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한국의 모럴 해저드 현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지난 15일 정전 사태를 돌아보며

▲박승학 목사.

▲박승학 목사.

1. 한전 단전사태의 심각성

도대체 일어나서는 안될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사건이 지난 15일 오후 발생했다. 갑자기, 아주 일방적으로 전기가 오후 3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이나 지역적으로 단전이 된 것이다. 사전 예고도 없고 방송 안내도 없이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3천여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혔고, 400개 이상의 은행이 업무를 중단했으며, 전방 관측소와 해안 레이더기지 등 124개 군 시설에도 전기 공급이 차단됐고, 기계가 가동되는 중소기업 또는 생사를 놓고 수술중인 수술실, 전기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수많은 곳들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게 무슨 일인가. 물론 이번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으로 발생했다면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원인은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 전력수요가 원만해지리라 예측하고 원자력 발전소 등의 안전을 점검하려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고온의 무더위에 냉방기구를 과하게 가동, 전력 수요가 폭주해 어쩔 수 없이 단전했다는 것이다.

이번 단전사고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의 손해가 300억원이 넘을 것이라 하고 정부는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사례 접수에 나섰다고 한다. 이같은 어처구니없고 무책임한 직무유기로 인한 피해를 과연 정부가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하는가. 정부 당국자는 대답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 당사자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발생했다면 정부가 책임지고 보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정전으로 인한 사고와 위기를 감리·감독해야 할 지식경제부 임원, 한국전력과 발전소, 전력거래소 책임 실무자들 모두의 불성실한 배임(背任)때문이었음이 틀림없다. 이같은 중요한 직책에 있는 자라면 위기를 대비하여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만일 홍수로 팔당댐의 물이 넘쳐 잠시 한눈 팔다가는 제방이 무너져 서울 시내가 물바다 될 지경임에도 심각성도 인지(認知)하지 못한 채 대비책이 없나. 제방이 무너진다면 시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안내 방송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 상황을 파악하고 국민들에게 “전력이 부족하니 절전하여 위기에 협조하여 주시기를” 이라 방송했다면 아마 전기가 남아돌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 예측도 못하고 방비도 못하고 책임있는 사람도 없었다. 감시·감독할 책임자도 없고 대비책도 없고 정신자세가 해이해져 도대체 어디에 생각을 두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다. 한국전력 상황실이나 지식경제부 감독 당사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임무에 충실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런 대형 사고를 치고도 국민 앞에 책임을 지고 배상하겠다고, 즉시 사퇴하겠다고 사죄하지 않고 미적미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저분들의 눈에는 국민이 어떻게 보이는 지 그게 궁금하다.

이번 사고 당사자들의 연봉을 조사해야 한다. 필자는 언젠가 칼럼에서 우리나라에는 귀족과 노예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쓴 적이 있다. 지난 부산저축은행 사태 임직원들, 금융감독원 직원들, 이번 사고 당사자들인 한전이나 지식경제부 임원들은 물론 일반 직원들까지 연봉이 7-8천 이상, 억(億) 단위가 넘는다. 반면 자영업자, 계약직 노동자, 일용직 등 대부분인 서민들은 월 수입 100만원대의 고달픈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귀족 같은 연봉과 특혜는 다 누리면서 자신의 직책에 대한 사명감도 없고, 국민과 국가에 대한 업무 성실성도 없다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가. 혹시 이런 대형사고를 유발하고도 연줄과 배경에 의지해 흐지부지하려 한다면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이 나라를 어떻게 공정사회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2. 대통령도 문제가 많으며,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도대체 국민들이 5년 임기 동안 국가 경영을 위임하여 준 ‘대통령 중심제’의 그 막강한 권한은 어디 있는가. 그렇게밖에 못하는가. 지난번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도 이번처럼 금융감독원을 전격 방문하여 질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무슨 확실한 개혁이나 할것 같이 요란을 떨더니 과연 결과가 어떠했는지 묻고 싶다. 용두사미, 송사리 몇 명만 처벌하고 넘어가려는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를 보면서 공사판 노동자들이 농땡이를 친다고 현장에 달려가서 고함이나 치는 십장(什長)과 무엇이 다른지 구별이 안 된다. 건설사 사장이나 하실 그런 자질과 인물이 대통령이 돼 비난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격 방문’해서 큰소리로 호통이나 치는 것이 무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자리에 앉아있는 책임 당사자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지 몰라도 속으로 콧방귀나 뀌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저축은행 부도사건 때도 ‘전격 방문’해서 호통치고 닥달이나 하더니 그 후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대통령 중심제 하의 엄청난 권한을 지닌 대통령은 공사판 사장과는 차별이 있는 것임을 구별하시기 바란다.

이번 한전사고나 지난 저축은행 사건도 임원들이나 간부들은 대부분 낙하산 인사였다. 그러면서 공정사회 법치국가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모럴 해저드 현상이 너무 심각하게 만연돼 있다. 저축은행이나 이번 한전 낙하산 인사 같은 사례는 한국 사회 전체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그런 방식의 낙하산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하고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내야 한다. 이같은 세상을 살면서 과연 누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는가. 힘있는 자들의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줄이나 서서 낙하산으로 한 자리 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3. 재발방지를 위한 사후 대책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업무 책임과 배상 책임 소재를 면밀히 조사하여 추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릴 만한 단호하고 분명한 배상과 처벌을 실시해야 한다.

아마 중국 같았으면 책임자 몇명이 공개 총살됐을지 모른다. 이에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책임 당사자들을 구속 처벌할 뿐 아니라, 둘째 그 책임 소재를 따라 재산을 몰수하여 피해를 입힌 중소기업이나 국민들에게 변상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같은 국가적 중대 직책에 있는 자들이 긴장하고 임무와 책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생각한다.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교단개혁연(aogk.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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