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남유다 제10대 왕 웃시야
히브리어로 ‘나의 힘은 여호와’ 라는 지극히 신학적 의미를 지닌 웃시야(또는 아사랴)는 부친 아마샤와 모친 예루살렘 사람 여골리야 사이에 태어난 남쪽 이스라엘의 제10대 왕이다(왕하 15:13,30-34). 그는 부왕 아마샤가 살아 있을 때, 주전 791년에 16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돼 주전 750년까지 약 52년 동안 남 유다를 통치했다. 북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아마샤를 크게 패퇴시키므로 국가의 기강이 어지러워지자 어쩔 수 없이 왕위를 어린 아들에게 내어주고 뒤에서 섭정하게 됐다.
왕이 된 웃시야는 휘하의 군대를 새롭게 조직하여 2,600명의 장교와 307,500명의 막강한 사병을 거느리게 됐다. 북 이스라엘에게 당한 부왕의 패배 경험이 섭정을 통해 군 기강 확립으로 비전이 결정된 것이다. 수도 예루살렘에는 신형 무기제조 공장을 세우고 기술자를 채용해서 새롭고 견고한 무기를 고안하고, 개발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도 예루살렘의 방비를 강화하고, 군대의 무기나 병거를 수준 높게 증강시켰다.
블레셋 및 아라비아 사람들과 전쟁하여 대승했으며, 이방국가의 가드 야브네 아스돗의 성벽을 크게 파괴해서 군비 손실을 유도했다. 당시로서는 인근의 강력한 나라 암몬 사람들과 기타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아 공물을 받기도 했다(대하 26:68). 웃시야 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대적을 방비하기 위해 수많은 요새를 곳곳에 건설했다. 웃시야가 남 유다의 왕으로 있는 동안 다윗과 솔로몬 이래 가장 부강한 군 기강과 국력을 확보하게 됐다.
웃시야는 광야에 높은 망대를 세우고, 우물을 많이 파서 농업을 진흥시켰다. 산간 지방에는 백성들로 하여금 포도원을 만들도록 해서 국가 재정을 확충했다. 백성들과 더불어 성전에서 여호와를 성실하게 예배했으나, 산당은 없애지 않으므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의 습관대로 이방 신에게 절하며 희생제물을 바쳤다. 집권 전반기에는 대체로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통치를 공식대로 수행했고, 개인 및 국가가 모두 엄청난 큰 복을 받게 됐다. 위임받은 지도자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원칙대로 걷자, 남 유다 백성들은 물질적인 복과 평화의 복을 동시에 얻게 됐다. 하나님의 길을 걷게 되면, 반드시 복의 근원을 만나게 된다는 인생의 성경적 원칙이 만방에 드러났다.
남 유다가 놀랍게 번영되자, 그동안 겸손했던 웃시야 왕이 갑자기 교만해졌다. 매사를 하나님의 사역으로 돌리고 머슴처럼 섬기며 일했던 웃시야가 폭력적인 교만한 군주로 돌변했다. 백성들을 섬기기는 커녕, 독재자가 돼서 연약한 백성들을 압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종 제사장의 충고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함부로 분향까지 하려고 무례한 시도를 감행했다. 성전 안에서의 분향은 임명받은 제사장 이외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비록 한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최고의 권력자, 왕이라고 할지라도 제사장을 대신해서 제사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웃시야는 아사랴의 충고와 제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노를 발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렸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웃시야를 즉시 징계해서 불치의 문둥병에 걸리도록 했고, 아마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게 됐다. 그는 죽는 날까지 문둥병 환자로 별궁에 기거하면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고 격리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제사장 권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분향하다가 징계를 받은 사건과 유사하다.
웃시야가 타락한 인생 만년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구전될 만한 무서운 지진이 그 땅에 일어났다(암 1:1,슥 14:5). 범죄하므로 문둥이가 된 사건과 과히 멀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으므로, 임의의 제사장 직분 침범 때문에 일어난 징계라고 사방에 소문이 났다. 문둥이가 된 이후, 그의 만년에는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국가를 다스렸다.
하나님께서 주신 초심이 변치 않도록 끝까지 자신을 통제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큰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며 추종할 때 처음 먹은 아름다운 마음이 인간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 높은 위치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이 크게 마비되곤 한다.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강을 건너게 돼, 만년을 고통과 함께 보낼 수도 있다.
요즘 국회의 청문회장에 나온 고위직 후보자들의 면면은 마지막까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깊이 깨닫게 해준다. 처음 먹은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도록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 드려야 아름다운 열매를 만년에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