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무엇보다 귀한 ‘당신’의 존재
할렐루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사야 41장 14절로 16절 말씀을 가지고‘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처럼 좋으신 분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없습니다. 죄와 허물 가운데, 절망 가운데 살아가던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여 주시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풍성히 채워주시며, 우리 일생을 함께 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 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한 평생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셔서 하나님 자녀삼아 주시고,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로 함께 하여 주셔서 우리의 일생을 함께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할렐루야!
이사야 41장은 절망 가운데 처해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놀라운 회복과 축복의 말씀입니다. 장차 너희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이라고 하는 주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들의 현실은 지금 버러지같이 비참하고 보잘 것 없고 무기력한 그러한 모습이었지만 장차 그들을 변화시켜 주셔서 새 타작기계와 같이 변화시켜 주심으로 크고 위대한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주님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 당하고, 때때로 버림 받고 짓밟힘 당하고 상처 받고 살아도 주님이 함께 하여 주셔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은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우리를 택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첫째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여서 하나님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왠 일인지 왠 은혜인지 나 같은 죄인이 택함 받아 구원 받고, 복 박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어요. 내가 그렇게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복 받은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하고, 정말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예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정결케 하여 주시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서 살아가게 하여 주신 그 은혜를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날마다 주님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손길로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독생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온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우리는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 일생이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생이 감사의 일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관데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를 주님이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우리가 어떤 절망의 자리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저 땅 끝까지 가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그곳에서 고통과 괴로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할지라도 주님이 그곳에까지 오셔서 나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1장 9절에,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떠나 먼 곳에 끌려가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그 현실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결국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는데, 그런 절망의 순간, 고통의 순간에도“내가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그 어디에도 주님이 나를 떠나시지 아니하고 함께 하시며 나와 동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때때로 인생을 살다보면, 한없이 외롭고 슬플 때가 있어요. 사랑하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고, 또 내가 업신여김을 당하고, 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하던 일이 잘 되지 않고, 실패의 연속이고 할 때,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이렇게 살아 무엇 하나.’할 때에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해 왔을 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제 사무실에 우리 교회학교 선생님 한 분이 기도 받으러 왔어요. 그런데 목사님, 지금 희귀병을 앓는데 이 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없고, 약도 없답니다. 머리끝부터 머리가 굳어져 가면서 몸이 서서히 죽어가는 병입니다. 기도밖에 없어요. 그 절망의 때에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여, 함께하여주옵소서. 주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사, 이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리라! 할렐루야!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정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비극적인 현실 앞에 내가 서있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2008년 12월 8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비행기가, 전투기가 돌아오던 중에 사고로 주택가에 떨어졌습니다. BBC방송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보도를 했는데요, 이 주택가에 떨어진 그 F-18전투기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서 그 주택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한국 분들입니다. 남편은 일 나가서 다행히 죽음을 모면했고, 부인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아이와 또 한국에서 산후 조리를 해주기 위해 봐주기 위해서 온 장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그런데 이 집의 가장이 되는 동윤씨는 아주 믿음이 좋은 분이였어요. 윤동윤씨가 사고현장의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아내와 딸, 그리고 장모님을 데려가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제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앞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종사 자신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용서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나갔을 때, TV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습니다. 수많은 편지가 왔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윤씨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교회가, 이웃들이, 아니 온 국민들이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슬픔에 처함 우리에게 문제를 만난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굽이굽이 인생길에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큰 충격적인 사건을 당했을 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이렇게 인생을 끝내야겠다고 하는 그런 절대절망에 처했을 때 우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손이 여러분을 꽉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걸어갈 수 없이 지친 우리를 안고 가시며,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 은혜의 말씀, 치료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아니하리라!”할렐루야. 그 주님이 우리와 지금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 되시고, 내 삶의 목자가 되시고, 내 삶의 인도자가 되시고, 내 삶의 영원한 나의 동행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돌아가실 때 이와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네.” 그리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반복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네...”할렐루야! 할렐루야!
