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두려움에 붙잡히면 객관적 판단능력을 상실한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의 사사기 32]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사사기 17:1-6절 강해 계속

3. 왜 미가는 은 일천 일백을 소지하고 있다가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는가? 그것은 미가가 어미의 저주를 들었기 때문이다. 3절은 미가가 은 일천 일백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다고 말한다. 말씀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2절에서 미가는 이미 그 돈을 어미에게 주었다. 3절에서 도로 주었다는 말은 그 돈을 아들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어미가 아들에게 그냥 네가 가지라고 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래서 아들이 어미에게 도로 주었다고 했다. 아들이 그 돈을 어미가 가지라고 해도 절대 소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아들이 어미의 저주를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2절에서 미가가 돈을 내놓게 된 동기는 결국 어미의 저주하는 말을 귀로 들었기 때문이다.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그렇게 환원된 돈은 결국 우상을 만들고 신당을 세우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그 어미는 그 일천 일백의 은을 다 사용하지 않고 이백의 은만 사용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들이 위하는 우상에 대해서도 완전한 헌신을 하지 않는다. 우상숭배는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미는 왜 우상을 만들 마음을 가졌겠는가? 그녀는 그 우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두면 경배의 장소가 자기 집에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 집이나 자기 아들에게 큰 복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드나드는 고로 물질적인 유익도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 어미와 미가에게 그 우상과 신당을 만들어 놓은 것은 그들 인생과 소유와 장래의 모든 것이었다(18:24). 사도는 탐욕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다. 인간의 탐욕이 자기들 구미에 맞은 우상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주된 목적은 자기 미래의 생계와 안전과 번영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미가의 도둑질에 대한 회개와 처리는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두려움이다. 우리는 그의 그런 신앙이 참된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말씀의 빛이나 은혜로 죄를 처리하려 한 것이 아니고 어미의 저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죄를 처리하려 한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보면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후 주님을 믿게 한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기뻐하지만, 그런 것이 진정한 복음 전파 방식인가 하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은 물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의 주된 동기가 되게 하지는 않았다.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어 믿게 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대표하지 못한다.

사람이 어떻게 믿으면 어떤 길을 가게 된다. 나는 사람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구원받고 일생 은혜와 사랑에 이끌려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두려움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신앙의 길로 나가게 하는 것은 항상 자발적인 헌신과 믿음을 산출하는 데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이끌려 가는 것만큼 멀리, 깊이, 높이 가지 못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우상과 이단에 빠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약한 사람의 양심을 이용하여 그들의 악한 교리로 사람들을 낚아챈다. 교주를 신격화하고 비밀스럽게 만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 교주를 놀라운 기적의 장본인으로 만들고 기가 막힌 계시의 소유자로 만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그분은 놀라운 하나님의 종이다”라든가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말이 사람을 신격화하는 데 사용되는 위험한 말이다.

바울은 어떤 말을 하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생각할까 하여 멈추었다(고후 12:6).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이단적 단체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특이한 인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이상으로 두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단체의 사람들에게는 그를 떠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온갖 부패한 일이 자행되어도 떠나지 못하고 거기 매여있는 것이다.

등산하다 보면 군데군데 돌더미가 있다. 사람들이 뭔가 기원하는 의미로 돌을 하나씩 쌓아놓았다. 그러한 돌더미조차 사람들이 함부로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약한 양심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쳐서 넘어뜨리면 혹 장래 저주를 받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종교심이다. 사람들의 약한 양심에 두려움을 주어 신앙으로 인도하려는 것은 결국 미가와 같이 우상과 신당을 만드는 데로 이끌리게 된다. 이는 매우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 일단 두려움에 붙잡히면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신격화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 인물의 사상이 좋든 나쁘든 무분별하게 다 받아들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워하는 약한 양심의 감각을 영적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결과는 무참히 속임당하는 것이다.

