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칼럼] 믿음의 사람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
주후 1세기 이스라엘 민족들은 로마제국의 폭정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간절히 대망하고 있었다. 때가 되매 갈릴리의 나사렛 땅에 참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마리아의 육신을 빌려 성육신했다. 성경대로 그 분은 성령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 나라와 회개에 대해서 3년 동안 선포하셨다. 주후 1세기 당시 기득권을 가진 정통 유대인들은 그 분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하며 사사건건 괴롭혔다.
유대인들의 개로 취급 당했던 이방 출신 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알아보았다. 그 여자는 헬라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는 순수한 토종 이방출신으로서 가나안의 수로보니게 사람이었다(마 15:22).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전혀 없는 매우 부유한 층에 속했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우상을 숭배했다. ‘수로보니게’란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베니게(두로나 시돈 포함)가 로마의 속주 수리아에 포함되어있던 사실과 관련된다.
그녀의 고향과 관련된 두로는 1세기 당시 무역업과 해운업의 중심지로 바위가 매우 많은 작은 섬으로서 우상이 흥행했다. 베니게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도시의 하나로서 쌍벽을 이룬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당시 두로의 주신(主神)은 멜가르드(Melgart)였으나, 그것은 외관상 바알과 같았다. 두로는 자주 물감 생산에 있어 고대 제국들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유명했고, 고가(高價)였다.
시돈은 원어상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를 지닌, 두로와 더불어 베니게의 주요한 항구도시로 극심한 우상의 요람이었다. 성읍의 산 쪽에는 큰 방벽이 있었고, 남쪽이 가장 높으며 거기는 성채가 서 있었다. 성읍은 동산이나 과수원에 싸여 있었지만, 상업은 그리 성하지 않았다. 항구의 북쪽과 남쪽에는 작은 섬들이 있어 거친 파도를 막아주어 좋은 항구가 됐다. 베니게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돈의 주민은 어업 뿐 아니라 농업 및 무역에도 종사했으며, 그 입지적 조건이 시돈을 베니게의 유수한 성읍으로 만들었다.
‘붉다’는 원어 의미를 지닌 수로보니게(Syrophoenician) 출신 부자 여인에게 치료가 어려운 중병에 걸린 딸이 한 명 있었다. 그녀의 딸은 귀신에 들려 날마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후 1세기 당시 사람들은 귀신에 들린 것을 집안의 가장 큰 수치로 여겼다. 가족 중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으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이 가진 물질과 우상을 통해서 사랑하는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자신의 많은 재산을 허비해 가며 백방으로 노력해도 딸의 병은 차도(差度)가 전혀 없었다.
어느 날 수로보니게 여인은 나사렛 출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병든 영혼들을 치유한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예수 그리스도의 여행 노정을 소문으로 파악한 그녀는 창피를 무릅쓰고 주님 앞에 직접 나아갔다. 수로보니게의 유지였지만, 창피를 무릅쓰고 있는 힘을 다해 목청을 높여 예수 그리스도께 딸의 구원을 부르짖었다.
체면도 잊어버리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크고 시끄러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제자들마저 견딜 수 없었다. 주님이 직접 이방 여인을 다른 곳으로 물리쳐 주도록 제자들은 스승에게 건의했다. 당시 이방인은 정통 유대인과 같은 장소에 있을 수도 없는 더러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병이든 여자는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조차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냉혹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에 맞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더욱 자신의 어려운 문제에 몰입하게 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가 지닌 모든 짐을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께 내려놓기를 사랑으로 유도했다. 매우 부유했던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을 내려 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고 절규했다(마 15:25). 주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까지 말씀하시면서 민족적, 인간적 자존심까지 깔아 뭉갰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통 유대인이고, 자 민족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이며 개 같은 천한 이방인을 구원할 책임이 없다는 냉소처럼 들렸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자존심이 상해 주님을 비난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선택한 믿음의 사람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겸허하게 응소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세상의 하찮은 개로 정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길 끝까지 간청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땅바닥에 쓰레기처럼 내던지고, 오직 사랑하는 딸의 치유를 위해 전심으로 매달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한 믿음과 인내 및 겸손을 사용해서 귀신들린 딸을 깨끗하게 치유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마다 공천 후유증이 최고조로 증폭되고 있다. 공천 학살, 보복 공천, 특정 지역 의원 물갈이 등 혐오스런 정치 용어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 김칫국부터 마시다 정당 공천에서 탈락된 신청자들과 현역 의원들은 참지 못하고 정당과 상대를 비방하며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참고 견디며, 겸손하게 자신을 다스린 수로보니게 여인을 닮았으면 좋겠다. 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개 취급 받았던 것처럼, 병든 정치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공천자들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