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대로 딸을 제물로 바친 입다, 어떻게 봐야 하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의 사사기 23] 입다의 서원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1: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38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40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1. 길르앗은 르우벤과 갓의 땅이고 므낫세 반 지파의 땅은 바산이었다.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 길르앗 미스베로 나아간 것은 이스라엘 군을 모집하기 위한 것이었을 터이고 길르앗 미스베는 암몬 군과 대치하기 위한 곳이었다(10:17). 사람들이 이끌렸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영은 그가 싸울 수 있도록 강화시키는 동시에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행 1:8).

2. 그는 암몬 군과 싸우러 나가기 전에 서원을 하였다. 그 서원의 내용은 30-31절에 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그런데 그가 이기고 돌아왔을 때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맨 먼저 나와 소고 치고 춤추며 아버지를 영접하였다. 그러자 입다는 옷을 찢으며 당황해했다.

학자들마다 입다의 서원에 대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 15세기 전까지는 이 일을 주로 입다가 서원한 번제물(사람)을 죽여서 드린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대다수 학자들이 성전에서 일생 수절하며 섬기는 자로 만든 것이라 해석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가지를 다 어려운 일로 여겨 입다가 서약한 것이 짐승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하였다(A. C. Hervey). 이 견해는 취할 만하지 않다.

많은 신학자들이 입다가 출애굽기의 내용을 잘 아는(15-26절 참조) 사사로서, 또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으로서 율법에서 금한 인간 제물을 드리기로 서약했다는 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레 18:21, 20:1-5, 신 12:29-32, 18:9-12). 학자들은 또 이 전투를 앞두고 그의 행한 바를 미루어볼 때 침착한 성격의 입다가 그런 서원을 했을 리 만무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내용에 관하여 본문대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는다. 우리는 기드온이나 삼손이나 다른 사사들의 경우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귀한 점과 더불어 그들의 불완전성 또한 그대로 기록된 것을 본다. 하나님은 사람이 완전하다고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세우신 사람에게 약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특별하고 귀한 점을 들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훌륭한 점이 있다 해서 다른 약점을 좋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그 반대의 논리도 성립된다. 어떤 사람이 여러 면에서 좋지 않다 해서 좋은 점까지 나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입다는 아마도 그때 대적들을 앞에 두고 확실한 승리를 간구하는 심정으로 가장 위대한 헌신의 표시로 인간 제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인간 제물은 근동의 제사 가운데 가장 큰 제물로 여겨졌다. 아마도 입다는 돕 땅에 거하는 동안 이러한 이방인들의 인신제물 풍습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호크마 주석 참조). 이는 그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열심의 표시로, 또한 자신이 이 전쟁에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임하는지를 말씀드림으로써 반드시 승리하도록 도와주시기를 청원하는 서원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에 이기게만 해주시면 자기 집의 유용한 종들이나 심지어 권속까지라도 드리겠다고 말한 것이리라. 이런 입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분명 지나치게 고양된 심리에서 나온 잘못된 헌신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냉철하지 못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음을 본다.

만일 성전에서 수절하며 봉사하는 것이라면 35-36절과 37-40절까지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 즉 그들의 반응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입다가 승전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 영접하자 자기 옷을 찢었다. 그리고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히브리어로 ‘슬프다’라는 감탄사는 다만 단순 감탄사 ‘아하’이며 ‘참담케 하다’는 ‘당황케 하다’로서 결코 지나친 반응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입다가 나중에 한 말―“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은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이는 입다의 심한 갈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주님을 극도로 사랑하는 입다에게 자신의 딸을 성전 섬기는 자가 되도록 처녀로 드리는 일이 그렇게 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겠는가?

즉 입다의 말은 이럴 줄 알았더라면 번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호와께 한 일이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친구들의 슬픔이 그러하다. 한 처녀가 성전에 드려졌다 해서, 즉 여자가 시집을 못 간다 해서 두 달 동안이나 함께 울어줄 필요가 있겠으며 이스라엘 여자들이 기념일을 정해놓고 나흘씩이나 울 필요가 있었겠는가? 여자가 남자를 알지 못하고 시집을 못 가는 일이 어찌 그리 큰 일이겠으며 부모와 떨어지는 일이 어찌 그리 큰 일이겠는가? 딸이 수절하고 일생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면 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집에서 도리어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인간 제물을 바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으로서는 교부 중에 적어도 어거스틴과 오리겐, 개혁자 루터와 주석가 매튜 헨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가 딸을 어떻게 제물로 바쳤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과연 양을 잡듯이 딸을 칼로 잡아 죽이고 불로 태워 제물로 드렸을까?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문맥은 어떤 죽음이든지 딸을 죽게 한 쪽으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어쨌든 그는 잘못된 서원을 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서원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구원 계획에 따라 이기도록 도와주신 것이라 본다. 그가 그런 성급하고 무모한 서원을 한 것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충성과 열의는 영원히 기억될 만한 일이다. 이런 유사한 일은 사울의 전쟁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무엘상 14장 24절에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 아무 식물이라도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맹세하여 자기 아들 요나단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다(44-45절). 이런 맹세 또한 사울의 과격하고 성급한 발언에서 나온 것이다.