얼마 전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우리 칠레에서의 광부 매몰사건. 700m나 되는 깊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저들. 그 높이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만한 높이인데,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구멍을 뚫어서 연결될 수 있는 확률이 700m 밑에 있는 바늘 찾기와 같은 그런 어려운 일인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어요. 이 굴착 전문 그 지형을 보는 전문 여성인이 와서 그곳에 구멍을 뚫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연결돼가지고, 그래서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캡슐을 만들어 집어넣어 69일 만에 33명이 다 구출됐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저들이 그 팀장에 의해서 딱 질서 있게 생활을 했고, 또 믿음 좋은 분이 저들에게 신앙적으로 위로해주고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고 한 사람도 피해 입지 않고 모두 구원을 받은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존자들이 나와서 다 감사하는 말 가운데 두 번째 생존자(마리오 세불베다)가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고립되어 지내면서 다시 밖으로 나갈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절망 가운데 고통 가운데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저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 전지전능 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 약속에 말씀에 굳게 서서 예수님에 십자가를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때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에 성령에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함을 받고 믿음에 전진해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에 손을 붙잡고 우리의 인생길을 동행하십니다. 찬송가 499장 후렴에 이와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할렐루야.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이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에 동행하시며 함께하시고 은혜에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 너 이스라엘을 버러지 같다고 부르고 있습니다. 버러지 같은 존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2. 버러지와 같은 존재
이사야 41:14 절에,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러지 같다고 부릅니다. 이 버러지는 지렁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 백성이 얼마나 지금 그 깊은 절망에 처했던지 버러지 같이 지렁이처럼 돼버렸어요. 지렁이는 땅속에 살면서 무엇 하나 큰일을 이루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근데 흙을 먹고 흙을 뱉어내며 살아요. 이 지렁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렁이가 팔로 막 헤쳐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렁이가 큰소리로 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땅속에 파묻혀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생의 고난이 깊었던지, 이스라엘백성이 포로로 끌려가서 얼마나 그 삶이 힘들었던지, 버러지같이 지렁이처럼 살고 있다고 주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주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가 환난을 만나고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 모습이 지렁이 같이 무기력하고 무가치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그러한 모습으로 변해버릴 때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을 당하는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구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버러지 같은 이스라엘을 지렁이 같은 우리에 그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을 주님이 불쌍히 보시고 함께하시며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문제 가운데 있어도, 비록 내가 지금 실패가운데 있어도, 비록 내가 절망가운데 있어도, 비록 내가 육신의 질병가운데 있어도, 장차 주님께서 너를 일으켜 주실 것이라. 너를 일으켜 주실 것이라.
왜 그들이 버러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교만해서 우상숭배하고 세상길로 가니까 심판을 받아서 그들이 붙잡혀 포로로 끌려가고 버러지 같이 지렁이 같은 존재에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실패로, 절망으로, 고통으로 버러지 같은 존재가 됐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끝은 하나님에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가운데에 모시고“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하시면 주님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책을 읽다보니까요, 지렁이는 밟힐 줄은 알아도 밟을 줄은 모른데요. 저는 그 말씀 속에 깊은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요. 조금 배웠다 그러면 배우지 못한 사람 무시하잖아요. 무시하고 밟는 거예요. 돈이 좀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러한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들을 무시 할 때가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남을 짓밟을 수가 있어요. 말 한마디로 짓밟을 수가 있고, 행동으로 짓밟을 수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남을 짓밟는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지렁이는 평생 남을 짓밟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깨어지고 낮아져서 지렁이처럼 변화가 되면 하나님이 그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깨어지고 낮아져서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백하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잘난 줄 알았어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였고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고, 또 당시 그 앞에 출세 길이 열려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공회에서 인정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 아주 탄탄대로가 열린 것 같았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다 감옥에 집어넣고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잘 죽는다고 증인으로 서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다메섹에 가다가 빛과 함께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고꾸라 졌습니다. “주여 뉘이시니이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가 회개하고 금식하고 안수 받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눈에서 비늘이 벗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완전히 깨어진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의 일생을 보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했습니다. 