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땅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평가

이지희 기자  jhlee@chtoday.co.kr   |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원 노윤식 원장

▲노윤식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노윤식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대학원장).

I. 서 론

최근 에즈 37 찬양인도자학교 대학생과 직장인 5명으로 구성된 ‘주님의 향기’조(6조) 5명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불교 조계종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땅밟기 기도’를 한 사건이 한국 사회에 종교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학생들의 실습 활동은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조별 발표에 끝나지 않, 인터넷으로 확산되어 불교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고,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조의 성명서를 도출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봉은사 대웅전과 사찰 내부에서 바닥이나 불교 상징물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으며 동영상 제작 시 “이 땅은 정말로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할 것이다”는 내용의 자막을 첨부하였다. 동영상 파문으로 봉은사 주지는 이 학생들의 행위를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일”로 평가했고, 이것은 곧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의 대국민 성명서로 이어지고 기독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높아졌고 한국교회언론회는 이번 땅밟기 기도에 대하여 ‘정통 기독교 실천 강령’이 아니라 ‘일부 소영웅주의적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평하며 사태가 전체 기독교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였다. 이후 인터콥 대표는 “절간 아니라 집까지 방문해서라도 기도해야”한다며 ‘땅 밟기 기도’를 강력하게 옹호하였고, 이에 대하여 기독교계는 타종교를 폄하하고 타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식의 호전적 선교 방식을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음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사건은 관련된 단체장과 관계자들이 지난 10월 27일 오전 봉은사를 방문하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사과함으로 일단락되었다.

이번 ‘봉은사 땅 밟기 기도’ 사건은 기독교와 선교 활동에 있어 다각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을 통하여 기독교는 배타적 종교라는 이미지가 부각되었고 기독교 선교는 종교 갈등을 초래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일반에게 확산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기독교 내부의 갈등으로 이어져 선교를 위한 연합보다는 타종교와의 화해와 연합이 우선순위로 대두되었다. 타종교를 비방하고 폄하하는 종교 간 갈등을 초래하는 선교 방식은 더 이상 한국 사회 뿐 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땅 밟기 기도’가 선교 현장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여론에 밀려 그만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선교학계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지난 10월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선교신학회에서 이 주제에 대하여 논자에게 발제를 의뢰하였고, 이에 대하여 함께 심사숙고 해보고자 한다. 우선 ‘땅 밟기 기도’에 대하여 성경적 근거를 찾고, 종교현상학적 분석을 한 후에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평가를 제언하고자 한다.

II.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이해

1. 땅 밟기 기도의 성경적 근거

땅 밟기 기도의 성경적 근거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된다. 여호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을 주시리라 약속하였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 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 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신 11:24-25).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약속을 여호수아 1장 3절에서 다시 확인한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다(수 4:18, 14:9).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땅은 가나안을 넘어 땅 끝까지 확장된다. 시편 2편 8절에 따르면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밟는 모든 땅을 주시겠다는 구약의 약속은 영적 전쟁으로 해석되어 어둠의 악한 영들의 영역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 밟기를 통하여 축소되고 하나님의 빛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가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두 사람 이상의 합심기도로 이루어지는데 그 근거는 마태복음 18장 18-19절에서 찾아진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 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러한 영적 전쟁으로서 땅 밟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는 시작된다. 땅 밟기 기도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고 땅을 밟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땅을 밟는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이것을 통하여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치게 된다. 시편 48편 10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시편 98편 3절에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이사야 49장 6절에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온 세상 선교와 구원의 의지는 이사야 52장 10절에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는 미래 구원의 소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 열방의 구원과 땅 끝 선교의 열망은 이사야 62장 11절에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는 말씀과 스가랴 9장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는 말씀으로 기록되며 여호와의 구원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을 확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땅 끝 선교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영적 전쟁 개념은 구약의 여호와의 전쟁 사상에서 비롯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주변 열강들을 물리쳐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대하 20장 1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곤궁에 처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직접 전쟁에서 싸워 이기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호와의 전쟁 사상은 신약에서 사람을 살상하는 물리적인 전쟁 개념에서 영적인 전쟁 개념으로 확장된다. 즉 여호와의 전쟁은 적군을 살상하는 전쟁이 아니라 어두움의 영 사탄의 세력과의 싸움인 영적 전쟁이다. 이러한 영적 전쟁 사상은 고린도후서 10장 4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과 에베소서 6장 12절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신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땅 끝 선교와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행전 13장 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과 로마서 10장 18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땅 끝 선교와 온 세상의 구원의 완성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땅 끝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완성에서 영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 그는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완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마귀의 멸함과 연결시켜 기록한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축귀 사역을 통한 영적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요한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성이 마귀를 멸하는 영적전쟁과 관계있음을 요한 사도는 증언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6장 10-11절에 성도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영적 전쟁을 위해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는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엡 6:13-17). 그리고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과 할 말을 담대히” 말해야만 한다(엡 6:18-20).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땅 밟기 기도는 영적 전쟁의 하나의 선교 전략으로서 악한 영의 세력, 즉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 땅에 이루려고 하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2.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분석

