼, 구호품을 받기 전에 함께 기도하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기간 칠레에 복음의 문이 열리는 하늘의 기적을 기대하게 되었다. 재난 시의 일주일 구호 활동이 10년 동안 복음을 증거한 것 못지 않게 굳게 닫힌 도시와 나라에 복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체험하였다.
함께 구호 활동을 한 구스타보 형제는 이재민들이 지진과 쓰나미로 집과 모든 것을 잃어 슬픔 속에 있지만, 그들에게서 ‘희망의 눈빛’을 보았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갖자. 칠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 생각났다. 나도 ‘힘을 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라는 칠레 구호 현수막의 글귀를 마음 속에 되새기며 파라과이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
행복한 구호 대원 양창근 파라과이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