그가 지렁이임을 깨닫고 고백한 고백이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 고집도 교만도 불순종도 날마다 죽노라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내 중심의 삶에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보세요. 지렁이는 큰소리도 못 내고 흙탕물도 못 일으키고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주님 앞에 지렁이가 되면 하나님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괜히 큰 소리 내고 교회를 어지럽히면 심판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렁이처럼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님은 아주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구두 수선공으로 있다가 하나님에 부름을 받아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어요. 언젠가 인도 총독이 부르는 만찬장에 참석을 했는데 그가 지나가니까 뒤에서 누가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 구두 만들던 사람이라지?” 천한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그를 비웃은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돌아서서 공손히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구두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수선하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부족하고 그렇게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는 사람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큰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을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미련한 것 같고, 가진 것 없고, 힘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위대한 하나님에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문제도 어려움도 넉넉히 이기고 하나님의 귀한역사를 나타내는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헨리 나우웬 교수가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능력으로 성공하지만 연약함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자신 의지하지 말고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져서 주님만 높이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새 타작기계로 만드시는 하나님
그렇게 될 때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타작기계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새 타작기계로 만드시는 하나님에 대하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41장 15절, 16절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지렁이 같이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력한 새 타작기로 만들어 주셔가지고, 이 타작기는 무엇이냐 하면은 곡식들을 다 잘라내서 정리하는 추수하는 기계입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타작기계로 만들어 주셔갖고 산 같은 문제가 다가와도 와삭와삭 다 무너트려버리고 그리고 이것을 겨처럼 바람에 다 날려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와도 고통이 다가와도 이 같은 것들이 와삭와삭 부서져서 다 성령바람에 날려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포로로 끌려가있으니까 그들이 산 같은 절망 앞에 처해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절망이고 고통이고 괴로움입니다. 그런데 이 절망의 산을 새 타작기계로 만들어서 와삭와삭 물어가지고 다 날려버리고 평지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기적이 다가옵니다.
우리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앞에 여러 가지 큰 문제의 산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앞에는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여서 자식을 사모하는, 자식을 바라는 산이 놓여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75세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100세에 이루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와삭와삭 부셔서 안 된다, 할 수 없다, 이 절망에 산을 부숴버리니까 하나님께서 100세에 이삭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까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가고,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죄수로 갖히기도 합니다. 그 노예라고 하는 산, 죄수라고 하는 산, 마음에 높아진 절망의 산을 믿음으로 와삭와삭 부숴버릴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셔서 애굽에 총리대신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가 태산같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주님 안에서 변화되었습니다. 위대한 타작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도구가 되어서 승리의 도구가 되어서 어떠한 문제에 산도 와삭와삭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절망의 산이 다가와도, 문제의 산이 다가와도, 질병의 산이 다가와도 우리는 와삭와삭 다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그 누구가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내가 아무리 깊은 절망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주님이 도와주시면 내가 새 타작기 같이 위대한 하나님에 도구로 변화되어서 산 같은 모든 문제를 와삭와삭 부숴버리고 날려버림으로 말미암아 내 앞에 산이 다 사라져버리고 평평한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4장 7절에 말씀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평지가 되리라! 