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여호수아 46]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14: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 에서의 자손이었던 갈렙
가나안 땅을 분배한 장소는 길갈이었고 가장 먼저 나아온 지파는 유다였다. 그들은 전쟁에서 항상 먼저 나아간 용감하고 담대한 지파였다. 그들 가운데서도 갈렙이 먼저 와서 헤브론 땅을 요청했다. 갈렙은 그니스(Kenizzite) 사람인데, 그니스(겐) 사람이란 창세기 36장에 기록된 바 에서의 자손 중 그나스 족장의 자손이다(11, 15절).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다 출애굽 때 함께 떠난 잡종이었다(출 12:48).
이러한 족속 사람인 갈렙은 이스라엘에 귀화할 때 유다 지파에 속하였고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낼 때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발됐다. 출신이 이방이요 잡종인 사람이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나, 유일하게 두 사람―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갈 특권을 갖게 된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가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기업은 결정돼 있었다.
2. 동년배였던 여호수아와 갈렙
현재 그는 85세이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으로 파견됐을 때에는 40세 청년이었다. 여호수아와는 동년배이다. 출애굽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던 것이다. 그는 45년 전에 약속된 기업의 분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담대히 요청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이 두 위대한 인물만 들어가게 하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게 하신 것에서 경고와 배움을 얻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 과연 누구이며 어떠한 자들인가를 분명히 알려주시는 것이다.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만이 성공한다. 역대로 하나님은 동년배의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예가 많이 있다. 루터와 칼빈은 12년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웨슬레와 휫트필드도 동년배들이요, 같은 학교 출신들이다. 다비와 함께 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도 그러하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같은 년배로서 온전히 주님을 따른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도 갈렙처럼 온전히 주 하나님을 따르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갈렙은 우리에게 인생의 좋은 비전을 주고 있다. 그는 85세가 됐어도 젊었을 때의 좋았던 신앙을 회상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젊었을 때 위대한 업적을 쌓고서 노년에 가서는, 아니 중년부터도 그가 젊었을 때 이룬 큰 일을 회상하며 그 꿈을 되새기는 맛으로 사는 것을 본다. 그러한 모습은 전형적인 이기는 자의 모습이 아니다. 갈렙은 젊었을 때에나 늙었을 때에나 여전히 같은 영과 믿음을 소유했고 여전히 싸우며 전진하고자 했다. 그는 소위 은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더 보기로 하자!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며 반역할 때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편에 섰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민 14:24). 그는 그 후로도 결코 반역적인 무리 속에 낀 적이 없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한 사람이다.
3.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온전히
7절에서 그는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모세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70인 역에서는 ‘그의 마음에’로 번역했는데, ‘그의’란 ‘모세의’ 또는 ‘하나님의’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모세의 마음과 일치됐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참된 마음과 양심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양심에 하나님이 없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마음이나 모세의 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위축되고 소심한 마음으로 보았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마음으로 보았기에 그의 본 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본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열 정탐 중 혹 어떤 사람은 그들의 양심대로 보았다 하더라도 아우성치는 민중을 바라보면서 참되게 양심에 따라 보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고 참다운 사람의 양심도 아니다. 그것은 대세에 기울어진 약하고 간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갈렙은 ‘내 마음의 성실한 대로’ 보고했다. 갈렙이 승리자의 특징을 지닌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14장 14절에서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온전히(wholeheartedly) 좇았기 때문이라 했다. 14절 뿐만 아니라 이 ‘온전히’라는 말은 갈렙의 인생을 대표하는 말이 됐다(7, 8, 9, 14절). ‘온전히’란 마음을 다한다는 말이다. 이는 주 예수님의 첫째 되는 계명이기도 하다. 이기는 자 곧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온 마음으로(with all heart) 섬기기를 배워야 한다. 온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아니면 이기는 자가 아니다. 목숨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아니면 이기는 자의 영이 아니다. 힘을 다하지 않는 것도 이기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갈렙에게서 이러한 이기는 자의 전형을 볼 수 있음을 인해 감사한다.
4. 갈렙의 단순한 성품
여호수아서를 훌륭하게 강해한 레드파스나 몽고메리는 갈렙의 성품이 단순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들은 위대한 영적 인물들이 동일하게 이러한 성품의 소유자들임을 지적했다. 몽고메리가 한 몇 마디 말을 인용해보겠다. “위대한 사람들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복잡한 사람들은 심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많은 갈등과 동기들에 에워싸여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모두 함께 해결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제의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까지 보았다. 그들은 하나의 행동에서 이 점을 보지만 그것을 달리 취하면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인정만 할 따름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은 교활하지 않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더라도 취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요인과 최선의 길을 보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몽고메리는 교부 시대의 위대한 인물인 아타나시우스와 루터, 링컨 등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그들의 소명을 지키고 나아가 결국은 승리를 거둔 인물들이다. 교회 역사는 그들에 의해 엄청난 도움을 얻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진리는 승리하고 역사는 그들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다.
5. “나의 힘이 그제나 이제나 일반이라”
그는 85세지만 여전히 싸울 것을 제의한다. 이 역시 이기는 자의 특징이다. “나의 힘이 그제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11절). 실상 가나안 전쟁은 이미 종료됐다(11:23). 그러니 갈렙이 꼭 현재 싸워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헤브론을 갈렙에게 줄 때 반드시 마지막 전투가 있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15:13-19). 그는 약속된 그 땅을 얻자, 거기 있던 아낙의 소생,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좇아내었고 드빌 거민을 쳤다. 드빌 곧 기럇세벨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취하자 갈렙이 약속대로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었다.
이러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의 주위에는 같은 믿음의 영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은 같이 동역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승리로 이끄는 주역들이 된다. 이는 교회사의 많은 사실들이 증명한다. 교회사에 위대한 영적인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주위에 한두 명, 또 그 이상 매우 위대하고 귀한 조력자들이 있어왔던 것이다. 이는 매우 신기한 일이다.
6. 85세에도 전쟁을 치뤄야 하는 땅을 원하다
그는 85세지만 쉬려 하거나 피동적이 아니었다. 그가 얻으려는 땅은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 땅을 갈렙은 원했던 것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절). 15절에 의하면 갈렙에게 할당된 땅은 헤브론이며 “기럇 아르바라 하였는데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고 한다.
갈렙은 적극적인 보고를 하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했을 뿐 아니라, 그가 믿은 대로 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노년에 가장 큰 아낙 사람들을 쫓아내는 위대한 일을 했다. 이기는 자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믿고 말하는 바를 행하며 그러한 길을 일생토록 곧게 걸어간다는 것이다.
7. 그가 원했던 땅, 헤브론의 뜻
그가 구한 곳은 헤브론이었는데, 헤브론은 ‘교통(fellowship)’이라는 뜻이다. 그는 최상의 상태를 원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영적 체험으로 말하자면 세겜(능력)과 벧엘(하나님의 집)을 거쳐 가장 최고봉에 이르렀던 장소이다. 믿음의 사람, 승리의 사람에게 주어진 최상의 기업은 하나님과의 간격 없는 교통이다. 이러 최상의 기업을 얻는 사람을 본보기로 보는 것은 매우 가치가 있는 일이다. 갈렙과 같이 단일하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한 자만이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 안에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