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선지자 요나(Jonah)
순결한 비둘기라는 의미가 이름 속에 들어있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는 갈릴리 가드 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이다. 북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동안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이스라엘이 지경을 넓게 회복할 것이라 예언한 선지자로 유명하다(왕하 14:25, 욘 1:1). 요나는 구약의 선지서를 기록한 12명의 소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주전 825년 여로보암 2세 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도시의 심각한 죄악상을 알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라는 선교 명령을 받았다. 앗수르 사람 중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자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했다. 당시 앗수르 사람들이 무시로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괴롭히므로, 히브리 사람들은 그들을 몹시 미워하며 적대시하고 있었다.
요나는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나님이 내렸다고 생각하고 불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 드는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따르겠지만, 자국을 괴롭히는 원수의 나라까지 쫓아가 구원을 위한 전도는 할 수 없었다. 선교사 요나는 우주적인 선지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 몰래 욥바로 내려가 다시스행 배를 탔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기 수준의 인간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숨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찾지 못할 것으로 착각했다.
다시스를 향한 배 여행 중 난데없는 폭풍이 바다에 일어났다. 그 배는 비상이 걸리게 됐고, 승선한 사람들이 모두 나서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했다. 자신들이 소유한 물건을 바다에 던지며 자신들이 믿는 다양한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승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등 다양한 작전을 구사해도 바다의 폭풍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선장은 배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요나에게 다가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을 부탁했다.
이들은 승선한 사람 중 누군가 자신의 신을 노엽게 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승객들은 그 사람을 찾으려 하늘을 향해 제비를 뽑았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사람 요나가 제비뽑혔다. 요나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폭풍이 일어난 것을 잘 감지했다. 배에 탄 승객들은 요나의 요청에 따라 성난 바다 속에 요나를 들어서 던졌다. 바다의 폭풍은 곧 잠잠해졌고, 요나를 태웠던 배는 안정을 찾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바다에 예비하셨다가 요나를 통째로 삼키게 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물고기의 뱃속에 기적적으로 안착된 요나는 성전을 향해서 삼일 동안 날마다 눈물로 회개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자신의 잘못된 배신(背神) 행위를 회개했다. 불순종한 요나에게 있어 물고기 뱃속은 기도의 장소요, 성화를 위한 성전이 됐다.
때가 되매, 하나님은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육지로 뱉아내게 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전에 내렸던 명령을 다시 내리셨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도착했다. 하룻길을 돌아다니면서 40일 후에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멸망받을 것이라 선포했다.
요나의 전도에 효과가 크게 나타나 수많은 니느웨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운동을 범 민족적으로 일으켰다. 요나의 전도에 군신민(君臣民) 모두가 회개운동에 참여하므로 니느웨에 살고 있던 상당한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됐다.
요나는 사악한 종족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크게 불평을 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민족주의자인 그가 목소리를 높여 외친 것은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된다는 선고였지, 구원을 위한 전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니느웨 도시가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 넘은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을 요나는 알지 못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책하며 기도로 죽음을 구했으며, 성 밖에 나가 초막을 짓고 니느웨 사람들의 동정을 관망했다. 죄의 도성인 니느웨를 하나님이 곧 멸망시킬 것을 기대하며 성밖에서 며칠을 우거했다.
하나님께서 곤히 잠든 요나를 박넝쿨로 가리워 뜨겁지 않게 해 주셨다. 얼마 후 하나님이 벌레를 보내서 박넝쿨을 말려 죽이자, 요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죽음을 구했다.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시드는 박넝쿨도 하나님이 아끼거든, 선악을 분별치 못하는 니느웨의 어린 생명들 12만명과 육축을 어찌 아끼지 않겠냐고 말씀했다.
기독교 신앙은 속좁은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 폭넓은 우주적 삶을 살도록 한다. 마음 속으로 매우 불쾌한 존재가 있다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님 형상을 지닌 한 형제요 자매가 된다. 성경을 하나님의 책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구와도 원수를 맺을 수 없으며, 단지 사랑의 관계로만 승화시켜야 한다. 피부, 국적, 민족이 달라도 미움이나 경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요나를 통해서 대적자 니느웨를 사랑하도록 하신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