4. 에봇은 대제사장의 겉옷이며 그 가슴 부분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다(출 28:15-30). 이것은 대제사장만이 사용하는 것인데 미가의 집은 자기들 마음대로 에봇을 만들어 사유(私有)하고 있었다. 드라빔(teraphim)이란 당시 가정의 수호신상으로 어떤 형상, 아마 사람의 형상으로 된 우상이다(창 31:19, 삼상 19:13, 왕하 23:24, 호 3:4, 5). 에스겔은 바벨론왕이 점칠 때 이것을 사용했다고 말하며(household idol, 겔 21:21) 스가랴는 이 드라빔들이 허탄한 것들을 말한다고 했다(슥 10:2).

미가의 가정은 이런 것들을 만들어 집에다 두고 점칠 때 사용하려 했으며 레위인이 아닐지라도 아들 중에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워 신상들을 섬기게 했다.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가 아니라 임의대로 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은 사람이 일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가 됐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정하신 엄격한 표준과 규정들이 점점 사람들에 의해 임의로 변형되어 이용되고 있다. 이것이 타락한 상태로서 오늘날의 거울이 된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지 않은 많은 인간이나 조직이 세운 주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달려 나가서 종이 되고자 하는 자원자를 그분의 종으로 만드시는 법이 없으시다. 그분은 그분의 종을 세우시는 일에 있어 모세로부터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부르심과 세우심으로 말미암는다.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8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1. 당시 미가의 집은 매우 넉넉한 편이었다. 적어도 은 일천 일백이 있었고, 그 중 이백을 신상을 만드는 데 썼더라도 은 900이 남았다. 10절에서 미가가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하고 일 년에 은 열씩 준다고 하였으니 은 하나가 제사장 사례금의 한 달분인 셈이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은 하나가 최소한 1,200만원은 된다. 그것이 900개 이상 있었으니 제사장 사례비 100년분은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가 집의 이러한 큰 재산과 신당은 레위인 하나를 고용하는 조건과 이유가 되었다.

2. 당시 유다 베들레헴의 한 소년이 레위인으로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으나 마땅히 섬길 자리가 없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거할 형편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 레위인은 거할 곳을 찾아 방황하다가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미가는 그가 레위인인 것을 알고 그에게 아비와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였다. 레위인은 그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거하기를 기뻐하였다. 이유는 그의 모든 생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미가의 집의 제사장이 되었고 그 집에서 사례비를 꼬박꼬박 받았다.

3. 이 레위인이 미가의 집에 고용된 것은 타락한 종교 상황이다. 그는 실로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어디서든 하나님이 정하신 율례에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했다. 그러나 생계가 어려워지자 여기저기 거할 처소를 찾아 나섰다.

그가 그곳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된 것은 형편과 돈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소위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원칙상 미가의 제사장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여기며 기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거할 처소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동시에 다 해결되니 여간 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순리에 따른 것이고 하나님의 환경의 인도라고 여긴다. 그분의 돌보시는 손길이라는 것이다.

그 제사장은 후에 더 발전했는데, 단 지파가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제안하자 좋게 여겨 도구를 다 가지고 단 지파 사람들을 따라갔다(18:19-20). 이 사람은 그런 면에서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여 크게 목회에 성공한 셈이다. 아마 그는 하나님께서 한동안 미가 집의 섬김을 받아주시고 이제는 ‘더 크게 섬기도록 인도해주시는구나’하며 감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 신당에 고용되었느냐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집에 머물며 그런 일을 하게 했는가가 중요하다.

오늘날도 원칙은 동일하다. 하나님의 진실한 종에게는 물질이나 숙소나 자녀 교육이나 생계 문제가 섬기는 길을 선택하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함과 진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시면 가고, 오라시면 온다. 하라시면 하고, 하지 말라시면 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 머물라시면 머물고, 떠나라시면 떠난다. 이것이 주님이 보내신 자들의 특징이다(마 10:9-15).