땅 밟기 기도는 폴 히버트의 ‘배제된 중간지대’(excluded middle)에 속하는 영역으로,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고등 종교에 의해 무시되었던 영역이다. 이 영역은 고등종교의 초월신이나 초자연적 무한성 보다는 민간 종교의 지역 영들과 조상 혼령, 악마와 악한 영혼, 그리고 점술과 주술 등과 관련된 영역으로 고등종교에서 다루는 초월적 진리나 교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과 연관 되어 있는 축귀, 질병의 치유, 화와 복 등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래서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 신학적 제언을 하기 전에 먼저 이것에 대한 종교 현상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종교 현상학은 가치와 판단을 유보하고 특정 종교 현상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술하는 종교 연구 방법론을 말한다. 이 방법론을 통해 특정 종교 현상의 구조는 파악되고 그 종교 현상의 형태가 결정된다.

종교현상학적으로 볼 때에 첫째, 땅 밟기 기도는 악한 영의 세력과 대적하는 영적 전쟁의 하나의 공격 전략(an attack strategy)이다.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 즉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영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을 변화시키는 종교 현상이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 하나의 공격 전략으로 사용된 땅 밟기 기도의 예는 다음과 같다.

2006년 9월 이후 한 부흥집회에서 윤락녀들을 빛으로 나오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모 집사를 중심으로 결성된 평택 온누리교회 땅 밟기 팀은 평택시 32번지 ‘삼리’ 집창촌을 찾아 찬양과 기도를 하며 윤락녀들에게 전도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재랭이 고개’로 유명한 점집 거리에서도 악한 영을 대적하는 기도를 통해 땅 밟기 기도를 하였다. 온누리교회 대전 공동체는 2010년 10월 브라질 아마존 현지에 가서 땅 밟기를 하며 “살인과 마약 음란으로 물들은 브라질 땅을 위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하였다.

둘째, 땅 밟기 기도는 영적 전쟁에서 질병의 치유와 연관된 하나의 종교 행위(a religious practice for healing)로 볼 수 있다. 질병의 치유는 육체적, 심리적인 면 뿐 아니라 영적인 전쟁에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power and authority)로서 귀신을 내쫓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땅 밟기 기도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치유와 연관과 하나의 종교 행위로 실행되고 있다. 케냐 몸바사의 남침례교 선교사인 랄프 베세아는 무슬림 전도를 위해 기도팀을 조직하고 하루 24시간 순번으로 돌아가며 기도한 후 거리 전도를 나가 땅밟기 기도를 하였고, 결국 무슬림 사원의 한 지도자로부터 사원에 초대받아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축복하도록 요청받았다. 이 요청은 설교나 교리 전파가 아닌 예수의 복을 받도록 예수 이름으로 기도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걷지 못하는 8살 아이를 위해 선교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그 소녀가 혼자 힘으로 일어나 걷게 되었고, 시아파 무슬림 사원에서 예수 이름이 찬양받게 되었다.

셋째, 땅 밟기 기도는 교회나 기독교 기관의 개척, 건축, 행사를 앞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안전을 구하는 종교 기원 행위(a religious petition for God's help and safety)로 볼 수 있다. 영적 전쟁에서 도우심과 안전을 위한 땅 밟기 기도는 행사나 건축에 있어서 미래의 알지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종교 기원 행위로 사용된다. 스티븐 호돈 은 1985년 중동에서 교회 개척을 위해 땅 밟기 기도를 시작했으며 모든 종족에 땅 밟기 기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2010 라이즈업 코리아 919 대회를 앞두고 라이즈업 무브먼트 스텝들은 한 달 전부터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919 대회를 통한 예배 회복을 위해 땅 밟기를 하기도 하였다. 온누리교회 용인 선교센터 완공을 앞두고 2000 선교본부 선교위원 12명은 선교센터 건축현장을 방문하여 땅 밟기 기도를 하였고, “선교센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센터가 완공되기까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함을” 당부하기도 했다.

