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르완다에서는 되고 북한에서는 안 되나 ②
이 글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시온 장로교회 이홍제 은퇴목사가 WCC 논란에 대해 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홍제 목사는 부산신학교(현 경성 대학교 신학부)와 Southwestern College 등에서 공부하고 예일대 신학부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본지는 이 글을 27, 28일 2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왜 아닌가? 르완다에서와 같은 시퍼런 칼날을 북녁 땅에서는 왜 뽑아들지 않는가 말이다. WCC의 특허 전문 용어인 인권·자유·평등·해방·평화·착취·약자·가난·차별·독재·압박 등의 사람 위한 사랑의 언어들을 북한에서도 사용해 보았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북한은 르완다에서와 같은 내용을 선포할 만한 시국이 아니고, 북한 앞에서는 WCC의 역이 달라져야 하고, WCC의 입이 부드러워져야 하고, WCC의 행동이 열중쉬어 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WCC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백도웅 목사는 WCC에 참여하고 있는 NCCK의 지도자로서 수 년 전 다음과 같이 역설한 것으로 안다. NCCK가 한국의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정치와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다. NCCK는 남한만이 아니라 인류의 아품을 치유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단체로 항상 약자, 가난한 자, 억울한 자, 소외당한 자의 편에서 그들의 입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고, 대변인이 되어 주고, 희망이 되어 주어야 한다. 성공회대학교의 최영실 교수는 “한국교회는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내적 평안으로 도피하지 말고, 제국주의자들의 거짓 평화에 맞서서, 불의에 항거하며 저들로부터 빼앗긴 약자들의 권리를 되찾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약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변질된 법질서와 교리와 이데올로기를 흔들고, 제국주의 자들에게 말씀의 칼과 불을 던지며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휴머니즘적인 발상인가? 이와 같은 신념과 정신하에 북한이 아닌 남한 정부, 교계, 사회에 성난 사자처럼 거세게 도전했던 NCCK, 그들은 과거에 독재정권, 군사정권에 항거했다. 한국 현대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요, 부끄로운 역사라며 그 대표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비난했다. 박정희의 3선 개헌은 권력을 동원한 강압책이었으며, 비민주적인 수치의 정권이라며 매도했다. 마침내 1979년 10월 26일 사태로 인해 박정희 군부독재는 종식이 되었지만, 12.12 쿠테타를 통해 새로운 전두환 군부독재가 들어서게 되고, 이들 신군부의 계획 아래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광주학살 만행이 전개된 후, NCCK는 새 군부정권에도 저항했으며 민주화의 선봉자로 80년대 내내 정치와 사회개혁 위한 투쟁을 일삼았다.
심지어 민주주의 절차 하에서 탄생된 정권에서도 인권적인 측면에서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와 불의로 약자가 억울함을 당한 것으로 여겨졌을 때 주저함 없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지배계층 또는 특권계층에 의해서 자행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악행들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부당한 정권의 탄압에 항거하면서 때로는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가 하면, 개인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의 근거한 이상적인 사회 질서수립을 열망하며 투쟁하였다.
