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50인] 에덴교회 곽성덕 목사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서울 봉천동 에덴교회 담임 곽성덕 목사에겐 남다른 이력이 하나 있다. 지난 2006년 약 40년 역사의 에덴교회로 부임한 그는 그해 5월, 위임 한 달 만에 원로목사의 소천을 경험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뜻밖의 사고였다. 곽 목사에겐 교회를 둘러볼 시간도, 교인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원로목사로부터 목회에 대한 지혜를 들을 기회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교회는 어수선했다.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일종의 공황상태였다. 담임목사가 나서 상황을 수습해야 했지만 신임이었던 그로선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부푼 꿈을 안은 채 한국에 왔지만 역시 현실은 현실일 뿐, 꿈이 아니더군요.”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곽 목사에게도 결단이 필요했다. 그는 이 ‘위기’(危機)를, 그 뜻처럼 ‘위험한 기회’로 삼기로 했다.
“당시 교회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전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 소중한 것들이었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변화하는 시대에서 자칫 교회의 폐쇄성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전 신임 목사였고 게다가 교회는 역사가 깊었기에 변화를 시도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수선했던 교회 분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죠.”
이후 그는 예배부터 시작해 교회에서 행해지던 많은 것들을 바꿨다. 다행히도 교회는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 장로들을 비롯한 교인들도 신임 목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 순간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졌던 과정”이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부목사로 있을 때는 교회가 어떤 곳이라는 걸 정말 몰랐던 것 같아요. 막상 담임이 되고 나니까 아, 교회라는 게 또 목회라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조금 알겠더군요. 처음엔 부임만 하면 다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큰 교회 부교역자로 경험도 쌓았고 해외 유학도 했으니 주변에선 다들 저보고 담임목회도 잘할 거라 했죠. 저 또한 그렇게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힘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교회엔 건물과 시설보다 기독교 영성이 필요
부임 이후 5년. 곽 목사에겐 차세대 지도자를 양육하겠다는 비전이 생겼다. 차세대 지도자…, 신선하지도 특별하지 않은 이 말, 웬만한 교회라면 한 번쯤 사용하고 있는 평범한 이 말을 왜 그는 비전으로 삼은 것일까.
“대개 교회들은 차세대 지도자를 양육하겠다고 하면서 주일학교 아이들과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이들이 다음 세대 지도자가 되는 건 분명하니까. 그런데 전 조금 접근방식이 달라요.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말 이들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는 거죠. 이들의 부모 세대를 변화시키자는 겁니다. 아이들이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가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 부모라고 할 거에요. 부모의 신앙이 어떤가에 따라 그 자녀의 신앙이 결정되는 거죠. 교회에서 아무리 아이들을 변화시키려 애를 써도 그들이 집에 가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곽 목사는 교인들에게, 누굴 가르치라 또는 전도해서 훌륭한 지도자로 길러내라는 말보다 그들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으로 거듭날 것으로 강조한다. “먼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이 되면 그들이 자연스레 다음 세대를 차세대 지도자들로 양육할 것”이라는 게 곽 목사의 생각이다. 당연히 “아무리 주일학교에서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길러도 그들의 부모가 충성된 일꾼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에도 확고하다.
교인들을 충성된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 곽 목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영성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도 이 영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곽 목사의 지적이다.
“지금은 모든 게 다 풍성한 시대에요. 이렇게 좋은 세상, 마치 복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만큼 말이죠. 교회에도 말씀이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철저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요. 영적 빈곤이죠. 젊은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점을 많이 보러 다니는 등 샤머니즘적 요소에 기대고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발달하고 삶이 편해질수록 영적인 부분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어요. 성경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이럴 때 교회가 제시해야 할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영성이죠. 영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다른 그 무엇이 아닌, 교회의 영성, 성경의 영성, 기독교의 영성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게 짓고 시설을 편리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죠. 비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영성, 교회가 가진 진정한 영성입니다.”
곽 목사의 이러한 신념은 ‘복지관 목회’라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졌다. 차세대 지도자를 길러내려면 먼저 그들의 부모세대를 충성된 일꾼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교회들이 흔히 짓는 소위 ‘교육관’보다는 기성 세대들의 전인적 치유와 회복, 그리고 대사회적 섬김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관’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복지사역은, 내가 받은 사랑을 실천을 통해 사회에 보여주는 것으로,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담임목사로 교회에 부임한 후 지난 5년간, 곽 목사는 남들이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겪었다. 원로목사의 이른 소천으로 제대로 된 목회 전수도 받지 못했고, 지지자가 적은 상황에서 외로운 기도로 교회를 개혁해야만 했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엔 세련된 교회에서 점잖게 목회하는 목회자를 막연히 그렸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그의 목회관은 다듬어졌고, 이제야 곽 목사는 자신이 꿈꿨던 목회 비전을 그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있다.
“꿈이요?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 깨달아 주님만 의지했던 처음처럼 앞으로도 묵묵히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며 가고 싶어요.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