3.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5절). 스펄전은 이 말씀에 대하여 “그는 성급한 서원을 하였는데, 그런 일들은 지키기보다 깨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하였다. 그는 덧붙이기를 “어떤 사람이 범죄를 하기로 서원을 하였다면 그런 그의 서원은 본질상의 죄이고, 그의 서원을 행하는 것은 배나 더 죄가 된다”고 하였다. 그는 “어떤 사람이 도적질하기로, 간음하기로, 또는 살인하기로 서약하고 자신이 서약하였기 때문에 이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 성급하게 서원을 잘못했다면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써서는 안 된다. 물론 그 일에 있어서 죄를 초래할, 신중하지 못하게 서원한 것을 회개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과거에 젊은 형제가 한 번 집회에서 큰 감동을 받고 바울처럼 독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서약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막상 결혼할 때가 되어 사랑하는 자매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형제에게 합당한 권면을 주었어야 했다. 서원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할 것인가? 서원을 무시하고 결혼하라고 할 것인가? 나는 그에게 진정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과거의 성급한 서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후 그 형제는 결혼을 했고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는 물을 것이다. “나의 서원을 깨뜨리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까?” 비록 입다가 하나님 앞에서 입을 열기는 했지만 그가 그 일을 행하리라고 서원했다 해서 그 일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 서약을 깨는 것이 죄가 될 수 있겠지만 서약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무남독녀 딸을 희생시키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죄를 회피하기 위해 보다 큰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의 어리석은 서원을 깨뜨린다면 작은 죄를 짓게 되겠지만 그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더 큰 죄를 저질러서도 안 된다. 오히려 무지하고 어리석은 때의 조심스럽지 않게 입을 벌린 것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포하고 시인한 것을 언제든지 소홀하게 번복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에 대하여는 죽음으로도 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배교이다. 고문과 형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우리가 한 번 여호와를 위하여 입을 연 신앙고백에 대하여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칙상 입다의 하나님을 향한 태도 자체에 있어서는 숭고한 자세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우리는 이 양면을 고려하여 이 말씀을 상고해야 할 것이다.

4. 시편 15편은 다윗의 시로서 주의 장막에 유할 자와 주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을 말해준다. 즉, 어떠한 자들이 하나님의 장막인 교회의 구성원들로서의 특징이냐 하는 말이다. 4절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않는 자”라고 하였다. 또한, 전도서 5장 4-5절은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한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 34절에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주님의 말씀은 모순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주님이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사람이 그 맹세를 지킬 수 없는 것을 알기 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헛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늘날 어떤 성도들은 서약이나 맹세에 대하여 매우 느슨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약이나 맹세하는 것을 권장하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때로 사람들과 서약에 준하는 약속의 말들을 입에서 낼 때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있어 구약의 말씀은 그렇게 꼭 지킬 필요가 없다고 쉽게 단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서약한 것을 깨는 데 있어 아무런 자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구약의 서원을 별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막연하고 잘못된 영적 지식에 기인된 것 같다. 그러나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신약의 은혜는 구약의 도덕률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 높은 도덕의 표준을 지키는 것이 신약의 특징이다(마 5장 참조).

그러면 사람들이 서원한 것을 왜 성실하게 지키려 하지 않는가? 다만 성경에 대한 오해 때문인가? 그보다는 서원을 한 후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서원을 수행하게 될 경우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고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기대나 준비나 신뢰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원을 깬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말한 것을 쉽게 뒤집고 번복하고 하는 것을 주위의 사람들은 결코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그것이 서약이든 약속이든 서원이든 다른 사람들과 어떤 것에 대하여 하겠다고 결심한 것에 대하여 쉽게 요동하고 변개하고 뒤집고 하는 것은 절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성품이 아니다. 그런 실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천연적인 생명과 육체 안에서 자신을 중심삼아 사는 사람들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심각하게 배워야할 한 가지 공과이다.

5. 전쟁은 입다의 서원에 근거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다.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이며, 또한 10장 15절의 이스라엘의 기도와 부르짖음에 근거한 것이요 16절의 이스라엘의 곤고함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근심하여 돌아보심으로 인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야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쳤고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여 암몬 자손의 항복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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