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여호수아 22] 영적 전쟁의 자격
2. 여호수아는 분명 할례를 받았으며 장성한 자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아직 전쟁에 나가기에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군인 정신으로는 충만되어 있었지만 그 싸움에서 앞서 싸우는 장군이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의 일에 열심이다 보면 그 싸움을 싸우는 장본인이 자신인 줄로 착각한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서 육이 잘려나간 체험을 한 사람, 단단한 식물을 먹을 정도로 장성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상태에 떨어질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십자가를 깊이 체험한 경험 있는 사람,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이라도 때로는 부주의한 가운데 자신이 싸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가득하여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신뢰하는 가운데 전쟁에 임한다. 이때 하나님은 과연 누가 이 영적 전쟁을 치르는 장본인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는 것이다.
3. 칼을 뺀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기서 ‘장관(captain)’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또한 ‘왕자(prince)’로도 번역할 수 있다(A.S.V). 원어의 뜻은‘장관’보다 ‘왕자’에 더 가깝다. 여기서 성령을 대표하기 위해 나타나신 군대장관은 하늘의 왕자이시다. 이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믿는 이가 영적 세계에서 조그마한 것 한 가지라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영적 성장도 그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 한 가지를 얻는 것도 그러하다. 물론 영혼을 구원하는 문제나 한 성도를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세우는 문제나 그리스도의 간증인 교회를 세우는 일은 더욱 더 그러하다. 이러한 일에 있어 싸움에 나서는 자는 아무리 영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아니라 ‘하늘의 왕자’임을 깨닫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는 곧 성령 자신이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영적 전쟁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생각해 보라! 성령의 강림은 예루살렘 지경의 사탄을 자극하여 그 상황을 전쟁으로 몰고 갔다. 그 모든 전쟁을 인도하고 승리로 이끌기 위해 성령이 보내어진 것이다.
4.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후 모든 전투에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군대장관을 의지해야 했다.
군대장관의 나타남은 결코 여호수아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 장관이었다. 어떤 일이 우리의 뜻에 기뻐하는 대로 진행되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되어져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 받아들여야 한다. 성령은 사람의 뜻을 위해 보내심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내심 받았다. 가나안의 모든 전투는 사람의 지혜나 사람의 재능이 아니라 하늘의 군대장관을 의지하여 싸워야 한다.
결국 여리고의 싸움의 방식은 하늘을 의지한 싸움이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고, 아이의 실패는 땅을 접촉한 고로 실패하게 되었다. 기브온 거민들을 살려준 것도 땅을 접촉한 결과였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속이는 말을 듣고 너무 그럴듯하다 싶어 하늘의 왕자의 뜻을 묻지 않고 결정을 해버렸다. 그것은 결국 커다란 좌절을 가져온 사건이 되었다(수 6-9장).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결코 땅의 방식이나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방법이나 지혜를 의지하고 땅의 방법을 사용할 때 그 결과는 실패인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는가? 조직하고 선전하는 등 많은 일들이 땅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지 못한 결과다.
그분은 여호수아를 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다. 그분은 이 땅에서 사람이 하는 어떤 위대한 일에도 관심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뜻을 위해 싸우신다. 그분이 여호수아의 편이 아니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분의 역사는 오로지 하나님의 목적만을 위하신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말은 이러하다. “여호수아야, 나는 너를 위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목적에만 전념할 따름이다.”
5. 이 군대 장관은 결국 성령이요 여호와 자신이시다(6:2).
그분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투를 위해 보내심 받은 여호와의 사자이시다. 어디서든지 싸우는 사람들은 “적 편이냐 내 편이냐”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여호수아도 이 때 모르는 한 분이 나타나자 엉겁결에 물었다. “당신은 내 편이냐 대적 편이냐?” 이러한 영으로 싸우면 백전백패한다. 성령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는 네편도 적편도 아니고 하나님의 편에서 왔다”고 하신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로서 우리가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한 영적 전투를 싸우도록 우리를 위해 보내심 받은 하늘의 왕자요 군대장관이시다.
이때 여호수아에게는 싸움을 위한 장군이 필요하였는데 성령께서 바로 그런 분이 되어주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자가 되시고 우리에게 변호가 필요할 때는 변호자가 되어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시다(히 2:10).
6.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그곳에서 여호수아가 할 일은 신발을 벗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신을 신고 땅을 접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기브온을 살려준 것은 일종의 땅을 접한 것이며 결과는 타협이며 제한이다. 여호수아는 신을 벗은 상태를 유지하여 하늘의 원리를 따르며 성령이 전진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