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제정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십시오”
1.
안녕하세요. 서경석 목사가 인사드립니다. 저는 <북한인권법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분당을, 김해을, 순천에서의 재보궐선거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작년 가을 “북한인권법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큰 규모로 출범하여 190명의 국회의원으로부터 북한인권법 지지 서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가 있으면 한나라당이 이 법안을 직권상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작년말에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직권상정의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북한인권법은 5년째 법사위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국민이 북한인권법 제정을 지지하고, 아무리 190명의 국회의원이 지지해도 민주당이 반대하는 한 국회상정조차 되지 않는 것이 지금의 국회현실입니다. 그래서 <북한인권법 국민운동본부>는 생각다 못해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북한인권법제정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자는 호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2.
이번에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은 절대로 북한인권법제정을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민주노동당은 무조건 김정일만을 추종하는 친북좌파세력인데 민주당이 이 당과 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 김정일을 추종하는 從北좌파세력이 많은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은 486세대가 된 386세대 때문입니다. 이들은 87년 6월 민주화대항쟁때 학생세력이었습니다. 원래 승리의 경험을 한 세대는 氣가 셉니다. 그런데 이 세대가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파입니다. 80년대 중반 아주 어려운 시기에 김일성 주체사상이 유행하면서 주사파가 학생운동의 주류세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대가 시민운동, 언론계, 노동운동, 전교조, 정치계 등 사방으로 뻗어나가 종북(從北)좌파 세력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맥아더동상철거사건, 평택미군철수투쟁, 한미FTA반대투쟁, 광우병촛불시위 등 대한민국을 흔드는 운동을 전부 주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조차 이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저도 젊은 시절에 친북좌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었습니다. 운동권 선배의 지도를 받으면서 저는 사회주의가 가장 옳고 북한은 낙원인 줄 알았었습니다. 다만 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계방면되었습니다. 훈계방면된 후에도 저는 대학시절 내내 이념적인 문제로 번민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82년에서 88년까지 미국에 유학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교포사회에서 북한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한 주일간 방문하는 사람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가다 아들 집에 한 달간 머물다 온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뉴욕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밤중에 아들과 단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들로부터 북한의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할아버지가 돌아와서 제게 북한이 얼마나 거짓의 나라인가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야 미망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88년초에 미국에서 귀국하고 보니 기독학생운동의 후배들이 전부 김일성주체사상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처음 6개월간 저는 이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이들을 의식화시켜 진보운동을 하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후배를 몰래 불러서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 되어 후배들이 저를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저를 내쫓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에서 쫓겨났고 NCC와의 관계도 끊겨 오갈 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운동만 해 왔는데 기독교 안에서 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아닌 일반사회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 시작한 운동이 경실련이었습니다. 경실련은 초기에 온건한 합법운동을 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386세대가 성장하여 시민운동으로 진출하면서 시민운동 전체가 좌편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창립한 경실련까지 포기하고 다시 좌파와 맞서는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느낀 사건이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입니다.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며 수천명이 모인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맥아더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사람은 인천상륙작전이 잘못되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만 없었으면 한반도가 김일성에 의해 통일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분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종북좌파세력이 몸통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저는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교조, 전농, 민노총, 민노당, 범민련, 한총련, 민중연대, 통일연대, 그리고 나중에 진보연대였습니다. 숫자도 3-40만명이 됩니다. 그리고 사회각계에 침투해서 나라를 흔드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모든 시민단체에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동상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 단체도 답변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습니다.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내가 從北좌파를 반대하면 틀림없이 후배들이 제가 꼴통보수가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길거리에 나가 “친북좌파척결이 시대정신이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들이 평택미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비무장 군인을 죽창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평택까지 내려가서 규탄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데모에 온 사람들은 거의 다 군복을 입은 재향군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에는 군복을 입고 집회에 오는 재향군인들은 극우라고 생각하여 싫어했고 그들과 어울리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택에서는 그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고 제가 꼴통보수가 된다면 저는 이제부터 당당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보수는 좋은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압도적인 표를 얻고 출범한 것도 우리 국민의 친북좌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다시 전교조가 설치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서 BBK 의혹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게 묻지마 투표를 하여 압도적으로 당선시켰습니다.