넷째, 땅 밟기 기도는 사회 문제 극복과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한 종교적 활동(a religious action)이다. 영적 전쟁에서 땅 밟기 기도는 개인의 축귀, 치유, 안전 뿐 아니라 사회 변혁(transformation)과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사용된다. 장훈태 교수는 2006년 여름 방글라데시 다카와 인근 지역에서“카스트 제도, 빈부 격차, 교육 불평등 문제 극복을 위한 구제사역, 영유아 어린이 사역, 학원 선교 및 기숙사 사역” 등을 위한 땅 밟기 사역을 하였다. 기아대책 부산 지부는 약 200여명의 청년들을 동원하여 2007년 7월 ‘Again 1907 부흥의 시작’을 주제로 부산중심지인 서면에서 연산동까지 7km를 ‘희망의 부산, 그리스도로 부터’라는 프랜카드와 깃발을 높이 들고 부산 복음화를 위해 땅 밟기 기도 행사를 진행하였다. 땅 밟기 기도를 하는 기아대책 국토순례 찬양집회는 전국 18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땅 밟기 기도는 악한 영의 세력과 대적하는 영적 전쟁의 하나의 공격 전략이고, 질병의 치유와 연관된 하나의 종교 행위이며 교회나 기독교 기관의 개척, 건축, 행사를 앞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안전을 구하는 종교 기원 행위이고 사회 문제 극복과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한 종교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III.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제언

1. 영적 전쟁의 한 방법으로서 땅 밟기 기도의 진정한 실천(authentic practice)

땅 밟기 기도는 영적 전쟁의 하나의 전략으로서 80년대 이후 예수 전도단을 비롯한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후원하고 실행하여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보급된 중보기도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이것은 육체, 세상, 악에 대한 초자연적 전쟁인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의 개념을 선교 현장에서 실천하는 선교사를 비롯하여 일반적인 기독교 신앙인 역시 자신들의 신앙 실천 행위로도 사용되고 있다. 땅 밟기 기도는 도시와 지역 영(territorial spirits)에 대한 영적 대결(power encounter)을 전제로 하기에 이것을 평가하는데, 이성적이나 과학적인 관점보다는 영적 현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만일 이것을 영적 현상을 부정하는 과학과 이성주의 관점(a rational perspectives)에서 해석할 경우, 땅 밟기 기도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땅 밟기 기도는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인 행위 혹은 현 사회부적응 행위로 치부될 수 있다. 이것은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이 터진 후 언론에서 보여준 시사 고발적 양태를 살펴보면 곧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언론이나 반기독교 언론들은 기독교 청년들의 땅 밟기 기도를 비판하면서 기독청년들의 영적이고 신앙적인 진정성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일반 사회 여론의 상식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반사회적 종교 행위를 질책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땅 밟기 기도를 영적전쟁의 관점인 능력 대결(power encounter)로 평가하지 아니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는 자유주의 기독교적 관점과 타종교의 입장에서 평가할 경우, 그것은 타종교 폄하 혹은 비방행위로 똘레랑스의 포스트모던 문화 종교 상황에 매우 부적합한 선교 행태로 비판받을 수 있다. ‘봉은사 땅밟기’ 사건에 대하여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종교 간의 갈등이 사회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했고, 정진홍 교수는 “종교는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삶의 양태’일 뿐 인간의 삶에 과해진 초월적인 규범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감신대 이정배 교수는 원효의 화쟁 사상을 통해 종교 간 이해를 촉구하였다.