어찌 그 뿐인가? 유럽이나 남미, 미국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이니 정치신학이니 하는 각종의 진보적 신학사상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종의 짜집기(Mosaic) 신학으로 민중신학을 앞세워 교계나 사회를 설득하려 했고, 그 신학을 모체로 한국교회의 틀(Paradigm)을 바꾸어 참여와 행동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의 구원, 오늘의 구원, 사회 구원을 선동하였다. 불공정한 현실의 부조리 상황을 제거하여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적인 사회 건설, 즉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적인 이상화를 외친 것이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예수를 자신들의 저항적 모델로 동반자로 보며 예수는 정치적 메시야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민족 해방의 영웅적 지도자라고 새롭게 부각시켰던 것이다. 소외된 계층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메시야적 혁명가로 변형시킨 예수와 자신들과의 연대감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세우고자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속적인 기독론은 이미 유럽, 미국, 남미 등의 정치신학자, 해방신학자, 희망의 신학자들이 제3세계(미개발국: 그 당시 한국도 포함)의 인권과 정치의 신장을 위한 Motivation으로 돌파구를 찾았던 포퓰리즘 예수관(그리스도관과 결별시키는)이요,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민중신학의 기독론으로 삼은 것에 NCCK 관계자들도 무관하다 말 못할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파격적인 재해석(전통적 신앙의 해석과 상반되는)으로 역사적 예수론을 앞세워 한국 교계를 혼란케 하고, 자신들 즉 NCCK는 현실 정치에 도전하여 가난 한 자, 억압당하는 자들의 대부로 자칭하면서 그들의 희망이 되어 준다며 노심초사했던 것 한국교회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WCC나 NCCK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해야 정당한 것인가? 남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차별받으며 억눌린 계층을 위해 저항세력으로 활동하는 그들이라면, 북한의 주민들을 위한 그들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강자에 의한 착취로부터 약자를 보호 하기 위한다면 남한에서만이 아니라 북한에서도 억압과 불법적인 지배집단에 대해서도 저항을 해야 설득력있는 행동이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요 불의로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기회를 주려면 남한에서처럼 북한에서도 똑같이 정치적 혁명적인 영웅 예수를 앞세우고 저항운동을 해야 누구에게나 공평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거나 거부하면 편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사상적인 의아심과 비난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느 신문 논설위원의 말처럼 “남한의 3선 개헌은 비난하면서 북한의 3대 독재세습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공산정권을 세운지 2년 만에 6.25 전쟁을 일으켜 동족간에 긴장 상태가 60년 동안 이어오는 이 순간에도 어찌하여 NCCK는 북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며 남한에 대해서는 서슴지 않고 인권 개선을 외치면서 비난과 투쟁만 일삼아 오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변명으로만 아닌 행동으로도 보여야 한다. WCC나 NCCK는 자체의 공정성에 그 어느 단체보다 분명할 때 한국교회가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명심할 필요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소설가 헤르타 뮐러가 북한에 대해서 무어라 비판했는가를 WCC와 NCCK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그녀는 지금의 북한이 “역사와 문명에서 하차했다”는 것이다. 과거 루마니아와 북한을 비교 하면서 “북한에 비하면(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는 역사의 작은 오점에 불가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뮐러는 이어 “(북한은) 그 공포와 가난의 규모와 양태를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거대한 강제수용소나 다름 없지 않을까”라고 강도 높게 표현했다.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관점인가를, 이 얼마나 부끄럽고 다급한 현실인가를, 이 얼마나 우리 모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민족적인 수치인가를 우리 모두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하물며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아직도 WCC나 NCCK는 북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려는가? 뮐러의 북한 관에 대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편향적인 선입견의 망발이라고 섭하게만 여길 것인가? 남한의 부조리 앞에서는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북한의 불의 앞에서는 애완견처럼 꼬리만 내리려는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 르완다에서처럼 북한에서도 WCC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인권운동가다운 모습으로 거세게 항거할 수 없겠는가?
WCC를 빛내는 25명의 저명한 인권운동가들이 르완다에서처럼 북한에서도 인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자들을 상대로 자유롭게 성토할 기회가 주어져야 공평한 것이라 본다. 이러한 요구에 WCC나 NCCK의 반응이 무엇일까가 매우 궁금하다. 자신들에게 용공이라는 소리에 “그렇지 않소”라고 예민한 반응만 보일 것이 아니라 Praxis로 자신들의 정체가 “이것이오”라고 우리를 향해 그리고 북한을 향해서도 자신있게 보여 주어야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한에 대해서는 흥분·분노하며,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과 겸비함을 드러내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교회협의회(NCCK)여, 왜 르완다에서는 되고 북한에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홍제 목사는
부산신학교(현 경성 대학교 신학부) 졸업
Southwestern College B.A.
PCUSA 소속 San Francisco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M.Div.
Western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Th.M. 과목 이수
The University of KentM.A.
The University of Glasgow Ph.D.(The Christology in Latin American Liberation Theology and Korean Minjung Theology)
예일대 신학부 객원연구원(A Research Fellow)
미국 장로교 소속 캔사스 노회(The Presbytery of Southern Kansas)에서 목사 안수
위치타 한인 장로교회(Wichita Korean Church) 2년 담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시온 장로교회에서 16년 담임 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