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여호수아 38]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날
10: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 여호수아에게 주신 확실한 승리의 약속
이 큰 전투에서 첫째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확실한 승리의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사단이 아무리 많은 대군을 이끌어 우리에게 대든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있다면 우리는 결국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문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이다. 대적이 아무리 강하다 하나 주님은 더욱 강하시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라! 곧 승리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고후 2:14),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등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승리의 말씀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조건이 충족될 때만이 보장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다윗의 그러한 체험은 그가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역대하 16장 9절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한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 비결은 역대하 16장 9절에 있다. 즉 바울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였기에 그러한 능력을 힘입어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사람이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사도의 궁핍함을 채우는 향기로운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그러한 축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10-18절).
이 구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며, 정상적으로 드리며 헌신한 믿는 이라면 다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이다. 이는 비단 물질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영적인 면에도 적용된다.
2. 늘 사람의 역사보다 크신 하나님
이스라엘이 즉시 그들 다섯 왕을 치러 나선 것은 겉으로 보기에 기브온의 구조 요청에 의한 것이지만, 사실은 어차피 싸워 차지해야 할 영역의 사람들이었다. 아모리 다섯 왕은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했다. 기브온은 이스라엘에게 구조 요청을 했고 이스라엘은 즉시 출동했다. 이스라엘은 길갈로부터 밤새 달려와 기브온 외곽에서 아모리 연합군을 기습했다. 이스라엘의 기습 작전은 성공했고 기브온에서 적군을 대파했다. 이스라엘은 도망치는 아모리 연합군을 아얄론 골짜기로부터 막게다와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추격해 완전히 격파했다.
벧호론 골짜기부터, 즉 아모리 연합군이 도망하는 시점부터 큰 덩이 우박이 내렸는데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그러했다. 그때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즉 사람이 한 일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더 많다는 말이다.
언제나 기독교의 큰 부흥 역사가 있는 곳에는 사람의 역사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더 많았던 것을 본다. 역대에 가장 놀라운 전쟁은 바로 여호수아 10장에 기록된 전쟁이며, 이 전쟁은 하나님이 사람의 일을 기뻐하실 때 과연 얼마만큼 역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바가 된다.
3. 해가 지지 않은 그날
여호수아는 이 전투에서 그날 하루의 낮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회에 섬멸하지 않으면 밤이 오고 그러면 그들에게 반격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봤다.
이것은 우리가 몽골을 복음화할 때 취했던 전략과 비슷하다. 우리는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1990년부터 사역을 시작했으나 1995년도가 되었을 때 몽골이 점점 물질문명으로 점유되고 있음을 봤고 그 이후에는 복음 전하기가 그 시점보다 몇 배 더 어려워질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에게 1년 동안 온 몽골 땅을 복음화하기 위해 나서자고 외쳤다. 그때 학생들은 휴학하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직업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온 몽골 각 지방으로 나갔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열매들을 주셨다.
당시 여호수아는 그날 하루의 전투가 너무 중요하고 그 낮을 길게 해서라도 대적을 완전 섬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으며 그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기도를 드렸다. 그는 먼저 여호와께 기도하고 다음에 이스라엘 목전에서 태양과 달에게 명령했다. 먼저 여호와께 구함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그러한 담대함으로 태양과 달에게 명령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고 믿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다(막 11:23).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명령하는 기도다(‘던지우라!’). 믿는 이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동역 안에 하나돼 있을 때 하나님과 하나로 어떤 사물에게 명령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명령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할 수 있지만 동시에 명령할 수도 있다.
4. 해와 달이 움직임을 멈추다
여호수아가 기도하고 외친 대로 태양은 머물고 달도 멈춰 있었는데,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그리했다.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태양을 머물게 하신 것에 대해 그것이 자연법칙을 초월한 이적의 역사인 만큼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을 뿐이다. 이는 여호수아가 한 일이 아니고 해와 달을 지으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므로 믿을 수 있다.
하박국 3장 11절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영광의 광채)으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추었다고 말한다. 해리 림머(Harry Rimmer) 박사는 유대인의 달력으로 4월 11일(양력 7월 22일)은 만일 해가 사람의 육안으로 보기에 기브온(북위 31도 51분)에서 멈춘 것이라면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있는 것이 매우 정확하다고 말했다.
또 트로터(C. A. Trotter) 교수는 1890년 한 권의 전문서적을 저술했는데, 정밀한 천문 계산으로 지구의 규칙적인 운동에 비춰볼 때 24시간의 차이가 난다고 증명했다. 즉 24시간이 뒤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거의 종일토록…”이라는 기록과 부합하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는 이 일을 연구한 결과 낮의 길이가 23시간 20분 더 길어졌다고 말한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낮의 길이를 늘이기도 하시고 우박을 쏟기도 하셨다.
5. 지도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되 특히 지도자들의 기도를 잘 들으신다. 이는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 읽을 수 있다.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구하는 위치에 서 있고, 많은 사람을 위해 수고하며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기도하다가 ‘이겼다, 이겼다’ 하고 소리쳤다. 이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고 종교개혁의 큰 역사가 성공할 것이며 따라서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받으리라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기도를 더욱 존중하여 들으신다는 것뿐이다.
6. 전무후무한 그때 그 사건
‘야살의 책(세펠 하야솰)’이란 의로운 자의 책이라는 뜻이며, 이곳과 사무엘 하 1장 18절에 언급돼 있다. 민수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전쟁기(21:14)’와 맥락을 같이 하는 책이다. 이 책의 기원은 알 수 없고(‘여호와의 전쟁기’를 야살이 보완하고 완성한 것일 수도 있다―매튜 헨리)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정경 외에 이스라엘 역사와 민족적 자료들을 연대기를 따라 수록한 고대 역사 수집 문서라고 할 수 있다(Keil).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것이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다고 하신 것은 유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히스기야 시대에 다시금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왕하 20:9-11). 하나님은 지금도 전무후무한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그러한 일이 있기를 소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