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칼럼] 중생과 성령세례는 다른 것인가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Q & A (13-1)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무어라 확실하게 답변을 못하곤 합니다. 무슨 굉장한 은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무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성령세례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주제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논쟁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제가 좀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알려주십시오.

A)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동안 한국 신학계에서는 각 교단과 교리 노선에 입각한 ‘성령세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많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매우 난해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특히 개혁주의 계통에서는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성에 관한 이견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웨슬리안(Wesleyan) 계통이나 오순절 계통에 비해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성령세례의 시기’에 관한 논제는 한동안 한국교회 내에 뜨거운 신학 논쟁을 일으켜 왔던 주제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교회를 이끌고 갈 복음적 성령운동의 힘찬 전개를 위해서는 이러한 신학적 갈등의 조정 작업은 필수적인 과제라고 봅니다. 그동안 개혁파 교회와 신학교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 노선을 보여 온 성령론 논제의 노선에는 한 편에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시적으로 보는 전통이 있고, 또 한 편에는 중생과는 별도의 경험으로 보는 전통이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저는 세 차례에 걸쳐서 이 주제에 대해 관계된 학자들의 저술을 중심으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서로 간에 혼선이 있는 부분을 어떻게 복음적인 관점에서 조정할 수 있는지를 또한 다루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전통

봉사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핵심을 둔 성령세례론은 주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한 특색으로서, 한국교회에 파송되었던 장로교 선교사들 가운데는 이러한 성령론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이 상당 부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에 반영되었다는 자료를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성령론 교재로 사용되던 「성령론」(聖靈論)의 저자 중국인 가옥명(賈玉銘)은 성령세례 받은 증거가 영덕(靈德), 영능(靈能), 영력(靈力), 영과(靈果)에 있다고 봄으로서, 그 핵심은 성령의 열매와 함께 ‘봉사의 능력’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세례가 중생 이후에 성령에 몰입되고 잠기는, 성령에 충만케 되는, 성령의 권능을 받는 체험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중생은 얻었을지라도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면 연약하고 무력한 삶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는 강조한 것입니다(가옥명, 「성령론」, 98-104).

1960년대 이전 뿐 아니라 이후에도 한국 개혁주의 신학계에서는 성령론에 있어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하나의 큰 전통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강조하여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설교가로는 로이드존스(D. M. Lloyd-Jones)를 또한 간과할 수 없겠죠. 그는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이 신자들로 하여금 권능과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 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존스는 누구든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데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의 체험은 오순절 날 그러했듯이 여러 은사들을 동반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있으며 매번 정확히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 동반하는 은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요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의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진수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 대한 어떤 특별한 확신 형태를 가지는 것으로서, 이것은 성령의 인침(sealing)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D. M. Lloyd-Jones, 「성령론」, 121-2).

이인한은 해방 이후 개혁주의 계통에서 최초로 성령세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펼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인한은 중생의 경험과 성령의 세례 받는 경험을 명확히 구분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거듭난 후에 알고 범한 죄를 청산해야 한다고 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전 존재를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이인한, 「성령의 불세례」, 60).

1981년에 차영배는 말하기를, “성령의 세례란 성령 속에 잠기며 성령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름 붓듯, 혹은 물 붓듯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차영배, “요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고 하면서, 성령의 세례는 오직 예수께서만이 주신다고 하는 점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교회의 물세례와는 구별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8장에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마라아 교인들도 나중에 다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행 8:16)고 강조하면서, 여기서 ‘성령이 내리신다’고 함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가리키며 오순절과 같은 역사임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과 성령세례는 본질상 같은 사역에 속하나,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성령세례는 일회적이요 성령 충만은 연속적이라는 것이겠죠. 그는 1983년 자신의 성령세례론의 합당성을 다음과 같이 교회사적으로 변론하였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성령의 세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성령의 세례를 물세례와 동시에 받느냐라는 것이다.……이것을 바로 한국의 장로교회사가 역사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큰 부흥을 가리켜 ‘한국의 오순절’(The Korean Pentecost)이라고 명명한 책(한부선 선교사)은 물론, H. G. Underwood 초대 선교사도 “한국교회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Korea received her baptism of the Holy Spirit)고 했다(The Call of Korea, 1908, 6). 장로회 총회 발행으로 나온 장로회 史記에 보면, 1907년의 부흥을 ‘重生의 聖神 洗禮’라고 부르고 있다.(179-181)...... 성령의 세례라는 표현은 그 당시에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오순절운동이 대개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방언의 은사가 없어도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성령의 세례를 받으며, 이로써 참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이르게 된다고 확신한다.”(차영배, 「중생의 성신세례」)

차영배의 성령세례론은 1990년대에 이르러 약간의 조정적 시도를 보이는데, 즉 중생과 관련하여 다소간 광의적인 표현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성령세례를 ‘넓은 의미의 중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즉 성령세례는 은밀한 성령의 역사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는 중생의 첫 단계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며, 이 다음에 약간의 시차를 두면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신자의 존재 전체에 이르기까지 거듭나는 생명에 이르게 되는 회개를 하게 된다는 것이라는 겁니다(차영배, “중생과 성령세례 충만”). 이처럼 차영배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성령세례론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많은 신학적 논점을 제시하였습니다.

박영선의 입장이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론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은 그가 성령께서 베푸시는 세례와 예수께서 베푸시는 세례로서 두 가지의 성령세례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확인됩니다. 그는 특히 성령의 부으심으로서의 성령세례는 확실히 인식되고 감각되고 ‘이것이다!’ 라고 분명히 외칠 수 있는 것으로서, 단순한 성령의 내주와는 달리 내가 그것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박영선, 「성령론」, 80, 108).

고신대학교 교수를 지낸 안영복은 성령세례의 가장 큰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구속사역을 힘 있게 증거 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있다고 했습니다(안영복, 「성령론의 바른 이해」, 98). 그는 또한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도 부인하고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중생 이후 신자가 자기의 직무를 능력 있게 감당하기 위해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는 최초의 경험을 성령세례라고 지칭하고, 그 결과 계속 반복되는 동일 현상을 일컬어 성령 충만이라고 말하였습니다(안영복, 「성령론: 무엇이 잘못인가」, 45).

하용조는 오순절 날 나타난 성령의 세례는 물로 주는 세례가 아니고 성령께서 인 치시는 세례였다고 말하면서, 이 성령세례는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세례로서 보통 물세례와 구별하여 ‘불세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죄를 안 짓게 될 수 있으며, 전도할 수 있으며, 포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하용조, 「성령 받은 사람들」, 2:160-1). 이와 같은 하용조의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교회의 성령세례론의 여러 가지 전통 가운데 개혁파 전통의 신학자나 목사들을 중심으로 우선 중생과 성령세례의 경험을 구분하는 전통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렸습니다.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교회 성령론 논쟁은 주로 개혁파 전통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저는 웨슬리안이나 오순절주의의 성령론보다는 개혁파 성령론에 있어서의 논제를 특히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저는 개혁파 전통 내에서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전통을 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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