또한 기독교의 영적 영역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적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봉은사 땅 밟기 청년들을 ‘광신도’ 혹은 ‘독사의 새끼’로 매도하고, 땅 밟기 기도를 비롯하여 치유와 기적,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배격하고, 일상적 삶에서 예수의 청빈을 실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땅 밟기 기도에 대한 몰이해적이고 부정적인 비판은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의 반사회적 무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선교의 영적 전쟁의 한 방법으로서 땅 밟기 기도에 대한 폐기처분을 명하는 것은 기독교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도전이 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악한 영,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는 구원의 길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기독교는 영적 전쟁의 한 전략으로서 땅 밟기 기도에 대하여 포기하면 안 된다. 땅 밟기 기도는 영적 전쟁을 선교 현장에서 실천하는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 신앙인의 신앙 실천 행위임을 명심하고, 자기 과시적이나 타종교를 폄하하고 타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식의 시대착오적 과격한 행위를 버리고, 그 목적에 맞는 진정한 실천(authentic practice)을 함으로써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2.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선교전략으로서 ‘땅 밟기 기도’의 신중한 적용

21세기 세계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의 주역인 G20정상회의가 열릴 정도이다. 경제적 세계화는 국가 간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경제 공동체를 이루어 내었고 기존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경제적 이익 앞에 통합적 관계로 발전하였다. 유럽은 유럽연합 공동체를 형성 하였고 옛 로마 제국의 번영과 영화를 되찾기 위해 서구 유럽 기독교 국가의 대통합이 이루어졌다. 아시아는 중국을 중심으로 유교권의 중화사상(cinocentrism)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북아 패권질서가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기존 전통 종교인 유교와 불교의 세계화의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산동성의 공자 묘를 다시 꾸미고, 한국 불교계는 불교의 세계화를 기획하며 경제 논리와 종교 문화 다원주의 논리로 템플 스테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한국사회는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민족의 고대 전쟁 영웅인 치우천왕의 상징을 ‘붉은 악마’로 개명하여 한국의 스포츠 상징으로 만들었던 민간단체의 시도를 용인하였다. 이 시도는 민족종교 증산교의 교리와 실천에 관련이 있고, 이러한 민족 종교의 세계화 작업은 일반에게 더 이상 구태의연한 전통문화로 남는 것이 아니라 전통 문화와 종교의 세계화로 오히려 일반 대중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한국 고유의 전통 문화와 종교를 재활성화(revitalization)시키고 있다. 심지어 2010년 10월3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6번 애비뉴에서 열린 제38회 뉴욕 할로윈 축제에서 전 세계 수십만 인파가운데 한국 귀신 캐릭터 즉, 한국의 처녀 귀신을 비롯한 저승사자가 출현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불행과 저주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처녀귀신이 일반에게 아니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상징과 축제의 상징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문화의 정점을 찾아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키워드 한국문화」제6권에서도 처녀귀신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즉 처녀귀신은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의 절정체로서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현상은 한국사회가 기독교적 선악 이원론(dualism)의 가치질서보다는 동양 전통 종교의 선악 통합의 일원론(monism)적 가치 질서로 회귀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증이다. 한국 사회는 기존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악한 영향력을 민족의 수치로 숨기거나 은폐하려고 하는 것 보다 오히려 그것을 대중화시켜 선과 악, 옳음과 그름, 그리고 음과 양의 이원론적 구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해원상생의 구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 민족 종교나 전통 종교에 비해 우리 기독교 선교 입장이 현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매우 불리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 상황에서 금번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은 서구 문화와 종교로 일반에게 아직도 인식되고 있는 기독교 선교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주고 있다. 구한말 조선의 대내외적 정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일반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었던 기독교 선교 초기 상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 선교는 이제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 사회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영적 전쟁에 대한 선교전략을 보다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특히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인터넷 문화는 기존의 전통 종교의 가치를 옹호하고 기독교의 교리와 실천을 배척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반기독교 세력의 기독교 폄하는 그 도를 넘어서서 이제는 기독교 진리 자체인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 영적 전쟁의 대상은 불교 수도의 도량인 봉은사라기보다 이제 인터넷 가상공간이 되어야 한다.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살, 폭력, 음란, 거짓, 탐욕, 퇴폐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이 맞서 기독교 선교는 싸워야 할 것이다. 골로새서 3장 5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는 말씀대로 인간 탐심의 우상 숭배가 만연한 땅에 땅 밟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중에 임하게 해야 할 것이다.

곧 땅 밟기의 영역은 지리적인 영역을 넘어서 이제 인터넷 가상공간의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한국은 기존 서구화된 문명을 넘어서서 세계 디지털 혁명을 이루어내었고, 반도체 산업과 컴퓨터 게임 등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여 새로운 가상공간의 세계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가상공간의 인터넷 문화의 영향력은 정보와 뉴스의 실시간 소통을 통하여 일반 대중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의 전말도 인터넷을 통하여 일반에게 확산되었고, 결국 공중파를 통하여 시사 뉴스에서 전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보도되었다. 매스컴과 인터넷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의 일반적 여론은 봉은사 사건에 대하여 한국 기독교의 몰상식한 호전적 선교 방식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소외된 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구호 개발 환경 보전에 앞장서는 기독교 선교의 다양한 선교 전략과 방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에게 기독교 선교는 호전적이며 전투적이고 배타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말았다.