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을 때가 기회였습니다. 그 때 진보진영은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변화를 보인 곳은 민노당입니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더 이상 그들과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때의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 역사 속에서 종북좌파들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졌습니다. 이 촛불시위는 종북좌파들의 작품입니다.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광우병촛불시위를 주동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붉은악마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촛불시위가 성공하는 바람에 위기에 몰렸던 종북좌파세력이 다시 진보진영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좌파시민단체들이 다시 들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이 점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우리 역사 속에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있더라도 세력으로서의 친일파는 청산되었습니다. 세력으로서의 군사독재세력도 청산되었습니다. 세번째로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이 종북좌파세력입니다. 이들이 청산되어 민주당과 합리적 진보세력이 이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비로소 우리나라 역사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지난 천안함 폭침사건도 우리에게는 기회였습니다. 45명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나라사랑범국민운동을 만들어 종북좌파를 청산하는 운동이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이 출범하기도 전에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서 다시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연평도 사건 때문에 우리 국민이 정신을 많이 차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은 제대로 각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각성을 했다면 왜 지금 민주당이 친북좌파와 연대하겠습니까?
3.
북한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해치는 일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남북평화를 정착시킨 점이 있지만 이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김정일 정권의 비위를 맞추어 이룬 사이비 평화일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인권이 실현되는 평화입니다. 한국이 인권개선을 주장하는 순간 그대로 깨어지는 평화는 가짜평화, 위장평화일 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십년 전에는 한반도에 평화부터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는 평화가 정착된 다음에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바뀌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62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는데 이들이 북한에서 전원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연변에서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제가 가만히 있는다면 나는 기독교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탈북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의 이야기도 지겨운데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끔찍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나는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나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인권없이 평화만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북한주민들의 혹독한 인권유린 참상을 외면하는 대가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한 김정일로부터 보장받으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은 일제시대의 가쯔라-테프트 밀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 밀약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용인하는 밀약입니다. 이것은 두 수퍼파워의 평화조약이기 때문에 세계평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한없는 고통을 주는 밀약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북한인권은 외면하고 한반도의 평화만을 이야기할 때 북한주민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러한 입장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북한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어야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는가? 그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현한 평화는 사이비 평화였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잘못된 남북관계를 바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북한이 남북관계를 다시 옛날로 되돌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경색을 이명박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에 반대합니다. 지금 남과 북은 각각 자기가 바라는 남북관계를 위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천안함도 폭침시키고 연평도도 폭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위협이 두려워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하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북핵의 위협 하에서 한국사람들이 굴종과 굴욕과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은 미국으로 말하면 쿠바 미사일의 위협 하에서 굴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루시쵸프가 큐바에 미사일기지를 만들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3차대전 발발 위험을 무릅쓰고 해상봉쇄를 명령했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라 라디오로 3차 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어린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후루시초프가 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을 회항시켜 3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저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평화와 안보는 쉽게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이러한 각오로 임했기 때문에 쿠바에 굴종하지 않았습니다.
또 진주만 폭격이 있었을 때도 미국국민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단결해서 제국주의 세력과 싸워 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김정일 세력은 이차대전 당시의 히틀러나 일본제국주의보다 더 악한 세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단결해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북에게 평화를 구걸하며 굴종하면 우리는 항상 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한 방씩 때리면서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저는 이명박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이지만 대북관계만큼은 우리 국민이 정부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서 이 힘겨루기에서 남한이 이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의 도발에 대해서는 非군사적인 방식으로 더 강력하게 응징해서 북한이 뼈저리게 도발을 후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문제 제기는 우리가 손해보는 일입니다. 한국이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천안함 폭침도 연평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인권문제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고 기독교인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한반도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래야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민족이 되기 때문입니다.
4.
특히 기독교는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이 무신론인데다 북한공산당은 북한의 교회를 전부 없애고 기독교인을 혹독하게 탄압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아픈 과거를 잊고 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가 그런 노력이 많이 했지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일찍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와의 협력 하에 북한 기독교와 대화를 시작했고 또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게 되자 한국교회는 지난 15년 동안 정말로 열심히 북돕기에 앞장섰습니다. 물론 동포를 살려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관심 때문이지만 북한당국과 기독교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기독교를 主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성경책이 발각되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북한의 국민교육 장소인 신천역사박물관은 反기독교 선전장입니다. 저는 신천역사박물관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증조부되시는 서경조 목사님이 다른 목사님과 언더우드목사님 아들인 원한경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그 밑에 “양키의 앞잡이 야소교인들”이라는 설명문이 있었습니다. 양키는 황해도지역의 주민들을 몰살시킨 원쑤이고 기독교는 그 앞잡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설명은 사실과 다르지요. 양민 학살은 미군의 소행이 아니고 남북 양측이 서로 학살한 것이었는데도 북한은 미군이 학살한 것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고 제가 항의하니까 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떼지 않았고 그 사진은 지금도 그곳에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은 신천역사박물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북한에 봉수교회, 칠골교회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저는 97년 이래로 북한동포돕기를 위해 평양을 여섯 번이나 갔었고 갈 때마다 봉수교회를 갔습니다. 처음 봉수교회에 갔을 때는 너무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살짝 한 여신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까?”
