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50인] 예수마을셀교회 박영 목사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성장은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섰다. 드라마틱한 ‘개척 신화’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중·대형교회라는 소위 ‘주류’로의 편입은 목회 초년생들에게 하나의 ‘진입장벽’과도 같아졌다. 웬만한 사명감으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오직 ‘진짜’만이 살아남는 세계가 바로 지금의 한국교회다.
그래서 이 ‘진짜’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동시에 도전을 던진다. 지난 2003년 교회를 개척해 3년 만에 자립에 성공하고 7년 만에 새성전을 건축, 부흥을 이끈 주인공이 있다. 예수마을셀교회 박영 목사. 무엇보다 놀라운 건 250여 명의 청·장년 성도들 중 70%가 청년, 120명이 교회 비전에 평생을 바친 동역자들이라는 점이다. 그가 과연 ‘진짜’일지는 하나님만 아실 일이나, 가뭄에 내린 비가 ‘단비’이듯 조심스레 ‘진짜’라고 말해본다.
교사에서 목사로… 인생의 제2막을 열다
박 목사가 처음부터 목사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을 2막으로 구분한다면 1막은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절이다. 7년 전 인생 2막을 열었으니 그의 삶 대부분이 1막이었던 셈이다. 그의 첫 무대는 왜 막을 내렸을까.
“그저 주님을 알고만 있었을 뿐 그 분과 인격적 만남을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집사로, 또 여러 직분으로 교회를 섬겼지만 정작 그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참석한 한 집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 것이죠.”
그 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하나하나가 주님을 찾는 불쌍한 영혼들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방과 후에 학생들을 불러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매년 기독교 동아리를 조직해 학교 안 독서실과 음악실에서 집회를 가졌죠. 그러면서 교사 하나가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나 하나가 바뀌니 주변 모든 것들이 바뀌는 것을 그 때 경험했어요.”
그는 곧 교사를 그만두고 목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교회를 개척하게 된 건 교사 시절 참석한 수원 기독교사 모임이 계기가 됐다. 15명이 모인 그곳에서 그는 한 달에 한 번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셀’(Cell) 사역에 눈을 뜬 순간이기도 했다.
“모임을 인도했지만 회의감도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모임도 차츰 활기를 잃어갔죠. 그러던 중 셀교회 컨퍼런스에 참석해 셀그룹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이것을 기독교사 모임에 적용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엄청난 회복과 은혜가 폭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무감 때문에 모이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니 모임이 더욱 풍성해지더군요.”
“프로그램식으로 셀을 도입해선 안 된다”
결국 그는 이 때 함께한 교사 가정들과 ‘예수마을셀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공동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추구하는 예배 공동체가 바로 셀교회라는 그의 확신에서 교회는 출발했다.
그러나 주변의 선배 목회자들은 교회 이름에서 ‘셀’자를 뺄 것을 권유했다. 아직 한국교회에서 셀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고 그것이 한국적 상황에도 잘 맞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셀교회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 확신은 성공적 열매로 드러나고 있다.
“단지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셀교회를 도입하면 실패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과 부흥에 연연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선행돼야 해요. 이 것 없이 친밀한 교제와 나눔만을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은혜가 떨어지고 서로 상처만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죠. 셀교회의 강점이 되레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거에요. 가까운 만큼 서로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야 하는데, 그저 프로그램의 하나로 셀교회를 추구하면 이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셀 토양이 없는 가운데 프로그램식으로 셀을 도입해선 안 될 이유죠.”
그가 개척한 교회는 점점 성장해갔다. 몇 개의 가정이 전부였던 교인 수는 개척 후 몇 달이 지나자 40여명으로 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청년이었다. 이는 박 목사가 교사 시절 뿌린 씨앗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박 목사 밑에서 성경을 배운 학생들이 졸업 후 박 목사를 다시 찾은 것이다. 20평 남짓의 작은 임대 사무실에서 시작된 교회는 이후 100여평의 건물로 옮겨갔고, 최근 새 성전을 건축해 입당하기에 이르렀다.
“교회 모든 사역을 셀리더들이 결정하고, 교회는 공동의회와 제직회 대신 셀리더 회의를 실시합니다. 그래서인지 교회가 잡음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있어요. 보통 교회가 성전을 건축하면 어려움을 겪고 성도들도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교회는 교인들이 더욱 하나 되는 건강한 부흥을 이뤄가고 있죠. 저는 이것이 건강한 셀 중심의 목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마을셀교회의 가장 큰 강점이죠.”
아내는 목회 사역에 있어 가장 탁월한 동역자
그는 지난 7여 년 간의 사역에서 아내인 김영순 사모의 헌신에 가장 큰 고마움을 느낀다.
“제 아내가 여성 사역의 전체를 총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절반을 아내가 담당하고 최종 결정만 제가 하는 정도죠. 제 목회에 있어 가장 탁월한 동역자가 바로 제 아내에요. 아내가 없었다면 전 벌써 소진돼 버렸을 겁니다. 그럼 면에서 사모는 셀교회의 ‘제2의 목회자’라고 할 수 있어요. 성공하는 셀교회를 이루려면 사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박 목사는 오는 2020년까지 2만 명의 셀리더 양육, 2천 명의 풀타임 전임 사역자 양성, 2백 명의 선교사 파송과 전 세계 2백 개 네트워크 교회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명 ‘2020 세계비전’. 그는 이것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한 명이 전도되면 저는 그를 잠재적 셀 리더로 봅니다. 단순한 성도가 아닌 거죠. 그를 평범한 성도가 아닌 저와 우리 교회의 동역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수직 구조가 아닌 수평 구조에요. 그러다 보니 교인들 모두가 평신도이지만 강력한 사역자 마인드로 무장해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꿈을 꾸며 사역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