우리는 금번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의 뼈아픈 교훈을 통하여 영적 전쟁으로서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전략을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옳은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일이 일반 사회의 몰이해로 인하여 반사회적으로 비추어 진다면 그 선교 전략은 심도 있게 재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영적 전쟁은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땅 밟기가 아니라 종교 문화 사회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악한 영의 궤계,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의 우상숭배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는 진정한 땅 밟기 기도가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3. 땅 밟기 기도에 대한 부정적 함의의 제거…동행기도

땅 밟기라는 용어는 일반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말에 ‘밟는다’라는 어감은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억압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용어는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밟아 쓰러뜨리는 싸움이나 전쟁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즉 ‘밟는다’는 표현은 상대를 ‘밟아 억압한다’ 혹은 적군을 ‘밟아 쓰러뜨리고’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밟는 것에 대한 표현은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예레미야애가 3:34),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전도서 5:8),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사야 18:7),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이사야 63:2) 등이 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을 계기로 일반인들에게 땅 밟기는 종교간 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전투적인 어감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독교는 일반에게 타종교를 짓밟고 무너뜨리며 괴롭히는 제국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땅 밟기는 한국 전래 토속 민간 신앙인 지신밟기와 그 표면적 형식(form)과 맥을 같이하는데, 이것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그 종교적 주술적 의미(magical meaning)을 변혁(transformation)시키지 아니하면 샤머니즘적 주술 행위로 오인될 수 있다. 그러므로 땅 밟기를 할 때에는 지역 영에 의해 저주받은 땅을 밟는 물리적 접촉만으로 거룩하게 한다는 역현(katophany)의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보다는 기도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한다는 신현(theophany)의 성경적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아스돗의 독종 재앙이 그 지역이나 사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경함 때문이었고, 예수의 이름은 스게와의 아들들처럼 주술적인 주문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인격적인 신앙의 관계인 것이다(삼하 6:7, 19; 행 19:13-16).

본래 땅 밟기 기도는 영어식 표현인 ‘걷기 기도’(prayerwalking)를 번역한 것으로, 걸으면서 하는 기도를 말한다. 즉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면서 그 동네와 주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땅 밟기 기도를 주창한 스티브 호돈은 이것의 유익이 이웃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조용히 섬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골방에서 홀로 고독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산책하며 이웃 사람들과 인사하고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매우 친근한 선교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웃과의 행복한 삶에 도전을 하는 악한 영의 억누름에 대하여 영적 전쟁이 일어나지만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지 실제로 이웃과의 육체적인 싸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땅 밟기 기도로 번역되어 도전적이고 전투적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땅 밟기의 부정적인 함의를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용어로 바꾼다면 기독교 선교 전략상 일반인들이나 타종교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걸으면서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땅 밟기 기도에 대한 대체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땅 밟기 기도에 대하여 영어를 직역한 걸으면서 하는 기도나 걷기 기도 혹은 산책 기도 등은 걷는 것에 강조를 두지만 함께하는 기도라는 의미가 부족하다. 그래서 걷는 것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동행 기도’라는 용어를 땅 밟기 기도에 대한 대체 용어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땅 밟기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인 오해를 불식시키고 함께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III. 결론

기독교 선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 오해가 편만해진 이 시기에 기독교 선교는 ‘땅 밟기’기도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땅 밟기 기도는 성경적 근거와 그 목적이 분명함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그 기도는 어둠, 사망, 저주, 질병, 악한 세력에 대적하여 빛, 생명, 축복, 평강, 선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선교전략으로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 신중히 결정하여 야 할 것이다. 즉 일반에게 부정적 함의로 인식되었던 땅 밟기 기도를 일반에게 편안함과 함께함의 의미를 주는 동행 기도로 용어를 변경하면 기독교 선교의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면모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해석을 통하여 땅 밟기를 지리적 물리적 땅 밟기로 제한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문화와 종교 그리고 가상공간의 인터넷 문화의 영역에 까지 그 지평을 넓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의 우상 숭배”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을 완성하는 일에 기독교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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