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연합신학교 학장 클라이브 피어슨
새로운 땅에서 새로이 목회를 하고 신학을 하는 일은 항상 복잡다단한 문제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사항들이 매우 많지만, 그 중 가장 명백한 것은 정착에 관한 것이다. 넘어야 하고 피할 수 없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줄을 잇는다. 제일 처음 다가오는 일들은 성도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예배드릴 장소를 찾고, 리더십의 유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고, 또한 재정 및 유지 능력을 확실하게 갖추는 일 등을 포함한다. 심각한 내부 이견 및 서로 어긋나거나 분열될 가능성을 다뤄야 할 필요도 생길 수도 있다. 화해, 그리고 갈등과 분열의 상처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신앙을 가진 이민 공동체가 예배를 드리고 제자를 훈련시키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기수 목사는 ‘한인 목회 30년사’에서 디아스포라 사역이란, 이민자들이 이국 땅에서 새로이 정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 다양한 정부 및 사회복지 단체를 상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민교회는 하나의 문화가 그 권위, 문화적 관습 및 모국어의 사용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 및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사실상 이민교회는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문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 행정조직 및 목회에 관한 다양한 관심사가 생겨나게 된다. 예컨대, 새롭게 세워진 교회가 현재 속한 국가의 교단 뿐만 아니라 ‘모국’의 교회와 어떻게 연계해 나갈지, 범교단적 협력 관계(ecumenical agreements)를 따를지 아니면 선교사의 노력으로 세워진 그 정신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새롭게 세워진 디아스포라 교회의 모습으로 갈 것인지, 어떻게 교회가 인가를 받고 어떻게 안수를 주어야 하는지 등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세대간 및 성별의 차로 인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목회에 관하여는, 한국에서부터 신앙을 해 온 사람들과 호주에서 신앙을 해 온 사람들에 대한 각기 다른 가정 및 기대에 대한 부분이 정리가 되어야 한다.
‘교차 문화(Cross-Culture)’라는 학술지 첫 회에 기고한 글에서 필자는 신학적 과업이 특정한 방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에서 얻은 경험에 근거한 실행의 첫 걸음은 ‘자서전적 형태(autobiographical form)’를 취한다. 이는 이주와 정착의 경험을 회상시킨다. 그 다음으로 분별되는 단계는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공부는 궁극적으로 체계적인 의제에 근거한 신념은 변두리자와 디아스포라의 통찰력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읽혀진다는 혁신적인 신학적 질문으로 보완된다. 지난 십 년간 훌륭한 그리스도론에 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교회학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분량만이 이루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둔 탐구는 크리스천 및 문화적 정체성과 연관된 문제에 관한 신학적 반영을 장려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한국인이라는 점과 크리스천이라는 점이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무엇이 우선인가? 어떤 점에서 그리고 왜 그런가? 등등.
기고문의 마지막 즈음에 다음 신학적 과업이 무엇이 될지에 관하여 예견하고자 했다. 특히 격리된 세 가지의 영역이 있는데, 이 세 가지 영역은 도덕 윤리영역, 호주 원주민과 관련된 영역,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관한 관심 및 염려를 보여주는 영역이다.
여기에 깔려있는 한 가지 가정이 있다. 이전에는 한국과 호주 내 그리고 한국과 호주 간의 역공간(liminal spaces)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이민 및 정착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과 관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거쳐야 할 필요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교차 문화(Cross-Culture)에 기고한 글의 결론에서는 이와는 다른 어떠한 일을 하고자 했다. 이는 그 초점과 주제가 호주에 더욱 맞춰진 몇몇 특정 신학적 문제에 디아스포라 이민 사회가 참여하도록 정중히 요청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원하는 바는 이민 한인신학이 이 나라 토양에 더욱 확고히 연결되는 것이다.
새로운 신학적 지리 안에서 ‘지구환경 신앙(earthing faith)’이라는 비유는 환경신학과 관련된 소명보다 더 확실하게 연관되는 곳이 없다. 호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디아스포라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아주 소수의 한국인들만이 이 영역에 착수했을 뿐이다. 이에 대한 필요성은 기후 변화 및 지구 온난화에 관한 논의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그 성패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