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폭력보다 한 마디 말에 더 큰 상처 입을 수 있어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공동체개혁연대 대표).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공동체개혁연대 대표).

1923년 9월 1일 낮 12시경 일본 도교와 요코하마 간토(관동·關東)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사가미만을 진앙지로 5분 간격의 3차례 7.3 지진으로 화재와 해일, 토네이도까지 발생하여 무려 14만여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다.

이 지진으로 사회 불안이 만연해지고 민심이 악화되자 9월 10일자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지진 지역에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란 전면기사가 실렸다.

이는 궤멸적 피해를 입은 민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날조된 일본 정부의 거짓말이었다. 내무성에서는 각 경찰서에 “재난을 틈타 약탈행위를 하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의 방화, 테러, 강도 행위를 조심하라”란 공문이 하달되었고 이 소식이 더 확대되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들을 습격한다”는 헛소문이 급속히 퍼지면서 있지도 않은 이런 유언비어들이 기정사실처럼 여기게 된다.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의 보복 심리가 엉뚱한 조선인에게 증폭되어 자경단을 조직하고 진위 여부를 가려 보지도 않고 죽창,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조선인이 확인되기만 하면 즉시 학살하는 행위가 시작된다. 조선인 복장은 발견 즉시 참살했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옷을 입은 조선인을 가려내려고 어려운 일본 발음을 시켜보고 발음이 이상하기만 하면 일본인이라도 즉시 살해했다. 이때 학살한 숫자가 일본정부 발표 6천여명, 역사학자의 의하면 약 6만명이 되리라는 통계이다. 이를 지칭하여 역사는 ‘관동 대학살’이라 부른다.

이 잔흑한 관동 대학살사건은 일본 정부에 의하여 조작된 거짓말을 사실처럼 확대 보도한 매일신문(每日新報)사가 그 중심에 있었고, 이와 같은 거짓 유언비어가 군중들의 사고와 판단력을 흐려놓게 됐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사실이라 여기는 군중들의 분노와 증오심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비극이 우리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2008년 1월 25일 11시,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인기가수 나훈아 씨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 중병에 결려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과 일본 야쿠자에게 끌려가 신체 일부를 훼손당했다는 소문, 국내 글래머 여배우 김OO씨와 김OO 씨와 염문설도 사실이 아니라는 회견이었다.

“이와 같은 헛소문을 통하여 받았던 심리적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저를 난도질하고 만신창이로 만들었습니다”면서 탁자 위에 올라서 혁대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리면서 “여러분 중에 대표로 확인해야 믿으시겠습니까?” 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결혼도 안한 두 젊은 여배우들이 이와 같은 거짓말과 왜곡보도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괴롭겠습니까. 이 여배우들에 대하여 꼭! 바로잡아 주십시오” 하고 강조했다.

나훈아 씨는 그동안 방송, 신문, 인터넷 등 언론매체에 허무맹랑한 괴소문들이 퍼지면서 점점 더 확산돼 사실처럼 여겨지고 비판과 여론으로 시달림을 당해 왔다는 것이다.

어디서 흘러 나온지도 모르는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를 사실인 것처럼 인터넷을 통하여 “인신공격하는 네티즌들도 나쁘지만 그걸 부추기는 게 바로 신문이나 방송, 언론이라며 ‘아니면 말고, 맞으면 한탕’ 식으로 펜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법적 대응을 하면 되지 않느냐 할지 모르겠으나,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협의로 법원에 고소를 해도 변호사를 사야 하고 그 판결기간이 몇 개월, 몇 년씩 지속돼 그동안 시달리는 여론재판과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감당키 어렵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 씨의 외손자인 송일국씨는 어느 프리랜서 여기자가 폭행으로 이빨이 부러졌다고 엄살을 하며 돈을 뜯어내려는 의도로 협박을 당하다 재판으로 결국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오래동안 시달렸다.

그밖에 미국 스탠포드대학을 나온 가수 타불로(본명 이선웅)의 안티카페 ‘타진요(타불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학력위조 논란 역시 ‘인터넷 마녀사냥’이며, 살인적인 횡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가 1년 가까이 지속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방송특집으로 보도했던 광우병 취재보도가 사실이 아닌 허위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동안 얼마나 이 조작된 거짓말로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했는가 생각해야 한다.

칼로 준 상처보다 한마디 말로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그 상처는 더 오래갈 수도 있다. 그리고 방송이나 인터넷 등에서 인격을 매도하고 폄하하여 끼친 피해는 당사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중세시대 ‘마녀사냥’ 같은 범죄행위다.

최근 신문 방송 등 언론과 특히 인터넷 네티즌들이 무서워지는 시대가 됐다. 법정에서 사실 여부가 가려지기도 전에 여론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폭력을 넘어서는 살인적 행위나 마찬가지다.

84년 전 관동 대지진 때 날조된 거짓말을 근거로 조선인들을 난도질하여 죽인 범죄는 일본인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로 남아 있다. 행여나 우리 시대에도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으로 이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될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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