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투표하러 가기 전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야곱이 사랑한 여인 라헬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주전 21세기 이 땅에서 한 남자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다 간 라헬(‘암양’ 또는 ‘여행하다’는 의미)은 야곱의 외삼촌(리브가의 오빠)인 밧단아람 사람, 라반의 둘째 딸이고 야곱의 모친 리브가의 친 조카다. 그녀의 조부 나홀은 오래 전 친형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견고한 나홀성을 세웠고, 부와 권력을 한손에 쥔 토호 세력이 됐다.

야곱이 가나안에서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권한을 획득한 후 이삭의 가정에 큰 불화가 생겼다. 야곱은 형 에서의 무서운 보복을 피해 외가가 있는 하란 땅으로 급히 도주했다. 어느날 해가 질 무렵,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우물가에 도착해 방황하던 중, 그곳 성주로 있는 라반의 양을 끌고 물을 먹이러 나온 라헬을 만났다. 라헬은 흰색 털을 가진 암양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으며, 매우 명랑하고 활기찬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청년 야곱은 자신과 반대의 성품을 가진 아름다운 피부의 소유자 라헬을 마음 속 깊이 짝사랑하게 됐다.

라헬로부터 조카 야곱의 소식을 접한 외삼촌 라반은 멀리서 찾아온 조카를 반갑게 맞았다. 라반은 당시 동양 최대의 갑부로 알려진 여동생 리브가의 아들이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에 매우 정중하게 귀빈으로 예우했다. 여동생 리브가가 보낸 긴 낙타 행렬과 값비싼 선물 꾸러미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라반 앞에 나타난 야곱의 몰골은 부잣집 장자의 모습이 아니라, 영락없는 무일푼 거지로 보였다. 혈혈단신 맨손으로 도주해 결혼할 수 있는 지참금이 없던 야곱은 아름다운 라헬을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예비 처가의 머슴이 됐다.

곱고 아리따운 라헬을 열렬히 사랑한 야곱은 결코 짧지 않은 7년 동안을 수일처럼 느끼며 성실하게 머슴살이를 수행했다. 자신을 아내로 얻기 위해 날마다 땀흘려 일하는 청년 야곱을 바라보며 라헬은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만끽했다. 7년 후, 즉 주전 1915년경 야곱이 라헬과 혼인 예식을 마친 첫날 밤 라반은 라헬 대신, 총기가 없어 부족해 보이는 큰딸 레아를 신방으로 들여보냈다.

첫날밤을 보낸 이튿날 새벽, 신랑 야곱은 신부가 레아로 바뀐 것을 알고 외삼촌에게 항의했다. 라반은 메소포타미아 관례에 따라 7일 후 라헬을 야곱의 둘째 아내로 내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취하기 위해 또다시 7년을 머슴으로 일해야 했다. 라반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통 때문에 동생을 언니 앞에 시집 보낼 수 없어서 야곱을 속였다고 변명했다. 머슴 신분으로 있던 야곱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7일을 기다렸다가 마음으로 사랑한 라헬을 두번째 아내로 맞아들였다. 외삼촌의 제안대로 다시 7년간 라반의 종으로 험난한 삶을 살게 됐다. 젊은날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기꾼 야곱이 대(大) 적수, 외삼촌의 술수에 속아 큰 고통을 당하게 됐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결혼 후 아기를 잉태할 수 없었다. 야곱이 라헬 만을 사랑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불쌍한 장녀 레아에게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태의 문을 열었다. 남편 야곱의 사랑이 언니 레아에게 약간 기우는 것을 느끼게 됐다. 라헬은 언니 레아를 질투해 자신의 여종 빌하를 야곱의 첩으로 보냈다. 여종 빌하가 단과 납달리를 낳자 라헬은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창 30:18). 그것은 셈족의 오래된 관습으로 소위 ‘누지서판’에 기록돼 있다. 하나님이 라헬을 불쌍히 여겨 태의 문을 열어주자, 그녀의 첫 아들 요셉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낳았다(창 30:22-25).

남편 야곱의 권유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도주할 때, 라헬은 아버지 라반이 평소에 점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드라빔을 훔쳤다(창 31:14). 라반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르면, 드라빔 같은 우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또 우상을 소유한 자가 부모의 모든 유산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 라반의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받기 위해 라헬은 라반이 섬기고 있던 우상, 드라빔을 몰래 탈취했다.

라헬은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이동하던 중에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게 됐다. 아브라함 가문의 공동묘지인 막벨라굴에 묻히지 못하고, 에브랏(베들레헴의 옛 이름) 길가에 매장됐다(창 35:16-20).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무덤 앞에 아담하고, 예쁜 묘비를 세워줬다(창 35:19, 20). 그녀의 묘지는 베냐민 지파가 여호수아를 통해 땅을 분배받은 경계인 셀사 부근에 놓여 있다(삼상 10:2).

라헬은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칭찬받을 만한 성품이나 인격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자신이 아기를 낳지 못하자 모든 책임을 남편 야곱에게 돌리면서 온갖 불만을 토로했고, 임신한 언니를 심하게 질투해서 평화로운 가정 분위기를 망치기도 했다(창 30:1,2). 예레미야 선지자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로잡아 간 10부족의 슬픈 굴욕을 라헬이 자식을 위해 큰 소리로 애곡하는 것에 비유했다(렘 31:15-16). 마태는 헤롯 왕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살 이하 어린아이들을 죽인 사건과 라헬의 애통을 연결하기도 했다(마 2:1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녀를 사랑하셔서 므낫세, 에브라임, 그리고 베냐민 지파를 세울 수 있는 큰 어미가 되게 하셨다. 그녀의 자손들은 북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권을 얻게 됐다. 선택한 백성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한편 평생을 질투로 살다 비참한 죽음을 당한 라헬의 인생 스토리는 오늘날 근거없이 남의 인격을 모독하며 독설만을 퍼붓는 지방자치단체 지도자 선거 입후보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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