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범죄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은 지도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송태흔 칼럼] 국가를 살린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에스라는 주전 458년 바벨론에서 제2차 포로귀환시 이스라엘 민족의 탁월한 정치적 지도자였으며, 종교적으로는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고, 학문적으로는 모세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친 신학자로서 역동적으로 활동했다. 에스라서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이스라엘 역대의 정통 대제사장 아론, 엘르아살, 비느하스를 이은 사독 계열의 인물이었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스라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스 7:1-6), 장성해서는 바사 정부 아닥사스다 왕 치하에서 법률학자로서 성실하게 봉사했다. 스룹바벨 지도 하에 제1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한 유대인들이 종교적, 정신적으로 퇴폐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세의 율법을 유대 땅에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 의식있는 사람들을 모아 귀환자 클럽을 조직했다. 고국 이스라엘에 돌아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과 성전 중심의 신정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삶의 목표요, 꿈이었다.

그의 기도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 때 비로소 실현되기 시작했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 제7년(주전 458년) 정월 1일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을 출발하여 유대를 향해서 떠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군 도중 그는 3일 동안 아하와 강가에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를 한 후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그와 동행한 제2차 포로 귀환자들은 총 1,754명(어떤 기록에는 8,000명, 또는 56,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는 마지못해 길을 나선 레위인 성전 봉역자 38명, 느디님 사람 220명이 포함돼 있었다. 그 때에 바사 왕, 모사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방백들 및 이스라엘 잔류 인들이 막대한 헌물을 드렸다. 이스라엘에 돌아가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가르치려면 막대한 물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백성들과 함께 외부의 적들에 대항한 방어 기능이 전무한 무방비상태로 4개월간이나 장도의 행군을 한 끝에 무사히 예루살렘에 안착했다. 지도자 에스라는 바사 왕에게 보호병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방인 왕에게 방어 군대를 요청하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 귀환을 성공시켰다. 하나님의 사역에 이방인이 포함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스라엘에 귀환한지 얼마 안 되어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본토민들(원주민과 애굽인 등 이방인)과 상혼하므로 범죄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했다. 레위인, 제사장, 방백 및 족장들이 앞장서 그런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전해들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잡혼에 대한 범죄의 책임을 지도자로서 통감하고, 백성들을 대표하여 옷을 찢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면목이 없으며, 열조의 죄값으로 이방 적국에 사로잡혀가 수치를 당했으나 수난(受難) 중에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고, 해방으로 인해 성전이 중건된 사실 등을 아뢰었다. 포로 석방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배은망덕했고, 하나님 주신 약속의 땅을 범죄로 더럽혔다고 눈물로 자복했다. 이방인과 상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면 영원한 복을 받을 것과, 하나님은 정죄보다 은혜가 풍성하시며 하나님의 공의 및 악한 행동을 모두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지도자 에스라 개인의 헌신적 참회운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감화를 줘, 범민족적 통회 자복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차로 포로에서 귀환한지 4개월 후, 즉 9월 20일에 민중대회를 열었다.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비를 맞으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이방인과의 잡혼자를 자체적으로 제거하여 선민으로서의 성별을 맹세했다. 에스라는 족장들에게 위임하여 이방인 아내를 취한 자들을 철저히 조사토록 했다. 10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1일까지 이방인 아내를 취한 자의 명단을 작성했다. 그들은 모두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이방인 아내와 이혼했다.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 성수, 율법 준행, 성전에 정해진 헌물을 드리도록 가르치고, 세금에 대한 제도를 제정했다(스 7-10장). 요세푸스에 의하면 에스라는 대제사장 엘리야십 시대에 사망했다. 유대인 교사들은 그를 제2의 모세라 규정하고 지금까지 존경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성범죄가 매우 보편화됐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마저도 하나님의 교회보다는 물질과 세상 출세를 삶의 우선적 과제로 생각한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갖춰야 될 거룩성과 순수성이 점차로 퇴색되면서 이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전락됐다.

이때에 백성들을 대신해 범죄행위를 통회하며 자복할 수 있는 에스라 같은 건강한 기독교 지도자가 필요하다. 타락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범민족적 회개 집회를 유도한 21세기 에스라가 세계 교회에 요청된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많이 본 뉴스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한덕수 총리 대통령 후보 추대 국민운동본부’

한국교회 장로 1만 2천 명 “한덕수로 빅텐트를”

‘한덕수 총리 대통령 후보 추대 국민운동본부’(상임 추대위원장 김춘규)가 29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한국교회 장로 1만 2천 명 한덕수 총리 대통령 후보 추대 및 단일화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다. 대외…

김문수 한덕수

종교·시민단체 연합, “김문수 지지 및 한덕수와 연대” 촉구

대한민국 종교 및 시민단체 연합 일동이 28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조기 대선에서 김문수 전 장관 지지 및 한덕수 총리와의 연대 촉구를 표명했다. 이들은 “김문수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노동자의 땀을 기억하는 정치인이다. …

조선 근대화 서울 장터 시장 선혜창 선교 내한 선교사 140주년

내한 선교사들, 당시 조선 사회 얼마나 변화시켰나

19세기 말 선교사 기독교 전파 신앙, 한국 개화 동력이자 주체 ‘하나의 새로운 사회’ 형성시켜 복음 전하자, 자연스럽게 변화 1884년 9월 알렌 의사의 내한 이후 1985년까지 100년간 내한한 선교사 총 수는 약 3천여 명으로 파악된다(기독교역사연구소 조사). 내한 …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