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여호수아 43] 오래 가지 않는 성공
수 12: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1. 역사를 기억하다
1-6절은 모세의 지휘 아래 요단 동편 두 왕인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 및 그들의 영토를 정복한 것을 말하며, 이 땅은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줬다. 이 내용은 민수기 21장 24절 이하에 있는 모세의 증언과 일치한다. 민수기 21장에서도 모세가 아르논부터 얍복까지 점령한 것을 서술하고 있고, 여호수아도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자기 시대에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그것을 기록하기 전, 먼저 전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시어 역사하신 종의 업적을 기록한다. 이는 이전 모세 시대의 정복사이며 바산 왕 옥과 헤스본 왕 시혼에 관계된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시대 놀라운 축복과 승리의 영광에 도취해 이전 시대의 축복을 잊지 않았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조금도 축소하거나 멸시하지 않았다. 새로운 축복 아래 있는 주의 종들은 지난날 위대한 종들의 역사와 성공을 말살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2. 땅에 대한 설명
점령한 지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남으로는 아르논 강으로부터 북으로는 헤르몬 산까지다. 바산 왕 옥은 에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했다. 아마도 그곳에 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옥은 이 두 곳에 궁전을 짓고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지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모두 옥으로부터 빼앗았다.
시혼은 원래 모압의 성읍이었으나 시혼이 이를 탈취해 그의 왕도로 삼았는데, 르우벤의 기업이 되었고 후에 갓이 재건하기도 했다(민 32:37). 시혼의 영토는 남으로는 아로엘이고 북으로는 얍복 강이었다(민 21:24). ‘아로엘’이란 ‘벌거벗었다’는 뜻이고 아르논 강 북편 언덕에 위치해 있다. 시혼 왕 옥의 영토에 있는 긴네롯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별칭이다. 긴네렛 바다(신 3:17)로도 불리운다. 벧여시못이란 모압 평지에 있는 헤스본 성읍 중 하나이며 나중에 르우벤의 성읍으로 할당됐다. 비스가 산록은 모압 평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며 서쪽으로는 사해가 내려다보인다.
후에 비스가 영토는 르우벤의 것이 되었으며 모세는 말년에 이 비스가 산에서 멀리 언약의 땅을 바라보라고 명령받았다. 모세는 그곳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그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하셔서 다만 바라볼 뿐이었는데, 그에 비해 르우벤 지파 등은 들어갈 수 있는데도 굳이 그곳에 머물겠다고 간청하여 요단 동편 비스가 산록을 택한 것을 보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산지이다. 넓게는 요단 동편 전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스다롯은 바산 왕 옥의 고향이다(신 1:4, 3:10).
3. 원주민들에게 흡수되고 만 세 지파
세 지파가 얻은 요단 동편 지역은 나중에 결국 빼앗겼다. 자기들이 정복했다고 여겼던 원주민들에게 흡수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교훈 한 가지를 배워보자.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이다. 만일 당신이 율법의 분위기 아래 유업을 얻고자 투쟁한다면 얻기는 얻겠지만 그것은 언젠가 안타깝게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즉 헛수고가 되며 인생을 낭비할 것이다. 이 땅에서 바람에 날아가든 그날 주님 앞에서 불에 태워질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과 결심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든 마침내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모든 영적인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교제 속에서만 참되게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수고한 것만이 헛된 수고가 되지 않는다. 참 여호수아이신 주님과 믿음의 교제 안에서 얻은 공적만이 그분의 것이므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예레미야 17장 11절은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한다. 불의로 치부한다는 것은 부정직한 방식으로 돈을 벌거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자고새가 자신이 낳지 않은 엉뚱한 새의 알을 품어서 새끼를 부화시켜서 잘 키워 놓으면 중년 쯤 되어 도망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리석은 사람이 한 일의 결과를 말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혈기의 노력으로 많은 성공적인 일을 벌려 놓는다. 그리고 힘을 다해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다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합당한 기초 위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 위에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세 지파는 당시 다른 지파보다 약삭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머리 좋게 움직였다. 자신들의 상황을 볼 때 그 요단 동편 땅이 매우 적절하고 안성맞춤의 땅이었다. 그들은 다른 지파가 욕심낼까봐 선수를 쳐서 그 땅을 청원했고 모세는 그것을 들어줬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나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보이는 것을 기초로 움직였다.
그들은 어느 정도 순종했지만, 거기에 약간의 행위를 가미했다. 때로는 약간의 행위를 가미하는 것이 온전히 믿음만으로 하는 것보다 결과를 빨리 발생시킨다. 그러나 아쉽도다! 이러한 일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자고새는 실컷 수고해 새끼를 부화하고 키웠건만 다 키워놓으니 날아 가버리고 말았다.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
1. 받은 복을 세어보다
7-24절까지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정복한 땅들이 나온다. 모세가 정복한 땅은 요단 동편의 땅이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자체를 정복한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지난 날 은혜로 정복한 것들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만하고 자족하거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고 승리를 가져다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리며 감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싸워 빼앗을 땅이 남아있음을 시인해야 하며, 이미 얻은 땅이 너무 적은 것을 인해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싸움을 다 싸우고 우리가 얻도록 돼 있는 영토를 다 탈취해 그리스도께 드려야 한다. 우리의 심령 모든 부분이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땅이 돼야 한다. 교회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 돼야 한다. 모든 부분이 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남아있는 싸움이다. 싸워 얻은 부분이 그리스도께 되돌려진 부분이요 그리스도의 통치의 영역이요 안식의 영역이다. 우리도 인생의 끝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란다.
2. 기쁨과 풍요의 땅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다
이 부분에는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정복한 31명의 왕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이들은 요단 서편 사람들로서 서편의 남부 16 왕과(7-16절) 북부의 15 왕(17-24절)으로 도합 31 왕이다. 서편 땅은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할당됐다. 이 나라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류의 땅은 기쁨과 풍요의 땅이다. 우리가 이 땅이 기쁨과 풍요의 땅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여기 12장 8절과 신명기 8장 7-10절을 비교하면서다.
본문 8절은 산지와 골짜기와 광야와 샘과 광야 등을 기록했다(흠정역 참조). 신명기 8장은 그 아름다운 땅에 대해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고 한다. 이로 보건대 여호수아가 얻은 요단 서편의 땅은 산물이 풍성한 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눈에는 그 땅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왜 세상의 모든 보화가 작게 보이는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지만 믿음으로 그 부요한 소망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아무리 큰 보화도 작은 한 부분의 주님의 말씀과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신약에서 말하는 만유의 충만이신 그리스도(엡 1:23 참조)를 예표한다. 우리가 얻은 그리스도는 무한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가지신 분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 안에 감취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역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전쟁은 필수다.
우리가 어린 신자였을 때에는 사탄의 대적이 많지 않다. 그러나 점점 진보해 그리스도를 더 얻고자 힘쓸 때 대적의 공격이 더 강해지고 심해진다. 이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가장 격렬한 대적의 공격을 받았음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이길 때 그리스도를 영원한 안식과 기업으로 얻게 된다.
3.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요지를 얻다
이 단계에서의 승리가 결국 예루살렘과 헤브론과 디르사 등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요지들을 얻게 한다. 즉 가나안의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왕국과 처소를 세울 수 있는 입지를 얻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교두보가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는 오늘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참 여호수아이신 주님과 더욱 충성되게 동역하여 대적과 싸움으로써 우리를 통해 얻어지는 성읍들이 주님의 교회와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입지를 얻는 일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