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
구약시대 말라기 선지자가 이 땅에서 활동을 마무리한 이후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는 약 400년 동안 신앙 공백기를 지나며,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영적인 혼돈의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즉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남은 자들이 그 땅에 소수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어서 매우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때에 구원자가 나타나 타락한 땅을 회복시킬 것을 성경대로 믿고 있었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미리 예비했기 위해 출생한 남은 자 세례 요한의 부친 이름은 사가랴이다. 사가랴의 헬라어 ‘자카리아스’는 히브리어 ‘즈가리야’의 음사로 ‘여호와는 기억하고 계시다’는 뜻을 지닌다. 그는 구약을 마무리하는 시대 아비야 반열(班列)에 속한 제사장으로 성실하게 사역했다(눅 1:5). 주후 1세기 당시 예배를 담당했던 제사장들의 반열은 매 6개월만에 한 번씩 교대로 바뀌면서 7일동안 성전에서 봉사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제비뽑은 대로 각기 할 일을 정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분향하는 직무가 가장 중요했다.
제사장 사가랴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과 함께 하나님 앞에 충실한 자녀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들 부부에 대한 인근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모델과 귀감이 됐다. 사가랴는 그토록 신실한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 담당할 자녀가 없었다. 오랫동안 자녀 출산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당시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자(無子)한 사가랴 부부를 하나님께 저주받은 존재로 여기며 조롱하기도 했다. 무자한 사가랴 부부는 그것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어느 날 사가랴가 성소에서 제사장으로서 분향하는 중요한 직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너의 간구함이 하늘까지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이를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말했다. 주의 사자는 ‘요한으로 인하여 너와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제사장 사가랴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천사는 계속해서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이고,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하에 돌아 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눅 1:8-17).
사가랴는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성도였지만 당시 매우 늙었고, 아내 엘리사벳도 경수가 이미 끊겼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믿으리요’라 말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말을 의심하는 불신앙적 태도를 보였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는 자기의 말을 믿지 아니한 데 대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사가랴가 입을 열어 말할 수 없도록 벙어리로 만들었다. 때가 되어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그와 동시에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껏 찬송할 수 있었다.
천사의 예언대로 아들을 낳고 성령이 충만한 사가랴의 입에서 나온 시는 구약 최후의 예언이요, 신약 최초의 예언시가 됐다. 그 예언시를 신학자들은 베네딕터스(Benedictus·축도)라 칭한다. 사가랴는 그이 입술에 놓인 아름다운 예언시를 통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과 구속의 방법을 마음껏 노래했다.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서 일으켜서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할 것이라 노래했다. 하나님은 죄없는 의인을 불러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잘것 없는 사악한 죄인을 선택하고 불러서 의인으로 만드신다고 말하면서 그의 은혜와 긍휼을 높이 찬양했다(눅 1:18-22,62-64,68-79).
하나님은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열기 위해 구약 시대를 마감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했다. 그는 세례 요한이라 불렸는데,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석녀 엘리사벳을 통해 출산했다. 석녀로서, 무자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조롱과 고통이 너무나 컸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 세례 요한을 사가랴 부부에게 선물했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기도를 그치지 않은 사가랴 부부를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이뤘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실한 사역과 기도는 모든 고통을 이기며, 희망찬 세상을 열 수 있는 놀라운 도구가 된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탁한 시기를 우리는 작금 살고 있다. 겉으로 건전하게 보였던 교회들도 목회자와 성도들이 매우 타락해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됐다. 이럴 때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유일한 모임, 교회가 쉼 없이 기도하고 하나님 주신 사역을 성실하게 성경대로 감당한다면 21세기 사가랴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어렵고 힘들수록 교회는 좀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며, 기본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신앙과 삶의 정도와 기본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서 사회가 첨단화돼도 크리스천들의 기도와 말씀의 성실한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