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자손 히스기야(B.C. 715-687)는 주전 930년경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눠진 이래 남유다 왕국을 344년 동안 다스린 20명의 왕들 중 제13대 왕으로 부임했다. 히스기야는 역대 왕 중에서 매우 탁월한 통치 능력을 발휘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중적인 인기와 명성은 종교적, 정치적 및 군사적 등 모든 측면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므로 얻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약성경 중 세 권의 책이 그의 역동적인 활동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중요시하고, 그의 사역을 다른 왕들에 비해 꽤 자상하게 기록하고 있다(왕하 18-20장, 사 36-39장, 대하29-32장).
주전 715년경 부친 아하스가 죽은 이후, 히스기야는 왕이 돼 어려웠던 남유다를 29년간 신실하게 다스렸다(대하 18:2). 재위 제14년에 앗수르 사람들의 침략이 있었고, 히스기야가 큰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놓였다(왕하 20:1, 사 38:1).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금식하며 기도하므로 15년 동안이나 생명이 연장됐다.
아하스가 수리아와 에브라임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의 원조를 구하면서 남왕조에는 이방에서 건너온 이교적 문화의 색채가 짙어 있었다(왕하 16:7-18, 대하 28:16-26). 선지자 이사야는 그 시대의 이교적 풍습을 신랄하게 공격했다(사 2:6, 8:16). 히스기야는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에 착수했다(대하 26:2).
아하스 왕에 의해 굳게 닫혀있던 여호와의 성전 문을 먼저 활짝 열었고 깨끗하게 수리했다. 성전을 정결하게 재건 하도록 레위인에게 강력하게 지시하여 성전예배를 바르게 드렸다. 히스기야는 폐지됐던 유월절 예배를 부활시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래 최대, 최고의 제사를 드렸다(대하 30:26). 유월절 제사에는 정통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들도 초청됐다(대하 30:10,11, 왕하 17:25-28).
유월절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유다 지역 성읍에 있는 이방종교의 주상(柱像)이나 목상을 모두 부쉈고,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및 므낫세 지파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 세워진 산당과 제단을 없앴다(대하 31:1, 왕하 18:4). 히스기야는 주전 15세기 모세 시대에 만들어져 보존하고 있던 놋뱀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배 대상이 되자 과감하게 제거하면서 힘있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부왕 아하스는 살아 생전 남 유다를 앗수르에 정치·경제적으로 예속시켜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팔레스틴의 다른 작은 나라들도 앗수르의 멍에를 동시에 메게 됐다. 그때 예루살렘 궁전에는 이방 괴수 친 애굽파가 함께 살게 됐다. 앗수르 동쪽에서는 므로닥발라단 왕이 거느리는 바벨론 제국이 발흥하고 있었다. 바벨론은 앗수르와의 식민통치 확대를 위해 항쟁을 벌였고, 인근에서 동맹국을 구했다. 바벨론 왕 산헤립이 보낸 사절을 대접하면서 반(反)앗수르 및 친 바벨론 정책을 취했다(왕하 18:7).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항복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아 굴복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위기가 점점 더해갔을 때, 히스기야가 드린 기도(왕하 19:15, 19)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에 대비해 예루살렘 성의 수비를 공고히 했다. 백성들이 마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성내의 실로암에 저수지를 만들고, 기혼에서 거기까지 터널을 건설해 물을 끌어왔다(대하 32:1-8, 30, 왕하 20:20, 사 22:9).
히스기야 왕이 남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 뛰어난 여호와 종교 문학 작품이 많이 생산됐다(대하 29:27-30). 필사(筆寫)나 편집 및 창작 작품 사역도 범국가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다. 잘못된 인습과 사회를 바르게 개혁하면서도 연약한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히스기야 왕은 종교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연약한 백성들의 기초 생활을 담보잡지 않고, 최대한 존중했다.
지금은 사회 속의 잘못된 인습을 잘라내는 과감한 개혁과 더불어 연약한 백성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안고 뜨겁게 사랑하는 히스기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냉철한 머리로 미래를 향해 개혁의 칼을 정직하게 댈 뿐만 아니라, 따스한 온기를 가지고 이웃을 살필 줄 아는 지도자를 현대 사회와 교회는 간절히 찾고 있다. 강원도 지사 등을 다시 뽑는 4·27 보궐선거에서 히스기야 같은 성숙한 인품을 가진 지도자를 국민들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