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공주님’ 포기하고 먼 여행 떠난 열국의 어미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아브라함의 신실한 아내 사라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부모로부터 받은 본명이 사래(공주라는 의미)인 그녀는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 갈대아는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만 사이에 끼어있다. 갈대아 우르는 메소보다미아의 유명한 고도(古都)였음이 근대 발굴에 의해 밝혀졌다. 유적들은 이라크 유브라데강 하류 서안에 있고, 이곳은 바벨론 동남쪽 약 240km 지점이다.

갈대아에서 대표적인 성읍(수도)은 우르인데, 그곳은 대부분 습지로 구성돼 있다. 아브라함 당시 갈대아의 주민들은 어업, 수렵, 소규모 농업과 가축 사육업을 주로 했다. 사라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있는 집성촌이었다. 사라의 본명 사래가 ‘공주’임으로 보아 갈대아 지역을 통치하는 왕족의 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이복 오빠인 아브라함과 갈대아 우르에서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귀족 및 왕족들이 이복 남매 간에 결혼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창 20:12). 나이 65세가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을 빼고는 최고 멋진 삶이었다. 사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960km 떨어진 하란으로(창 11:31), 하란에서 640km 떨어진 가나안으로(창 12:4,5) 남편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청춘을 모두 보냈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남편의 비전을 존중한, 거룩한 질서 속의 양처로 최선을 다했다.

사라는 장거리 여행 중에 그의 미모와 아브라함의 비겁한 생각 때문에 부끄러운 두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일어나자 그들 부부는 물자가 풍부한 이집트로 내려갔다. 소심한 남편 아브라함은 아내의 미모 때문에 자신이 왕에게 죽임당할까 두려웠다. 황실에 불려간 아브라함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사라를 아내라 말하지 않고, 누이라 소개했다. 사라는 이집트 황제의 첩으로 황궁에 불려 들어갔고,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상납한(?) 덕에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날 밤, 이집트의 바로는 여호와로부터 국가적인 재앙을 당했다. 첩으로 불러온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비로소 알았다. 그들 부부는 바로에게 호되게 책망받고 추방됐다(창 12:10-20). 사라 부부는 남방의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로 이사했다. 이집트에서와 같이 남편 아브라함은 그랄왕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브라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그랄왕(아비멜렉)은 사라를 첩으로 취했다. 서로 부부의 연을 맺으려던 밤, 그랄왕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라 알려줬다. 사라를 보내지 않으면 왕이 죽을 것이라 경고했다.

사라는 나이 칠십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이스라엘 민족 설립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허사로 돌아갈까 걱정이 됐다. 사라가 지구상 수많은 민족의 어머니(창 17:16)가 될 것이며, 반드시 약속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믿지 못했다. 사라의 오래된 불임증(창 11:30)은 아브라함 가문을 통해 강대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약속을 거듭 반복해서 말해도 사라는 비웃는 듯한 웃음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강한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창 18:12).

사라의 병적인 불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실현시키려는 어리석은 방안을 궁리하게 했다.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삼아 이스마엘이란 건장한 아들을 얻게 됐다(창 16). 하나님의 뜻이 아닌, 어설픈 사라의 인간적인 작전은 가정의 평화를 송두리채 깨뜨렸다. 사라의 학대를 받은 하갈이 임신 후 가출까지 하는 등 명문 셈족 가문에 큰 불행이 줄을 이었다.

사라가 89세에 이르자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을 주신다고 또다시 말씀했다. 하나님은 조그마한 한 가정의 공주(큰 어머니)로 불리던 사래를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사라’로 개명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은 지 1년 후, 여호와는 사라의 닫힌 태를 열어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게 했다(창 17:15-22, 18:9-15, 21:1-5). 사라와 아브라함 부부가 고령에 낳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한 귀중한 열매였다. 하나님이 한번 말한 약속(작정 및 예정)은 반드시 성취됨을 들려줬다.

약속의 아들 이삭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의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에서 소외된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복동생 이삭을 희롱했다. 그 광경을 바라본 사라는 속이 몹시 상해서 남편에게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母子)를 당장 내어쫓으라 강박했다(창 21:8-21). 한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형제가 둘로 분리돼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두 형제를 통해서 이어진 후손들은 오늘까지도 갈등 속에 살고 있다. 한 여인의 불신이 수세기를 거치면서 씻을 수 없는 민족간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는 127세까지 이 땅에서 살다 가나안 땅 헤브론(기럇아르바)에서 죽었다. 남편 아브라함이 정가로 구입한 마므레 앞 막벨라굴에 장사됐다(창 23:1,2,19). 헤브론에 있는 그녀의 무덤(창 23)은 헤브론 땅에도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뤄질 것을 선포한 메시지가 됐다.

사라는 여호와에 대한 신뢰, 자기 억제 및 자비로운 마음이 약간 부족한 여인으로 성경에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와 베드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사역에 적극 동참한 그녀를 크리스천 여인의 중요한 모델로 선포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크리스천 여인의 모델이라는 천국의 작위를 얻고, 세상을 떠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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