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의 사사기 30]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다
16:18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가로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되 우리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송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1. 삼손은 여기서 철저히 패배하였다. 그는 패배에 있어 단계적이었다. 첫번째, 여인에게서 기생으로, 그 다음 들릴라에게로 나아갔고, 들릴라와의 대화도 점점 죽음으로 나아갔다. 세번째에는 머리털에까지 나아갔는데, 머리털을 일곱 가닥으로 짜놓은 것이 결국 네 번째의 일―머리털을 미는 것―을 순조롭게 하도록 돕는 형국이 되었다. 머리털을 밀기가 간단해지게 해 놓은 것이다.
들릴라는 삼손으로 하여금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한 다음 사람들을 불러 그 머리털을 밀게 했다. 그런 다음 괴롭게 해 보니 보통 사람처럼 아무 힘도 없는 것이었다. 그때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을 불러들이고 삼손을 깨웠다. 삼손은 과거처럼 힘을 떨쳐보리라 하며 힘을 써봤지만 아무 힘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의 힘이 없어진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2. 두려운 일은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다 주님의 경책과 바르게 하는 명령을 듣지 않고 길을 벗어난 후에 이전의 능력과 임재를 잃어버렸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그렇게 잃어버린 능력과 임재로 인하여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돌이켜 하나님께로 회복되려는 마음이 없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길이 옳다고 확정하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자신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지나쳐온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돌이켜 회개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삼손은 그래도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
3.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다가 눈을 빼어버렸다. 그리고 그를 가사로 데리고 내려가 놋줄로 묶고 연자맷돌을 돌리게 했다. 그가 범한 죄는 주로 안목의 정욕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죄는 결국 온 몸을 범죄하도록 이끈 눈을 빼게 하였다. 또 함부로 방탕하게 사용한 몸에는 놋줄이 둘리게 되었다. 그러고서 연자 맷돌을 돌릴 때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그가 행한 것을 그대로 보응하는 식을 취하시는 경우가 많다(시 7:16, 렘 25:14).
4. 22절은 머리털이 밀리운 뒤에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역사이다. 이로 보건대 눈이 빠지고 놋줄로 묶이운 삼손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다. 다시 머리가 자라고 힘이 소생되었다는 것은 그가 회개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초인적인 힘은 단순히 머리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진정 회개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을 몰랐기 때문에 방심하고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는 문제를 주의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한이 없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삼손은 이미 타락하여 모든 것을 다 잃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대적에게 수치를 돌리는 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머리털이 자라면서 그 옛 힘이 다시 소생됨을 느낀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다시 부여하셨다. 훌륭한 지도자였던 사람이 타락하여 자기의 토설물로 돌아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다시 돌아와 마지막 헌신을 쏟아 부으라고 부르신다. 용서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더 사랑할 것이며, 주님을 더 많이 섬길 것이다. 그가 사탄에게 당한 것이 크고, 받은 수치가 큰 만큼 그는 대적에게 더 큰 해를 돌려주려 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진흙 가운데 맷돌을 돌리는 많은 주의 일꾼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자라난 머리털로 하나님을 위해 마지막 섬김을 쏟아 부을 것을 격려한다.
5. 블레셋 방백들은 원수 삼손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 다곤이 잡아주었다고 믿었기에 그 신당에 모여 다곤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방백들과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을 찬송하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삼손을 불러다 재주를 부리게 했다. 이 구절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6. 그들은 삼손을 두 기둥에 사이에 세웠는데 삼손이 자기를 붙든 소년에게 그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의지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 대한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는 두 기둥을 두 손으로 껴 의지하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하면서 몸을 굽혔다. 그러므로 그 집에 있던 삼천여 명의 블레셋 사람과 그를 잡아 눈을 뺀 방백들과 함께 다 건물에 덮여 죽었다.
사사기의 기자는 그가 살았을 때 죽인 숫자보다 그가 죽으면서 죽인 숫자가 더 많았다고 기록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삼손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실수로 범죄한 신자를 한동안 징계하시고 고통을 당하게 허락하시지만, 그 기간이 끝나고 진정으로 회개할 때 다시 회개를 받아주시고 회복하여 주신다. 미가 7장 8-10절은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삼손에게 매우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다(박윤선 주석).
7. 삼손의 형제들은 그의 시체를 가져다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부친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지냈다. 삼손은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냈다. 16장의 기생 집에 들어간 일과 들릴라와의 사건은 삼손이 사사로 있었던 20년의 말미에 있었던 일로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8, 삼손의 사건을 상고할 때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행위가 완벽한 자를 찾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약점이나 허물이나 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죄는 심판받아야 하고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삼손같이 약점있는 사람도 그 시대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
사람들은 사람의 외적인 행위의 완전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표시나 증거로 삼으려 하는 편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경우 밖의 행위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보이는 야곱을 택하신 것이나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며 살아보겠다고 하는 바리새인이 아닌 갈릴리의 어부들을 불러 쓰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사람의 소위 완전한 처신보다는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은 우리가 잘못되는 것은 우리 편에서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 주님께는 큰 일이다.
둘째는 그의 일생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일생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수치를 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게 유익을 돌리려 했다. 과거 중세에 수도원 제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영성과 자신의 영적 구원에 힘을 썼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거룩케 되며 바른 삶을 사는가, 말씀을 지키는가에 치중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의미가 있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기둥 성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분별된 삶을 살기 위해 현실의 죄악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경건을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들은 어떻게 자아와 혼적인 생명을 버리며 어떻게 깊이 십자가를 체험하는가를 중히 여겼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거의 돌아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든지 받지 못하든지 크게 주의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영성만을 주의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룻기와 같은 책을 좋아한다. 보아스의 경건함과 룻의 충성스러움, 이런 자들이야말로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삶을 볼 때 주님은 결코 이 땅에서 치우친 삶을 살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다. 신자에게는 양면의 균형이 필요하다. 어쨌든 삼손은 영예로운 믿음의 선진들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갔고(히 11:32) 성령께서는 그의 삶을 믿음으로 승리한 삶으로 인정하셨다.
그는 비록 성적인 면에서 무절제함이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 살고 죽지는 않았다. 그는 온 생애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전폭적으로 드렸다. 자기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린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가 죽음으로 대적을 멸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살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의 죄가 상쇄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중에서도 자기의 분량껏 하나님을 위했다. 하나님은 비록 그가 정욕에 눈이 멀어서 두 눈이 빠지는 고통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다시 회개하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할 때 그의 회개를 받으실 뿐 아니라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셋째는 주 예수님을 예표했다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완전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삼손의 태어남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생을 생각하면 할 수록 주님이 이 땅에서 당하신 일들이 생각난다. 삼손이 누구에게 반대를 당했는가? 동족이다. 누구에게 붙잡혀 대적에게 넘겨졌는가? 동족이다. 무엇 때문에 사슬에 묶였는가? 죄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죄가 아닌 그분의 백성의 죄로 인해 묶이셨다. 그가 붙잡혀서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점, 수치를 당한 점, 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롬 6:3-6).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후 운명하심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듯이 삼손 또한 기도하고 죽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했다. 삼손이 다곤의 신전을 무너뜨렸듯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왕국을 파멸시키셨다(매튜 헨리 주석). 이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