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50인] 잠실동교회 백광진 목사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듯했다. 웃어야 할 때, 딱 그만큼만 웃었고 감정은 넘치는 법이 없었다. 설교도 그랬었다. 극도로 절제돼 있다는 느낌. 읽고 읽으면서 고치고 또 고쳤을 것이다. 잠실동교회 백광진 목사는 그 자신만큼 정돈된 집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그런 그에게 웃으면서 첫 질문을 건넸다.
-혹 완벽주의십니까.
“그래보이나요(웃음). 글쎄……,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완벽하진 않아요. 항상 주님을 닮으려 노력하는 거죠. 그게 완벽주의인가. 하하”
-교인들이 어려워하진 않나요.
“엄격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에게 뿐이고 남을 대할 땐 그렇지 않죠. 교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입니다. 기자님은 제가 어렵나요?”
물론 아니라고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 편했고 무엇보다 자상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눈빛과 태도는 지난 15년, 한 교회의 담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비로소 얻게 된 그것이었다. 이제 그의 목회가 궁금했다.
-어떻게 목회하십니까.
“제 목회를 한 단어로 말하면, 셀입니다. 셀 목회죠. 80년대 미국 유학길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이 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좀 생소하기도 했고, 한국의 소그룹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매우 궁금했어요. 한 교수님으로부터 그 의미를 전해 들었는데, 교수님 설명 중에 ‘위임’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 했어요. 뭐랄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암튼 굉장한 충격을 받았죠.”
-왜 그런 충격을 받으셨는지요.
“단어 뜻 그대로죠. 권한을 넘겨준다. 특별할 건 없었지만 제겐 매우 새로운 개념이었어요. 목회는 그저 목사만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셀’(Cell)이라는 또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셀 리더에게 목회의 일정 부분을 위임한다는 것. 참 신선하면서도 획기적이었죠. 제 목회에 있어 하나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평가하시기에 셀 목회는 성공했다고 보시나요.
“처음 셀의 개념을 알고 난 후, 이것을 바로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교회를 개척했죠. 저와 제 아내, 그리고 두 여집사님을 포함해 모두 네 명이서. 그런데 교인이 어느새 20명으로 늘더군요. 교인들 스스로가 셀을 중심으로 단합하며 엄청난 열정을 보였죠. 정말 살아서 증식하는 세포처럼. 왜 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절감했습니다. 급기야 교인들이 제게 교회 건물을 사자는 제안까지 했어요. 그 때만 해도 미국에서 자기 건물을 가진 한국인 교회는 드물었습니다. 결국 교회를 구입했죠. 이런 게 셀이구나.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 잠실동교회 부임 후엔 어땠습니까.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셀이라는 단어에 좀 생소했을 뿐이지 그 취지와 의미에 있어선 전적으로 공감을 했으니까요. 처음 몇 해, 적응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어느덧 자신들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있어요. 그저 예배에만 참석해서 말씀 듣고 기도하며 은혜만 받는, 그런 소비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생산자로 거듭났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요.”
-그래도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있었죠. 개인적으로 좀 그랬어요. 셀 목회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과연 이것을 잠실동교회에 적용하는 게 옳은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유지돼 왔던 교회였고, 성경에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으니까요. 기도하다 결국 내가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결심까지 했었죠. 하나님이 새로운 곳에서 이 셀 목회를 적용하길 원하신다면 아무 조건 없이 교회를 떠나겠다고요. 그런데 교인들이 절 말렸습니다. 교회에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잠실동교회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도 한참을 더 걸어야 할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고 교회가 대로변,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단번에 교회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물어물어 찾아간 교회.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회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기분이 묘했다. 묻는 사람마다 교회를 알다니, 교회가 점점 잊혀가는 세상에서…….
-한국교회가 힘을 잃고 있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몇 년이 지나면 기독교가 급격히 쇠퇴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교회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아요. 안타깝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돌파구가 어디에 있을까 하고.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어려울 때일수록, 모두가 힘들고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을 때 방법은 하나,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죠. 어두운 밤, 산 속을 헤매는 누군가가 결국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 쉽지만 어려운 말인 것 같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비록 8명뿐이었지만 그들이 탄 방주에 구원이 있었듯, 이 시대 기독교인의 수가 줄고 그 영향력이 작아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의 소망은 교회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예비하시기 때문이죠. 그들로 인해 다시 교회는 일어날 것입니다. 저와 잠실동교회 모든 교인들도 그 남은 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구요.”
-그래도 어떤 계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요즘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자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현상 자체가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최근 자살한 유명 연예인들도 알고 보면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우리 교회 다니던 어떤 연예인이 자살했다고 하면 나라도 그 충격이 컸을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거죠. 대체 뭐가 잘못된 건가. 가만히 돌아보면 그 동안 교회가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자살한 연예인들은 소위 ‘스타’들 아니었습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걸 가졌으면서도 왜 그들의 삶은 불행했을까요. 대개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질적으로나 표면적으로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아요. 연예인, 기업 총수, 또 얼마 전엔 자칭 ‘행복전도사’라는 사람까지 자살을 택했죠. 물질과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그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교회가 이걸 말해야 합니다.
신론(神論)과 인론(人論)이 제일 중요해요. 결국 이 둘 사이에서 타락과 구원, 종말 등 성경의 모든 것이 다 나오죠. 하나님을 말하면서 인간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인간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이 둘의 사이가 너무 먼 것 같아요. 과연 새 생명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론과 인론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인터뷰가 끝났다. 긴장이 풀렸는지, 백 목사는 대화 중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던 녹차를 그제야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거운 기운을 받아들인다. 녹차를 마시기 전 기도하는 그 잠깐의 순간. 지금까지 그가 한 말보다 더 깊이 기자의 속을 파고든다.
노아의 가족은 고작 8명뿐이었지만 그들이 방주를 지었고 그곳에 구원이 있었다.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소망임이 분명하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백 목사를 보며 따라 웃었다. 그 믿음이 전염된 듯 했다.
“행복한 목회자로 살 겁니다. 행복한 목회를 하고 싶어요. 그럼 교회도 행복해지겠지요.”
백광진 목사는
미국 트리니티대학교와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을 졸업(M.Div)하고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장로교회를 개척해 7년간 목회하다 지난 1996년부터 지금의 잠실동교회에서 담임으로 사역 중이다. 현재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 객원교수이자 송파구 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