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이스라엘을 통일한 왕 다윗(3)
30세의 건장한 청년이 된 다윗은 헤브론에 살면서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서 왕으로 추대되어 유다 사람들을 다스렸다(삼하 2:1-10). 다윗의 헤브론 통치는 7년 반 동안 계속되었으며, 여섯 명의 아내로부터 여섯 명의 아들을 얻었으나 다윗 가정에 큰 비극을 낳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스라엘의 다른 11개 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2년 동안 통치됐으나, 이스보셋이 전쟁 중에 암살됨으로써 그 정권은 끝이 나고 말았다(삼하 2:12-4:12).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다윗과 대립시킨 것은 그의 부하 아브넬의 야비한 소위(所爲)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만하여 사울의 첩과 상통했는데, 이스보셋이 그 사실을 알고 책망하자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 사람들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귀순하고 말았다. 그의 태도는 야비하나, 다윗을 이스라엘을 위한 전국의 왕으로 추대하는데 중요한 출발이 됐다(삼하 3:1-21). 이후 요압이 야비한 아브넬을 살해했을 때, 다윗이 매우 슬퍼하며 그를 장사하고 애가를 지어 부르자 전 국민의 다윗에 대한 신뢰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다윗이 전국 왕으로 추대됐을 때에, 이스라엘의 성읍 몇 개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다윗은 우선 여부스 사람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탈환하여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했다. 그 도성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으므로, 양자의 반목을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이 가나안 사람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남북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왕국의 결합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블레셋 사람이 두 번씩이나 침입했지만, 다윗에게 완패하여 왕국은 평정됐다(삼하 21:15-22).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삼하 6장). 소를 잡아 전 국민과 함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예배 의식을 성대히 수행하고(대상 15, 16장) 웅장한 성전건축을 계획했다(삼하 7장, 대상 17장). 나라의 안전을 공고히 하고, 우상 종교로부터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변 이방 제국을 정복했다(삼하 8장, 10장, 12:26-31). 이스라엘 국경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지경까지 확장됐다(창 15:18). 다윗은 사울의 유족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후대하여 친구의 은혜를 갚는 것도 잊지 않았다(삼하 9:9-13).
다윗 왕권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융성했으나, 큰 범죄로 인해 그의 영혼은 급전직하로 흑암의 무저갱에 떨어지게 됐다. 다윗이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나 충장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나자, 그녀를 불러다 간음하여 자녀를 잉태하게 했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소환시켜 아내와 동침시키려 시도했다.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일선에서 전쟁하고 있는 장병들을 생각해 왕의 귀가 권유를 사양했다. 음모가 실패하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사지에 몰아넣어 죽게 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취했다(삼하 11장).
하나님은 다윗 왕에게 신실한 나단 선지자를 보내, 비유를 들어 자신의 죄를 핑계치 못하게 했다. 다윗은 즉시 옷을 찢고 진심으로 회개하였고(시 51편), 하나님의 징계가 그에게 임했다. 불의의 씨인 아들이 당장 죽고(삼하 12:19), 불법적인 욕정은 그의 가족을 파괴했다. 불효한 왕자의 야심은 내란으로까지 발전했고(삼하 13-19장), 신하 세바가 반역하게 됐다(삼하 20장). 이복 오빠 암논이 다말을 성폭행했고,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몬을 죽이고 도망쳤다. 부왕의 용서를 받고 귀국한 압살롬은 인심을 얻어 다윗을 반역하므로,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피난생활을 하게 됐다.
압살롬이 죽고, 국권이 회복되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병원 수(兵員 數) 증강을 위해 인구 조사를 했다. 교만 죄에 걸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갓을 통하여 7년 흉년, 3개월 대적에게 쫓김 또는 전국에 3일간의 온역 등 세 가지 중에서 택일하라고 했다. 다윗이 3일 간의 온역을 택하자, 하나님은 3일 동안 무죄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을 죽였다. 다윗의 치세는 솔로몬의 즉위 확정, 요압과 시므이에 대한 처벌 및 바실래의 후손에 대한 후대를 유언함으로 끝났다(왕상 1-2:11).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 통치한 이후 71세에 사망했다(삼하 5:4,5, 왕상 2:11).
다윗은 일찍부터 이스라엘의 가인(歌人)으로 명성을 널리 떨쳤다(삼하 23:1). 음악을 애호한 것, 수금을 잘 탄 것 및 성전에서 부를 찬송가를 다수 지었다는 것 등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삼상 16:18-23, 삼하 6:5, 대상 6:31, 16:7, 41, 42, 25:1, 암 6:5, 스 3:10, 느 12:24, 36, 45, 46). 큰 죄를 범하여 흑암의 시기도 있었으나,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 때문에 여호와의 마음에 대체적으로 맞는 사람(삼상 13:14)이라 불려졌다. 그가 지은 시편은 몇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 교회에서 애창되므로, 그의 영적 영향력이 후대에 까지 크게 미치고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윗처럼 잘하다가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하나의 실수도 없이 지상에서 주어진 삶을 모두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실수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각양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이 선출 전 후보 시절에 입으로 외쳤던 중대한 공약이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면 곧바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롭게 변경하는 것이 용기 있는 지도자로서의 행동이다. 과거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 작금, 각양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으로 호기를 부리는 현실이 우리들의 마음을 매우 안타깝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