문제의 큰 산이, 절망의 큰 산이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남들이 보기에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그러한 지렁이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기사에 난 내용인데 미국 뉴욕주에 버팔로에 살고 있는 마틴 코버라고 하는 공군 중령의 집에 발견된 그림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누가 테니스 치다 공이 날라 와서 벽을 쳐갖고 공이 쳐서 그림이 떨어 졌어요. 그래서 소파 뒤에 그냥 천을 덮고 27년을 그대로 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그림이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부모님께로 들은 기억이 나요. 대대로 그 집에 물려오는 그러한 보물인데 진짜로 미켈란젤로에 그림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태리의 미술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는데 이것이 미켈란젤로에 3대 조각품 중 하나인 피에타를 그린 진품으로 발견됐습니다. 이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숨진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인데 지금 바티칸에 성베드로 성당에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만든 그림인데 가치를 환산해 보니까 놀라지 마세요. 3억 달러, 3,300억. 그 집 소파 뒤에 두었던 그림이 3,300억짜리 그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놀라시지만 진짜 놀랄 것은 여러분은 그 그림에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에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따라하세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 삶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보내주셔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에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할 때 주님에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이 함께하시면 놀라운 변화가 다가오는데,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울이 위대한 주님에 사도 바울이 되는 것 같이 변화가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주님을 떠났던 시몬이 위대한 사도 베드로로 변화된 것처럼 오늘 여러분 맘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 중심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 지렁이가 아닙니다. 더 이상은 여러분 버림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홀트아동병원에 원장으로 있던 우리 조병국 박사님이 쓰신 책인데 이분은 50년 동안 홀트아동병원에서 어린아이들을 진찰하고 돌보았습니다. 이 홀트아동복지회는 여러분 잘 아는 대로 전 세계 아이를 입양해서 보내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입양해보내기 전에 병원에서 다 이 원장님 손을 통해서 치료했습니다. 아주 감동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중에 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 1980년 중반쯤에 한 대학교수 가정에 문제가 생겼어요. 부부가 크게 다투고 이혼하게 됐어요. 그런데 부인이 충격을 받고 두 살 난 어린애를 데리고 달려오는 철도에 뛰어들었습니다.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기차 운전 기관사가 그것을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걸고 기차를 세웠습니다만은 이미 사고를 세우고 난 후에 나가보니까 피투성이가 돼서 그 어머니가 죽어있고 그 옆에 아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데 보니까 두 다리가 잘렸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어요. 왜 그러한 어머니가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몰라요. 그 귀한 아이를 주셨는데 왜 아이를 안고 달리는 기차에 뛰어듭니까. 그 귀한 생명을 왜 포기합니까. 자기혼자 뛰어들 일이지 또 왜 애는 데리고 뛰어가지고. 아니, 그것도 자기 혼자 뛰어들면 안돼요. 절대로 뛰어들면 안 되고, 그런 마음이 생겼어도 마음 고쳐먹고 다시 살아야지.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그런데 이 다리가 잘라진 아이를 그 아버지가 맡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홀트아동병원에 보낸 거예요.
그래서 수술을 해서 겨우 아이를 살려놨는데, 누가 두 다리를 잘린 어린아이를 입양합니까. 그래서 걱정을 했습니다. 차라리 그때 세상을 떠났더라면 고생을 덜 할텐데. 이런 생각도 들었데요. 그런데 이 아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습니다 하고 알리니까 금방 미국에서 연락이 왔데요. “그 아이를 입양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했답니다. “아이가 두 다리가 없는데도 입양하겠습니까?” “네, 입양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집에서 이 아이를 극진한 사랑으로 키우고 다리 의족을 만들어줘 갖고 말이죠. 2년 후에 그 사진이 왔어요. 이 아이가 의족을 한 채 아주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아주 이 얼굴에 천사의 미소를 띠고 웃고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절망을 이긴 것입니다. 할렐루야. 더 이상 지렁이가 아니라 새 타작기가 된 것입니다. 10년이 지나서 사진이 또 하나 왔는데 그때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하고 완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두 다리가 없어졌으니까.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대고 탄식하며 인생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꿈을 가졌습니다. 희망을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지렁이가 아니라 새로운 타작기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일어나십시오. 꿈을 갖고 일어나십시오. 이 타작기는 날카로운 톱니를 갖고 있어서 어떤 곡식이더라도 와삭와삭 다 잘라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 타작기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들어와도, 고통이 다가와도 와삭와삭 다 잘라버리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위대한 승리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환난은 여러분에게 주신 새로운 음식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환난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