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교회를 옮기면 ‘개종(改宗)했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에서 이슬람이나 불교로 종교를 바꾸는 것과 같은 타종교로 적을 옮겼다고 여기는 것이다.
개신교는 유일신이신 ‘하나님’으로 부르지만 가톨릭에서는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의 ‘하느님’으로 의미가 다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같이 믿고 있지만 물과 기름이 혼합되지 않음 같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는 사용하는 성경이 다르다.
개신교에서 채택한 정경 66권 외에 가톨릭은 외경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개신교의 찬송가와 가톨릭의 성가는 유사한 것도 있지만 확연히 다르게 제작된 책이다.
그러나 개신교단 사이에서는 성직자들끼리 강단 교류도 자유스럽고 성도들의 교회 이동도 자유롭다. 타 교단 목사가 교파가 다른 교회라도 얼마든지 부흥회나 예배를 집전할 수 있다. 성경도 같은 성경을 사용하고 찬송가 역시 똑같은 것을 사용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파를 초월하여 동일한 성경과 찬송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선교 100년 동안 찬송가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1900년 이전에는 찬미가, 찬양가, 찬성시 등으로 여러 모양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전해진다.
새벽기도회를 시작한 한국교회 영성의 아버지로 여김받는 길선주 목사님의 1907년 대부흥운동에서 찬양을 통하여 강력한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이때의 영성이 김익두 목사로,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은혜받은 주기철 목사로, 주기철 목사의 성경학교에서 학생 신분이었던 손양원 목사로 이어지는 영성의 물줄기기 지속되어 왔다.
이 시기는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말살되는 절망과 혼란의 시기로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더욱 사모했고, 그 열기가 찬양을 통하여 활력을 얻게 되었다. 교회의 성령운동과 부흥의 역사에는 언제나 뜨거운 찬양이 전제되어 왔다.
기록에 보면 1908년부터 ‘연합찬송가’가 발간되었고, 24년간 초교파적으로 사용하던 ‘연합찬송가’를, 1935년 장로교에서 신편찬송가를 발행, 두 개로 나뉘고 분리되어 교파간 불편을 야기하고 불화의 불씨를 남겨 놓았으니 연합예배나 다른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혼란스럽고 불편했을 것이다. 이때 “장로교와 감리교의 권익의 알력으로 상처와 불신만 남기고 교파간 이권에 의하여 연합사업이 무너지는 안타까운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1949년 합동찬송가를 만들어 한국교회 사상 3개 교단의 통일된 찬송가를 발행하는 업적을 남겼고, 이 찬송가는 여러가지 결함이 발견되었지만 1967년 20판을 거듭하기까지 출판되어 오다가 1963년 장·감·성·기장 4개 교단 기독교연합회에서 찬송가 개편에 착수하여 1967년 12월 개편찬송가를 출간하게 됐다. 그래서 기존 ①합동찬송가 ②새찬송가에 ③개편찬송가 등 3개로 분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1973년 여의도광장 빌리 그래함 목사 부흥성회 당시 ①합동찬송가 ②새찬송가 ③개편찬송가 등 3개의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어 혼란스러움과 불편을 경험하면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성장과 부흥을 위하여 하나된 찬송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1974년 한국찬송가위원회와 한국찬송가합동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한국찬송가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찬송가 통일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 1981년 한국찬송가공회가 조직되었고, 1988년 558곡의 통일된 찬송가를 제작하여 2006년 21세기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사용됐다.
이같이 초교파적으로 찬송가를 발간하여 사용하게 됨으로 한국교회의 연합과 개신교단의 부흥 성장에 좋은 밑바탕이 되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범교단적 찬송가 통일사역은 ①수많은 교파가 하나로 연합하게 되고. ②교파별 연합예배에서 혼란과 불편을 해소하고 일치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교리 문답 첫째에서 ①사람이 존재하는 제일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찬양)하는 것이라 되어 있다.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 찬양 속에 놀라운 감격과 은총과 기름 부으심이 있고 찬양을 통하여 신앙의 활력을 불어넣고 영성을 새롭게 한다.
복음성가의 역할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 외에 보급되어 확산되기 시작한 복음성가들은 1970년대부터 폭발적인 성령운동과 부흥운동의 기름 부으심의 바탕이 되어왔다. 교회 내 학생수련회, 청년부 찬양예배, 문학의 밤 성경학교 등 행사에서 가스펠송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같이 놀라운 폭발력을 증폭시켜 왔다. 이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양장 표지의 찬송사 크기의 ‘복음성가’가 처음 나왔고 각 교회마다 각기 복음성가를 제작하기도 하고 ‘찬미예수 400’, ‘찬미예수 1000’, ‘찬미예수 2000’등 초교파적으로 통용되는 가스펠 찬양집이 홍수처럼 발간되기 시작했다.
어느 시대에나 찬양은 놀라운 은총을 동반하지만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부흥운동과 성도들의 중생과 성령 충만은 가스펠 찬양이 바탕과도 같았다고 보아야 한다. 찬양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과 죄 사함의 감격, 치유와 성령충만과 교회 부흥의 기폭제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리스도인이 영적 생활에서 활력을 얻고 승리하려면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과 권세가 담겨 있는 찬양의 열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교단개혁연(aogk.net)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