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독교 교회 순교자(martyr)로 알려진 집사 스데반(Stephen)은 주후 1세기 당시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면류관’, ‘왕관’, 또는 ‘화관’ 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구제를 위해서 뽑힌 신실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다(행 6:5).
오순절에 세워진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지도와 권고를 받아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및 니골라를 집사로 선택해 안수했다(행 6:5). 헬라파 유대인 집사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초대 교회의 신실한 성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었다(행 6:5,8).
예루살렘 초대교회 공동체가 팔레스틴의 히브리파 과부들만을 구제한다며, 이방에서 출생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지도자들을 향해 원망했다. 리버디노 출신들이 세운 회당에 속한 사람들과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주도해서 큰 다툼이 교회 공동체 내에 야기됐다(행 6:9). 리버디노 출신 성도들은 주전 5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유대를 토벌한 이후 로마의 노예로 팔려갔다 자유인이 된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구레네인은 지중해 건너편 리비아 북편 해안에 살았던 족속들이다(막 15:21). 알렉산드리아인은 북이집트에 있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살았고, 길리기아 사람은 소아시아 동부에서 건너온 자들로 그 수도(首都)는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이다.
집사 스데반은 각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회당을 모두 돌며,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거했다. 유대인들의 회당마다 신학적인 큰 변론이 일어났고, 그것을 단서로 집사 스데반에 대한 핍박이 범예루살렘적으로 시작됐다. 지금까지 들었던 성경 및 신학의 내용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 핍박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 집사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지혜와 성령으로 분명하게 대답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 없었다. 매우 해박하고 논리적인 집사 스데반의 답변에 대한 열등의식이 그들에게 반영됐다.
분노한 핍박자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매수하여 위증하도록 지시했다. 집사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교하게 뒤집어 놓았다. 집사 스데반이 나서서 그들의 영웅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거짓 증거하기도 했다. 유대인 최고의 선지자 모세가 전하여 준 율법(규례)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한 집사 스데반이 함부로 고쳤다고 산헤드린 공의회에 고소했다(행 6:11-14). 정통 유대인 핍박 자들은 뒤에서 사악한 흉계를 꾸미며, 장로 및 서기관들을 충동질하여 집사 스데반을 강제로 체포했다(행 6:12).
집사 스데반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령을 거슬려 선량한 선지자를 죽인 것처럼, 주후 1세기 사람들도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율법을 어겼다고 신랄하게 책망했다(행 7:51-53). 성령이 충만한 그는 죽어 가면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생명을 걸고 외쳤다. 미움을 가슴에 가득 품고 분노한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성 밖으로 끌어낸 다음, 돌로 쳐죽였다.
집사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크게 부르짖었다. 주후 1세기 당시, 로마 정부의 허가 없이 수행한 사형은 유대인에게 절대 금지된 불법 행위였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아리마대(Arimathea)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수습한 것처럼, 경건한 성도들이 순교한 집사 스데반을 조용히 장사지냈다.
집사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사건을 통해서 초기 유대교적인 좁은 테두리를 깨고, 이방인 지역에까지 범우주적으로 신흥 기독교가 전파됐다. 그의 거룩한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기타 이방 각지에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주적으로 전파했다. 집사 스데반의 순교는 결국 복음의 세계적 진출을 위한 놀라운 도화선이 됐다.
집사 스데반의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실패라는 생각을 불식하고, 사단에 매인 원수들의 패배를 만방에 선언했다. 집사 스데반의 헌신과 희생이 침체된 교회와 성도들을 일으켜 세웠다. 비록 스데반의 육신은 죽었지만, 그의 건강한 신학과 정신은 세계와 우주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지도자들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어떤 공동체도 활성화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의 씨앗을 통해서 침체된 공동체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은 준비된 지도자의 인품을 적극 사용해 작정하신 사역을 이룬다. 정치·경제 및 신앙공동체는 세워진 지도자의 역량만큼만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 땅에 세워진 공동체는 지도자의 인격과 성향을 적극 그대로 반영하며, 미래에 드러날 현재의 모습이 된다. 미래에 세워질 공동체의 모습은 지도자의 모습 및 성향과 동일하다. 한 국가의 미래는 국가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의 인품과 연결되고, 교회의 장래는 그것을 세워나갈 지도자들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제19대 대한민국 국회개원과 함께 여의도가 매우 시끄럽다.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인격과 인품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12월에 있을 대선에서 지도자를 선택할 때 우리는 지연, 학연 또는 혈연을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21세기에 세계를 이끌어 나갈 탁월한 지도자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돼야 한다. 집사 스데반처럼 공동체를 위해 몸과 마음과 생명마저 바칠 수 있는 헌신된 지도자를 우리는 기필코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