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의 사사기 14]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하라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21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1. 여기서 우리는 에베소서 6장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을 생각할 수 있다. 기드온은 혈과 육으로 싸우지 않았다―“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기드온이 만일 자신을 의지하여 싸웠거나 혈과 육으로 싸웠다면 나팔과 빈 항아리에 횃불을 감추어 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적이 만일 기드온과 그의 군대가 휴대한 전쟁 도구들을 보았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싸움에 관련된 도구들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도구들이다. 나팔이 그러하고 빈 항아리가 그러하며 횃불이 그러하다. 그 세 항목 중 어느 것도 전쟁에서 쓰이는 병기가 아니다.
2. 그렇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기드온의 명령을 절대로 따르는 것이었다―“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영적 전쟁에서는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순복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오순절 부흥도 120명이 온전히 마음을 함께한 결과다. 따라서 수많은 영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권위와 질서,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싸워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기드온은 300명을 삼대로 나누어 자기가 100명을 인솔하였으며 나머지 두 부대는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 두 부대는 절대로 기드온이 하는 대로 따라야 했다. 의견이 분분한 라오디게아의 상태로는 영적 전쟁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좋은 질서와 한 마음 한 뜻은 사도들이 언제나 강조하는 바이다.
3. 그들은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쳤다. 그것은 적들을 두렵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적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했고 기드온을 두려워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시 고린도나 에베소 성도들이 영적인 대적을 이기기 위해 바울을 신뢰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는 매우 중요한 말이다. 사람들은 여호와를 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면 교회는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자신에 대한 변명을 그렇게 했다. 바울은 교회가 자신으로 인한 자랑이 있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영적인 사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성도들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담대함과 사기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한 용기를 가진 후 그들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높이 쳐들었다. 시점은 제 이경으로 보초가 교대하는 바로 그 시각이었다. 모든 것은 기드온이 명령했다. 그것은 그들을 혼란시켜 멸망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드온이 그렇게 적은 인수로 나타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만 나팔소리와 외치는 소리를 듣고 횃불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미디안군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기드온 군대는 비록 300명이었지만 100명씩 삼 대로 나누어 받은 임무가 분명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반면 미디안은 135,000명이나 되는 큰 병력이었으나 기드온의 나팔소리와 횃불과 외치는 소리에 완전히 혼란되었다.
군은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혼란되면 전쟁에서 진다. 이는 영적 전쟁에서 필수다. 오늘날 교회가 3,000명, 5,000명 모일지라도 합당한 질서가 없고 혼란스러우면 사탄을 이기지 못한다. 차라리 1-20명이 모일지라도 절대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사탄을 이긴다.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24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25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1. 전세가 승리로 돌아서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하는 미디안을 추격하였다.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가 부름을 받고 적을 추격하는 데 동참하였다. 에브라임에게는 온 산지를 다니며 미디안을 치게 하고 그들을 앞질러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고 명했다. 그들은 기드온의 말대로 수로를 점령하고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았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틀에서 죽였다. 승전의 상황이다.
2. 여기서 우리는 이기는 자의 원칙을 본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교회 중에서 이기는 자들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가 다 전쟁할 수 없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교회 중에서 기드온과 삼백 용사처럼 싸울 수 있는 충성된 사람들을 뽑으신다. 그리고 그들로 사탄을 대적하여 싸우게 하신다. 성경은 이기는 자들의 책이다. 하나님은 교회 시대에 이기는 자들을 중요시하신다. 모든 성도가 다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시대마다 소수의 충성된 자들을 선발하시어 온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게 하신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그분의 백성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라면 어떠한 긍휼을 얻은 자들이겠는가! 기드온은 당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출하는 데에 하나님께 쓰임받은 이기는 자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삼백 용사가 있다. 그들이 먼저 싸워 기선을 제압한 후에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동참하여 승전가를 불렀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와 같이 먼저 싸움에 나아가는 소수의 정예를 원하신다. 이들이 이기는 자들이며 계시록 2, 3장에서는 특별히 이기는 자들에게 주님의 보상이 약속된다.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왕국에서 보좌에 앉으며 주님과 함께 다스릴 권세를 얻을 것이다. 이기는 자들에 대한 이러한 약속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욱 충성되게 길을 걸어가도록 힘을 주는 격려제(incentive)이다.
주님은 이 시대에 사탄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 사탄은 전체 이스라엘인 교회에는 다소 수치와 실패와 부패를 가져다준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은 길이 없으신 것 같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가? 좋은 상황은 잠깐이고 다툼과 부패의 상황이 주를 이룬다. 사탄은 참소하며 교회를 비웃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는 언제나 감추어둔 충성된 자가 있다. 그들도 원래는 약한 자들이요 사탄의 압제를 받던 자들이지만 기드온처럼 사탄의 압제 아래서 통분함을 키워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부르시어 영적 싸움에 임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로 승리하게 하시며 그들의 승리를 이스라엘 전체의 승리로 여기신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승리는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인 것이다. 미디안은 온 이스라엘을 우상으로 가득하게 하고 여러 모로 약탈하고 정복하고 수치스럽게 했지만 여기 한 사람이 일어나 바알을 깨고 미디안 군을 혼란케 함으로 자중지란하여(친구끼리 서로 치게 하심으로) 멸망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1500년대의 교회를 생각해본다. 사탄 마귀는 교회를 가톨릭으로 조직화하고 부패케 하여 각종 우상과 누룩을 집어넣었다. 그때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기드온과 같은 사람이 루터다. 비록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상숭배와 부패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루터와 당시 기드온 삼백 용사와 같은 충성된 자들이 일어나 당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러한 어둠의 세력에서 구출해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구출한 사사와 같은 일을 한 것이다. 그를 통해서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빛과 진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3. 마지막으로 기드온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큰 용사로 불리울 수 있었던 것, 작은 인수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방법대로 싸우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다.
그는 32,000명 중 두려워 떠는 사람 22,000명을 보내라고 하실 때 의견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또 남은 10,000명 중 물 마시는 태도를 시험하여 300명만 남기라고 하실 때도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전쟁에 300명을 데리고 나팔과 횃불과 빈 항아리만을 들고 나가라 하실 때도 다만 순종했다. 그는 하나님께 싸우려면 적어도 칼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는 싸우는 일과 승리하는 일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가장 중대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기드온이 큰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인도하실 때 그 음성을 분별하여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명령이 매우 이해하기 어렵고 또 따르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머뭇거리거나 물러서지 않고 다만 이행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미디안 진에 들어가 보라고 하셨을 때 그는 부라 한 사람만 데려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다만 순종하여 미디안 진중에 들어가 그들의 꿈 이야기와 해몽을 듣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순종의 문제다. 그가 큰 용사인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