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헌신적으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살로메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헌신적으로 따랐던 1세기의 중년 여인 살로메는 히브리어로 ‘평화’ 또는 ‘복지’를 뜻하는 이름을 지닌다. 그녀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세베대의 아내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신실한 모친이다. 항간에는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친 이모로 알려져 있다(마 27:56, 막 15:40, 16:1). 살로메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친 자매지간인 것으로 파악된다.
1세기 당시 살로메는 사회적으로 매우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지만, 자손 대대로 이어져오던 천직을 두 아들이 과감하게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의 사적인 친인척 관계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미래를 볼 줄 아는 통 큰 그녀의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갈릴리 좁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 평생을 사는 것보다 능력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에 과감히 투자할 줄 아는 높은 식견이 있었다.
그녀의 장남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 승천 이후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 주후 44년경 헤롯에 의해 살해됐다. 차남 요한은 12제자 중 유일하게 골고다 십자가 형장 인근까지 쫓아가서 스승과 함께 고통을 나눴다. 요한은 복음 때문에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때 밧모섬에 유배되어 일생을 비장하게 마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자였다. 두 아들 모두를 그토록 헌신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운 것은 모친 살로메의 특별한 교육과 헌신이 크게 작용됐다.
살로메는 한때 자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우측과 좌측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마 20:20-28). 살로메는 성경에 있는 메시야의 영광을 순간적으로 오해하여 이 세상의 것으로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두 아들이 높은 세속적 권력 얻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인척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적 배경 하에서 당연한 것으로 이해했다. 친·인척 관계를 이용해서 아무런 고난도 없이 출세하려는 살로메의 연약한 의도는 주님의 책망을 급기야 받게 됐다. 주님의 책망으로 인해 살로메는 두 아들을 위대한 복음의 사도요, 순교자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영성을 얻게 됐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즉시 마음으로 수용할 줄 아는 속 깊은 여성이었다.
살로메는 로마 군병과 산헤드린 공의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서나마 슬픔으로 바라본 의리있고 올곧은 여인이었다(마 27:56).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상(像)과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부합되지 않자 미련없이 자신의 길로 떠나갔다.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마저 개인적인 위기에 직면하자,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에는 향품을 가지고 아침 일찍 주님의 무덤으로 급히 달려갔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은 거룩한 안식일이어서, 당시 이스라엘 율법에 따라 시신에 향품을 넣을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마음으로 슬퍼하며 안식일이 지날 것을 뜬눈으로 기다리다가, 주일 새벽에 급히 무덤을 방문했다. 신실한 그녀는 1세기 최고의 역사적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제자요 증인이 됐다.
그녀와 일행들은 주님의 무덤 앞에 놓인 육중한 돌문을 굴려낼 것을 걱정하며 달렸다. 막상 주님의 무덤에 당도하자 돌문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흰 옷 입은 청년(천사)이 우편에 앉아있었다. 청년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고 말했다. 그 천사는 12명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돌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적 부활 소식을 전하도록 부탁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갈릴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살로메는 주님의 부활사건을 최초로 증언하는 전도자가 됐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실하고 의리있는 살로메를 모델로 삼은 여인들이 많이 등장해 교회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세우며, 성장시켜 나갔다.
21세기 현대교회와 국가 및 사회도 자신과 가족마저 버리고 공동체를 우선시할 수 있는 헌신된 여성지도자를 찾고 있다. 현대 사회는 어느 때보다 어머니를 닮은 헌신적이고 부드럽고, 그러나 당찬 여성 지도자가 매우 필요한 때이다.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이 여성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과 절대 무관치 않다.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연약한 공동체를 위해서 엄마처럼 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도를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