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범 칼럼] 탈북자 고통, 누가 품어야 하는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남한에 내려와서도 계속되는, 이들의 힘겨운 삶

▲김창범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창범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전세계가 호응한 탈북자 북송반대 캠페인

마침내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6일 서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정상회담을 통하여 탈북자 문제에 양국이 인도적 관심을 갖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주중 베이징 한국영사관에 억류된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공관에 있던 10명의 탈북자 모두가 풀려났다. 전 세계에서 일어난 탈북자 북송 반대 캠페인이 마침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시위는 지난 2월부터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건너편 옥인교회 앞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몇몇 NGO가 나서서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중국 정부의 처사에 항의해 왔다. 이 시위에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과 탈북자 박사 1호인 이애란 박사 등이 항의단식으로 여론을 환기시켰고 차인표, 이성미를 비롯한 30여명의 연예인들의 시위와 연세대 강당에서의 특별공연 등으로 탈북자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선진 각국들이 나서고 유엔이 나서는 등, 국제적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 반응은 냉담했고 탈북자 북송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래서 2만 3천여 탈북자들은 오늘도 가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북한을 떠나온 공통된 이유

지금 남한 땅에는 여러 부류의 북한사람들이 내려와 함께 살고 있다. 과거 해방 전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북한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살고 있고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냉전 시기에 삼엄한 북한 체제를 뚫고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귀순자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95년경부터 최근까지 아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북한 땅을 떠나온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

이 세 부류의 북한사람들이 “내 조국, 내 고향” 북한을 떠나온 공통된 이유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더 이상 인간답게 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처럼 두렵고 고통스러운 탈북과정을 감내하고서라도 남한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남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탈북과정 이상의 또다른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했다. 만약 이점을 알았다면 탈북을 주저했을 지 모른다. 지금 탈북자들은 과거에 실향민들과 귀순자들처럼 정착을 위한 힘든 과정을 삶의 과제로 부여받았다.

이들 가운데는 성격이 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다시 남한을 탈출(?)하여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땅이 그들이 바라던 신천지가 아니었다. 언어장벽, 문화장벽 등 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어떻게 하든 남한 땅에 정착하여 내 삶의 신천지를 개척하는 과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남한에 정착한 많은 탈북자들은 어려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남한에 내려오기를 잘 했다”고 탈북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낯선 땅에서 낯선 관습과 문화 속에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이기며 긍정적 태도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남한 사람들조차 힘들어 하는 치열한 경쟁의 삶을 이기며 “어떻게 남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이것은 탈북자들이 저마다 극복해야 할 개인적 과제이고 통일시대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선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과거 실향민과 크게 다른 탈북자의 현실

과거 실향민 세대가 남한 땅에 정착하는 데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나름의 성공을 성취하는 과정은 눈물겨웠다. 그리하여 실향민들은 남한 땅에 기업을 일으키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또 교회를 개척하며 전쟁 후 남한 재건에 일조했고 그만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극복 과정에는 당시 사람들의 동족의식, 6·25라는 전쟁에 대한 공통된 상처 등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었다는 점이 실향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실향민들은 남한 사람들에 비해 부지런했고 인내심이 컸다.

그러나 오늘날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겪는 형편은 60여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탈북자들과 남한 사람들 사이 형성된 공감대가 너무나 미미하다. 기껏해야 60대 이상의 세대가 갖는 동족의식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잔악함에 대한 기억 정도다. 그러나 40대 이하, 20-30대의 세대는 탈북자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함께 나누어야 할 민족적 공감대와 역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남북대치의 현실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직설적인 반공주의만 내세워 보다 진취적 방안을 찾지 못한 점, 이로 인해 좌클릭의 편향적 이념이 과잉하게 된 점 등으로 남한 사회는 탈북형제에 대한 우호적 생각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오랜 북한식 사고방식과 습관이 몸에 밴 탈북 형제들이 자유분방한 남한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남한에서의 정착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상급자의 명령과 지시만 따르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유와 책임을 자발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유주의 체제로 의식 전환을 시도해야 하는데, 탈북자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런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탈북과정에서 입은 몸과 마음의 극심한 상처들로 인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해와 편견, 차별과 냉대를 벗어나 서로가 진정으로 따뜻한 가슴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탈북자 문제에 나서야

우리는 그 대안의 기회를 한국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큰 틀에서 남북갈등의 문제와 탈북자 문제, 그리고 좌익 이념에 매도된 청년세대에 대한 문제 등을 이해하고 하나님에게 이 민족적 아픔을 푸는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분열시키는 여러 가지 부당한 요인들을 녹일 수 있는 주님의 사랑과 사악한 적들에 대해 영적 전쟁을 감당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한국교회에 부과된 책임이고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탈북형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은 자기 조국을 버린 무책임한 도망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와 풍요를 향해 탈북한 사람들이지만, 신앙적 관점에서는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한 일꾼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남한에 내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남북통일의 과제를 안고 기도하는 한국교회로서 놀라운 신앙과 통일의 비전이 담겨 있다. 고통 받는 탈북자들은 바로 우리 시대에 통일을 안겨주고 또 통일을 준비하게 하는 소중한 자원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다. 그래서 탈북 형제들은 바로 대한민국의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남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진정한 주님의 사랑으로 탈북자들의 고통을 품고 위로하며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악을 향해 분노하고 대적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남북관계의 아픔이 치유되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소중한 탈북형제들을 한 사람씩 가슴에 품을 수 있을 때, 통일의 그 날이 반드시 밝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통일의 물결은 이미 탈북자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김창범 목사(시인, 손과마음선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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