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의 룻기 4] 잘 어울리는 룻과 보아스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3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 우리는 여기서 보아스의 경건성과 신앙 인격을 대하게 된다. 그는 먼저 축복과 감사와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이었다(4, 12절). 그들의 상호 인사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와서 자기 밭에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일꾼들이 주인인 보아스에게 답한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는 경건한 사람의 인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경건성은 그들의 인사에서도 발견이 된다. 오늘날 성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점들이다.
2. 보아스는 낯선 여인 하나를 발견하고 사환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이 소녀는 누구냐?” 그녀는 분명 이방 여인이요 자격이 없는 자요 모압 여인이었다. 하나님의 총회에 낄 수 없는 운명의 족보를 가진 여자였다. 오늘 우리의 말로 하면 “나는 사악한 가문 출신이며 다른 사람처럼 진노의 자녀입니다. 나의 본성은 타락하였고 간악합니다”이다.
그러나 그녀는 보아스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오, 선생이여, 만일 당신이 내가 나의 절망적인 상태, 버림받은 상태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을 안다면 이삭을 줍게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하나님께 이방인으로 살아왔으며 이스라엘 연방으로부터 떨어져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환은 묻는 보아스에게 답변한다. 그녀는 모압에서 온 소녀인데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해달라”고 하였고, 그녀는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것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라고… 즉 그녀의 열심과 근면성을 말한 것이다.
그때 보아스는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보아스는 참으로 경건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룻에게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을 주우라고 하면서 배려해주었다. 실상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보아스는 이런 사람을 만나러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주님은 룻과 같이 자신에 대해 낮은 평가를 갖는(내가 무엇이관대 당신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을 수 있나이까? 나는 이방인일 뿐이옵니다) 사람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바로 너 같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
3. 그는 룻이 예쁘장한 여인인 것을 보고 그곳 남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말해주었고, 그녀가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보아스는 확실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였다. 실상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이다. 그는 다만 외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율법의 본래 정신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경건의 실제이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계명이 그의 인격과 삶을 통해 빛으로 나타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불쌍한 과부나 고아를 돌아보고 가난한 자를 동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자비하고 자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속성들이다. 이 경건한 사람 보아스와 같이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벌써 고대에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의 아름다운 말씨와 온화한 문화를 대한다. 이러한 말씨들은 확실히 복된 말들이다. 나는 오늘날도 그리스도인 사이에 할례받지 않은 입과 귀들을 본다. 비그리스도인과 방불하는 언사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복되고 은혜를 끼치는 말로 다 바꾸어야 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놀라운 축복의 사람들이 되었는가? 이는 분명 그들의 경건한 언사와도 관계가 있다.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처음 들어온 성도들이 이런 태도를 갖는다면 얼마나 바람직하랴!
룻은 이미 보아스의 곁에 있는 시녀들이 너무도 축복을 많이 받은 고로 자신은 그들과 너무나 차이가 있는 비천한 자라고 생각한다. 즉 그녀는 “내가 만일 진즉 하나님의 자녀이었고 말씀을 배웠다면 이런 존재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처음 믿음생활을 시작하고 자신의 사악함과 불완전함을 깊이 인식하며 다른 성도들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룻과는 달리 성도들에게 들어오자마자 자신만 못해 보이는 이미 성도된 자들의 약점을 찾아 파헤치며 자신을 그들 위에 놓으려 하는가? “나는 당신의 시녀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라는 표현은 너무나 영적이고 사모할 만한 말이다.
5. 보아스의 이러한 황송한 배려에 룻이 답한다.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많은 학자들이 보아스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룻은 이방 죄인인 우리를 예표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아주 귀한 해석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이방 죄인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우리 또한 룻처럼 주님께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방 죄인인데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시나이까?” 그런데 놀랍게도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알고 계셨던 것과 같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2절의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또한 보아스의 축복 기도 중 하나이다. 그는 기도와 감사와 축복의 사람이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보호하심을 받으러 온 사람을 주님은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요 6:37).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전부터 그녀를 다 알고 계셨으며 또한 삭개오를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고 계시며 나를 알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아시며 특히 주님을 위해 착한 일들을 행한 것을 아신다. 계시록 2, 3장에 의하면 주님은 일곱 교회의 상태를 다 알고 계셨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와 같이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격려가 된다. 세상이 몰라줘도 주님은 우리를 아신다.
6. 룻 또한 은혜를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오늘날 어떤 가난한 나라 사람들 같지 않았다. 그 가난한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동정하고 도와주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도움을 받아도 감사할 줄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여기 룻의 입장이라면 벼 이삭을 줍는 정도가 아니라 볏단 몇 개를 주어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룻의 반응을 볼 때 그녀는 참으로 겸손하고 자신의 위치를 아는 여인이었다.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그녀는 보아스의 배려 깊은 말을 받을만한 충분한 믿음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7. 보아스는 식사 시간에도 룻을 외면하지 않았다. 보아스는 룻이 편히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동시에 식사할 때에도 자신들과 함께 하게 해 주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