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칼럼] 북한 인권 침묵하는 WCC 총회는 의미 없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WCC 부산총회를 바라보는 심경이 착잡하다. WCC의 신학노선 때문이 아니다. 신학노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WCC 소속교단 중에는 자유주의적 교단도 있고 그런 지도자도 있겠지만 모든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단들은 예장 통합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고 고백하는 교회들이다. 그렇다면 신학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어느 때고 그들을 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맡기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오히려 우리의 걱정은 WCC가 예언자적 전통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WCC는 한국이 군사독재 치하에서 신음할 때 민주화운동을 끝까지 돕고 재정 지원을 해준 단체다. 당시 한국 민주화운동에게는 WCC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외의 동맹세력이었다. WCC가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한국이 가능할 수 있었다. 어찌 한국 뿐이겠는가? 남아공의 혹심한 인종차별도 WCC의 지원 없이는 타파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날 WCC는 이 세상의 정의의 대변자요,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 WCC는 북한주민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전 세계가 북한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경악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WCC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지난 7, 80년대에 남한인권을 적극 지원했던 점과 상반된다.

WCC는 80년대에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할 때 글리온 회의를 주선해서 남과 북의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하는 등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대화에 공헌했다. 그렇기 때문에 WCC는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가 80년대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WCC가 아직도 지난날의 글리온식(式)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80년대에 우리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무지(無知)했고 당시 남한이 군사독재 하에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반공적 입장이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미 탈북하여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북한주민이 2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에 의해 북의 모든 인권유린 참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북한의 봉수교회, 칠골교회는 남한의 방문자가 있을 때에만 문을 여는 가짜 교회라는 점도 확인되었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기독교인임이 드러나면 주동자는 사형당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기독교인의 만남은 대국민 사기극일 뿐이다. 과거에 우리가 북을 몰랐을 때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북한교회가 가짜임을 알면서도 북의 기독교인들을 만나면 그때부터는 WCC 지도자들과 한국교회지도자들 자신이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는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대신 북의 김정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지 모른다. 그랬다면 천안함도 폭파되지 않고 연평도도 포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으로서도 옳은 자세가 아니다. 아무리 큰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침묵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북한 문제를 보는 균형적 시각을 잃어버렸다. 북한 주민에게 빵과 자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빵의 필요만 강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인권이 다 같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만을 외쳐왔다. 지나간 70년대에 박정희정권이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자유의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했을 때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지난 70년대의 운동정신을 배반하고 있다. 그리고 WCC조차도 70년대의 WCC를 배반하려 하고 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WCC도 예언자 정신을 잃어버리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WCC의 예언자적 정신 상실은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WCC는 중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도 내지 못했다. 지금 중국은 천안문사태, 티베트사태, 위그르사태, 몽골사태, 탈북난민의 강제 북한송환, 파룬궁 사태 등 말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더 심각한 점은 중국이 북한의 삼대 세습을 지지하고 김정일 정권을 뒷받침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는 중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WCC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십자가에 못 박힐 각오로 소외된 자의 편에 서신 예수님처럼 살지 못한다면 WCC는 차라리 해체되는 것이 낫다. 그런데 꼭 부산까지 와서 총회를 하려 한다면 동북아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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