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여호수아 32] 한 사람의 죄는 전체 민족의 죄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19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1.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인 사람들이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습관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분부하심을 수행하기 위해 늘 일찍 일어나곤 했다(3:1, 6:12, 7:16). 이는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데 단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수아는 이 일에 좋은 본이 되었다(엡 6:6-7).
2. 자수하지 않는 아간의 완악함
아간은 지파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가문과 가족까지 추적해 오는 동안 얼른 나가서 자수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양심은 무디어 있었고 그의 마음은 강퍅한 상태에 있었다. 사람이 한 번 타락하여 양심이 무디어지면 그 상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다. 그는 속임수에 빠져 완악해져 있었다(매튜 헨리). 속임수에 빠진 양심은 마비되어 합당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심각한 죄를 짓고도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3. 우리 안의 아간을 찾자
우리는 자신이 아간처럼 우리 진영을 괴롭히는 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찾아내기 위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피고 주의 깊게 양심의 기록을 살펴서 여호와께서 혹 우리와 다투시는 점이 있지는 않은지 매우 두려워해야 하며 혹 그러한 저주받은 것들이 있다면 처리해야 한다.
4.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간
마침내 범죄자가 확정되었다(18). 죄의 속임수에 빠진 사람의 양심은 감각이 없다. 이는 그가 이미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양심을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직접 하나님 앞에 자신의 행위를 책임 지지 않고 그저 단체나 사람을 따르다 보면 그의 의(義)의 표준이 양심이나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단체의 노선이나 사람들의 말에 있게 된다. 그래서 악한 일도 거침없이 행하는 것이다. 실상 아간이 그러한 죄를 지은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생활이 그를 그렇게 대담하고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5. 아간을 ‘내 아들’이라 부른 여호수아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그를 ‘오 이스라엘의 대적자여!’라든가 ‘오 문제아여!’라고 부르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그를 ‘내 아들아’하고 불렀다. 그는 범죄하여 이스라엘에게 커다란 실패를 안겨준 죄인을 참으로 긍휼이 가득한 호칭으로 부른 것이다. 이는 참으로 생명 안에 있는 사람의 처사이다. 여호수아는 이 심각한 순간에 죄인에게 고백할 것을 권했다.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19).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인도자의 겸손과 온유는 매우 중요한 미덕이다.
6. 스스로 회개해야 하는데…
그는 죄악을 자백하였지만 스스로 회개한 것이라기보다는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품목들을 일일이 고백하였다. 회개하는 사람은 대충 회개할 것이 아니라 여차 여차 행하였다고 낱낱이 고해야 한다(20).
7. 아간이 도적질한 물건들 목록
그가 도적질한 물건은 먼저 바벨론(시날) 산 외투 한 벌이었다. 이는 영적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이다. 바벨론이란 그 자체가 혼돈이고 섞인 것이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람에게 속한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중 아간에게 있는 이런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이런 죄는 사람의 육체에 걸맞은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다 태워버리라고 명하셨지만(6:18, 24) 아간은 외투 한 벌만큼은 자신을 위하여 남겨두었다.
외식은 말하자면 편한 길이다. 실제가 없어도 외적으로만 그럴듯하게 보이면 되기 때문이다. 헌신과 충성이 없는데도 남들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외식이다. 시날 산(産) 외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속에는 별 것 입지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아주 잘 입은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아간은 외투만이 아니라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을 장막에 감추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면 여호와의 곳간에 갖다 놓아야 할 것들이다(6:19). 금과 은은 장래적인 것이다. 즉 자신의 장래의 삶을 편안하게 보장해주는 것이다. 아간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사람이었다.
8. 보암직도 하고…
그 모든 죄악의 근원은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있었던 일과 같다. 사람이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보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아간은 먼저 보았고 그 다음 탐심을 갖게 되었다.
9. 돌에 맞아 죽은 아간
결국 아간은 그가 탈취한 모든 소유와 자녀들과 함께 멸망을 당했다. 백성들이 돌로 치고 불살랐다. 하나님의 명을 떠나 자신의 마음대로 산 사람들은 결국 그 얻은 것과 더불어 멸망을 당한다. 어떤 죄악은 그 죄의 분량이 커서 심판도 크다. 아간은 결국 돌에 맞아 죽었다. 여호수아는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했다.
10. 우리가 받은 용서는…
여호와께서는 극렬한 진노를 그치셨다. 하나님은 범죄를 심판하지 않으신 채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사람의 죄악도 그 아들 안에서 심판하심으로 용서하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용서는 심판을 거친 것임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11. 아골 골짜기와 골고다
그 돌무더기가 있는 곳이 아골 골짜기 곧 괴롭힘(troubling)의 골짜기가 되었다. 이는 아간에 대한 영원한 수치의 표시였다. 예언자들은 아골 골짜기를 회복기에 회복하는 소망의 곳으로 예언하였다(사 65:10, 호 2:15). 어떤 사람은 아골이 골고다의 그림자라고 말한다(Ridderbos).
12. 구약과 신약에서의 두 교훈
우리는 6장에서 대적의 모든 세력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7장에서 그 동일한 능력으로 회중 가운데 있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서 이 두 가지의 교훈을 생생하게 본다.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은 또 거룩을 요구하신다. 이러한 교훈은 회중에게나 우리 개인에게나 다 해당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하려면 거룩함에 모순되는 것들을 던져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나는 것들을 철저히 심판해야 한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치유하시지만 또한 악을 용납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시다(히 12:29).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되었나니”(벧전 4:17). 하나님은 그분을 닮은 백성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야 하며, 그분의 이름에 불명예를 돌려드리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습관과 모습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러면 방금 전 6장에서 여리고에서 대승한 군대가 아이성에서 왜 굴욕적인 패배를 하였는가? 이는 물론 아간이 저주받은 물건을 취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다른 차원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의 죄를 전체 회중의 죄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0-12).
이는 매우 엄중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간음한 형제에 대하여 쫓아내야 한다고 하면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간 한 사람이 범죄한 것을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범죄를 모든 사람의 죄로 여기신다. 당시 회중 가운데 임하신 여호와의 임재가 모두를 하나로 묶으셨다. 동일하게 지금도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으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지체에게 미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몸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독립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의 역사로 연합된 한 몸의 지체들인 것이다. 우리가 만일 스스로를 자기 방관적으로 함부로 행한다면 성령을 슬프게 할 뿐 아니라 모든 몸의 지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한다. 우리 한 개인의 상태가 모든 다른 지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느끼게 한다. 한 지체가 고통을 느끼면 다른 지체도 자동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며 악을 용납할 수 없으시다.
우리는 7장에서 회중 가운데 있는 악을 보며, 이런 작은 한 명의 악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 회중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아골 골짜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 개인이나 단체 속에 작은 악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그 누룩을 철저히 심판하신다는 공과를 배운다. 여호수아는 회중을 다 소집해야 했고 악의 근원을 찾아 모든 피조물 앞에서 바벨론(시날산 외투는 바벨론의 요소를 대표함)을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악을 찾아내시어 돌로 치고 불사르고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다.
오늘날 우리는 큰 일을 하려는 미혹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 한 사람의 작은 것이라도 범죄한 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현재 사도행전 2장이 아니라 디모데후서 2장에 와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큰 집의 불결한 그릇에서 벗어나 분별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경건의 모양은 갖고 있으며,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맥킨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