여기도 많은 이론과 이견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개 “그곳에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양들이 목자인 나를 필요로 합니다. 목자가 어찌 양들을 놓고 떠납니까”, “주님이 나에게 그들을 섬길 마음을 주셨고 그 증거로 내 영과 마음이 기쁩니다” 라는 것이다. 여기 레위인 제사장도 마음이 기뻤고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사랑도 받았다.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그는 단 지파 사람들을 따라 갈 때도 매우 기뻐했다.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18:20). 이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이 어느 곳에서 섬길 때 매우 기쁘다고 하는 것도 그 섬김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영적 은사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도 그 섬김을 정당화하는 요건이 될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이 그를 인도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게 했는가다. 그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지파의 사람이고 또 섬길 줄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배운 게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타락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 아래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세력 아래 섬기는 게 타락이다. 물질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돈으로 하나님의 종들도 고용할 수 있다(?). 이 어떤 타락인지!

4. 12절에 의하면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 집의 제사장이 되었다. 미가는 그 레위 소년에게 연봉으로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고용하였다. 그리고 자기 집 제사장으로 삼은 것이다. 사람이 돈의 위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주의 종을 세운 셈이다. 돈이 있으면 못하는게 없다더니 교회도 주의 일도 주의 종도 다 만들 수 있다.

미가는 그의 족속이 레위인이 아니라서 제사장이 되지 못한 것뿐이지 제사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 미가인 셈이다. 금력이 미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미가가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은을 주지 않겠다”면서 레위인을 호되게 다룬다면 그 레위인은 크게 겁먹을 것이다. 거기다 레위인 청년이 어느 날 결혼까지 하고 자식을 낳아 둘 셋 있게 되면 완전 포승으로 묶여진 채 사람의 종이 되어버린다.

5. 이런 사람들의 일은 섞이고 혼잡한 신앙의 결과를 산출한다. 미가와 미가의 어미는 자기 멋대로 해서 그렇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마음이 있었다. 미가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면에서는 나름대로의 신앙이 있었으며 자기 가족 사람보다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어 섬기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하려는 면도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진리 쪽으로 가려하는 점도 일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에봇이라든지 드라빔이 있었다. 그 레위인은 그것이 대 제사장 외에는 입고 사용할 수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평민이 그것을 만들고 또 사용할 수 있는가하고 묻지 않았다. 또 출애굽기 20장의 율법에 의하면 드라빔은 우상인데 죄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다만 기정사실화하고 따랐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을 가리켜 혼잡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도 있지만 우상도 있다.

오늘날 많은 곳, 심지어 천주교도 신앙이 혼잡되어 있다. 예수님도 있지만 마리아상도 있다. 마리아상도 있고 성인상들도 있다. 그 많은 우상들이 그들의 경배의 대상으로 취해지고 있다. 이것이 혼잡의 극치이다. 이런 혼잡의 극치는 장래 바벨론에서 극대화되며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바벨이란 원래의 뜻이 혼란이라는 뜻이다.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 하나님에 속한 것과 인간에 속한 것들이 혼잡하게 혼합된 것이 바벨이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깨끗한 신부를 원하시지 혼잡한 것을 원치 않으신다. 혼잡한 것은 바벨론(음녀)이다.

우리는 계시록 17, 18장에서 바벨론의 심판을 본다. 성령의 음성은 그분의 백성이 그런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6. 이런 타락의 흐름을 막지 못하는 것은 무책임의 죄가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책임의 죄를 큰 것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엘리는 자녀들이 죄를 지었을 때 마땅히 엄하게 책망하고 끊어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당시 레위인은 마땅히 그런 곳에 들어가 살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실행을 반대해야 했다. 그는 수동적 입장을 취했으며 현실에 적응하고 안주했다. 그에게는 진리나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등 다른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컸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적극적으로 진리에 합하지 않은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결국 그 에봇과 신상이 단 지파의 곳으로 가지고 가게 되어 이스라엘이 다시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는 일의 요인이 되게 하였다. 작은 실수가 큰 실수를 만드는 동기가 된 것이다. 그런 일을 해놓고도 미가는 레위인으로 제사장을 삼았으니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기를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어떠한 혼돈과 망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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