“자기 할머니가 권사님이었는데 할머니 무릎에 누워 기도와 찬송가를 배웠는데 후에 봉수교회가 세워져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답변이 질문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상투적인 답변인줄을 몰랐고 저는 귀국 후 성령님의 놀라운 役事에 감격해 하는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4년전 워싱튼에서 프리덤하우스가 주최하는 북한인권대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탈북자인 김형식교수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35년간 김형직 사범학교의 국어교수를 하다가 모스크바 대학의 조선어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인은 반드시 평양에 “인질”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김형식 교수는 중앙당에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봉수교회 교인은 대남공작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되었는데 교인이 되면 식량과 의복의 배급이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앙당은 봉수교회 교인이 300명인데 이미 교인이 되려고 신청한 사람의 숫자가 60명이 있어서 김형식교수 부인을 61번째 대기자명단에 올려놓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려면 십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달 전에 인명진 목사님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봉수교회에 가지 못했답니다. 방문객이 없는 줄 알고 교회를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봉수교회가 가짜인 것을 모르고 계속 교류하고 공동기도문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20년간 속았으면 되었지 더 이상 속으면 안 됩니다. 가짜인줄 알면서도 공동기도를 계속하는 것은 교회지도자들이 한국교회 교인들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북한 김정일세력과 담대하게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북한에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미얀마가 인권유린으로 전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미얀마 조차도 종교의 자유는 보장합니다.
특별히 호남지역의 교회들이 소신을 가지고 민주당을 향해 “친북좌파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라!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호남은 기독교인 비율이 높습니다. 광주는 40%가 됩니다. 호남의 기독교처럼 민주당을 향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 입장을 분명하게 하여 민주당이 친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작년 11월 광주광역시 기독교교단협의회는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인권을 방치하는 것은 인간관심에 대한 결여이고, 생명의 모독이며 대한민국의 허약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성명을 통해 광주의 기독교는 더 이상 민주당의 하부구조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독교가 김정일을 반대한다고 해서 기독교를 전쟁을 원하는 세력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평화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한 대가로 얻어지면 안 됨을 강조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평화는 예수님께서 “내가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 지탄해 마지않은 가짜 평화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꾸준히 인권이 개선되는 과정 속의 평화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김정일을 반대한다고 해서 우리를 북한붕괴를 꾀하는 세력으로 보면 안 됩니다. 북한붕괴를 꾀하면서 남북간 신뢰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뢰구축 없이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입니다. 북한에서 꾸준히 인권이 개선되어 나중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인권이 동시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힘들더라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5.
민주당이 진정으로 정권잡기를 원한다면 친북좌파 세력이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고 친북좌파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잡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지난 大選 당시 민주당이 집권하면 친북좌파 세상이 될 것을 우려한 국민이 많았음을 민주당이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저부터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민주당이 친북좌파와 단절하면 즉시 정치적으로 중립을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등거리 관계를 유지할 사람입니다. 저는 과거 경실련 사무총장 이래로 항상 정치적으로 중립이었던 사람입니다. 다만 제가 친북좌파는 안된다고 주장하니까 세상이 저를 右로 분류한 것뿐입니다.
민주당이 친북좌파와 단절하면 지지기반이 줄지 않을까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입니다. 오히려 지지기반이 확충됩니다. 그리고도 진보성향 표는 갈 데가 없기 때문에 계속 민주당을 지지할 것입니다. 어차피 친북좌파는 민노당을 지지하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는 K-TV에서 주최한 북한인권법관련 TV토론에 참가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패널에 참가한 경남대학교 김근식교수가 참 좋은 말을 했습니다. 지금 북한인권법에 관한 세 가지 공감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북한에 인권문제가 심각하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한국이 북한인권문제를 말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김근식교수의 정직성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당이 크게 방향을 전환할 때입니다. 민주당이 끝내 북한인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훗날 북한이 해방되었을 때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입니까?
6.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인권을 강조한다고 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응징도 할 수 있는 한 非군사적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전쟁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 법을 만드는 이유는 북한을 붕괴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와 같은 운명을 맞는 것을 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권이 개선되고 체제가 유연해져야 붕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북한정권에 대해 실망하더라도 북한도 인권개선을 하고 개혁개방을 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북한동포돕기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북한동포가 굶어죽는다면 우리는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지금의 사정상 김정일 정권에게 식량을 갖다 줄 수 없다면 두만강변에서 직접 도우면 됩니다. 지금 북한은 식량난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각 지방에 자력갱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만강변에서 직접 돕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동족을 사랑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을 향해 한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