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이드로와 교회행정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행정의 달인, 모세의 장인 이드로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지도자, 모세가 살고 있던 주전 15세기 미디안 땅에 ‘이드로’라 불려지는 인물이 있었다. 이드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풍부함, 돌출, 초월’이라는 의미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이 갖는 문화적 특성상 그는 미디안 족속들을 이끌고 있던 탁월한 민족 지도자, 국가를 풍요롭게 만든 복된 사람으로 생각된다.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는 ‘르우엘’이라는 명칭으로도 세간에 불려졌다(출 2:18). 르우엘은 친구를 의미하는 ‘레우’와 하나님(또는 신)을 의미하는 ‘엘’의 합성어로 ‘하나님(신)의 친구’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다. 아마도 그것은 본명이 아니라, 당시 미디안족속 정부가 이드로에게 부여한 직책명이었을 것이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 종족 사회에서 상위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르우엘이라 칭해지는 직책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르우엘(신의 친구)이라는 말은 고대사회 당시 미디안 종족을 이끈 최고 종교 지도자에게 부여한 직책명으로 보인다.

이드로는 미디안 종족의 최고 영적 지도자 제사장이었으며, 겐 출신 사람으로 전해진다(삿 1:6). 이스라엘 민족 제1대 족장 아브라함 당시 겐 사람은 갓몬 사람 및 그니스 사람과 함께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선진 문화족속 중 하나였다(창 15:19). 당시로서는 선진 유목민이었던 미디안 사람과 깊은 관련이 있었으며, 그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겐 사람을 포함한 보다 넓은 족속의 개념이 미디안이었던 것이다. 경기도 사람 속에 일산 사람이 포함된 것과 같은 이치다.

겐 사람의 일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과 행동을 함께했고, 결국 이스라엘 족속에게 동화됐다. 여호수아 시대부터 겐 사람들은 가나안 남부 지역에 주로 거처했으며(삼상 15:6), 우수한 금속세공(金屬細工·metal worker)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만 해도 이드로는 모세의 정권과 다르게 우수한 선진문물을 가진 민족의 최고 통치자였던 것이다.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 외에 여섯 딸을 슬하에 뒀으며(출 2:16), 호밥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을 둔 것으로 보인다(민 10:29). 그는 미디안 족속 중 품위있는 엘리트였으며, 미디안 최고 상위에 있는 가문을 이룬 유명인사였다. 이드로는 분노한 이집트 황제를 몰래 피해서 야반도주한 나그네, 모세를 환대하며 자비를 베푼 온유한 지도자요 명품 인간이었다. 명품 인생은 가난한 고아 과부 및 이방 나그네를 사랑으로 돌보는 신앙의 사람을 의미한다. 소망 없게 보이는 무일푼의 이방 나그네를 사랑하는 딸과 결혼시켜 한 가족을 이루게 한 폭넓은 성품의 소유자요, 열린 마음을 지닌 세기적 지도자였다.

출애굽 3개월 이후 미디안 광야에 진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초라한 장막을 방문, 양국 간 싸움을 종료시킨 평화의 사도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본진을 방문한 목적은 장인으로서 사적인 것도 있었지만, 공적으로 양국간 ‘불가침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있었다. 미디안과 이스라엘 양자 간의 전쟁을 막고 정치, 경제 및 군사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선한 외교사절이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탁월한 행정 조직가였다. 오랜 행정경험을 토대로 선진 통치원리를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에게 그대로 가르쳐준 마음이 넓은 인물이었다. 타민족·타국가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발전하도록 자신의 지혜와 귀한 자료를 감춤 없이 제공했다. 지엽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국제적 마인드를 지닌, 당대에서는 보기 드문 탁월한 인물이었다.

모세가 홀로 300만 이스라엘 민족을 하루 내내 재판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목격한 이드로는 소위 ‘사역의 위임화 원칙’을 그에게 제시했다. 훈련된 사람들 중 개인 능력에 따라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및 천부장 등 중간 지도자를 세워 효율적인 행정체계를 수립하라는 제안이었다. 단계별 행정조직은 제사장 이드로가 미디안 족속들의 통치에 이미 사용했던 검증된 통치기법임에 틀림없다.

단계별 조직을 통한 사역의 위임화 원칙은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 시대에도 크게 활용됐다. 주전 1406년 이후 여호수아를 수장으로 한 가나안 공동체는 이드로가 가르쳐 준 행정원리를 그대로 준용해 성공한 고대 사회의 통치모델이 됐다. 여호수아는 단독으로 가나안 공동체를 통치하지 않고, 다양한 중간 지도자들을 달란트에 따라 세우므로 아름다운 민족 분권 국가를 이뤘다. 7년간 가나안의 이민족들을 복속시켰고, 8년간 지파의 능력과 적성에 맞게 가나안 땅을 민주적으로 분배해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통치를 효과적으로 완성했다. 이드로의 지혜와 권고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중요한 지렛대가 됐다.

탁월한 21세기 지도자는 지역, 민족을 뛰어넘어 우주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내 지역, 내 나라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지도자로서 함량이 부족한 사람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유익도 중요하지만, 범국가적 및 세계적인 유익을 생각하며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복잡한 현대사회를 리드할 수 있다. 지금 대한한국은 이드로 같은 폭넓은 가슴을 지닌 정치, 경제 및 종교지도자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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