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종교가 과학을 인정하고 과학이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적으로 기도하여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 안에는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엄청나면서도 구체적인 이 편지의 결론을 기도의 능력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야고보서 전체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어떤 글입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져 있는 교인들을 붙들어주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그는 그러한 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낙심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책망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기만 하면 이미 응답받았을 것인데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고 포기 상태에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성도 생활의 모든 부분을 기도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기도만이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낙심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
야고보 사도는 신앙의 모든 것을 기도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침체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을 당했으면서도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빈손으로 서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기도가 되지 않을까요? 기도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오해는 특별한 사람이 기도해야 응답받는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야고보서 5장 17절 서두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와 똑같이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도 엘리야가 위대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놀랍게 사용되었던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만 듣고서도 그는 너무나도 겁이 나고 두려워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강한 하나님의 용사로 만들었습니까?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는 특별한 사람이 한다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은 대부분 예민하고, 소심하고, 자신감 없고, 쉽게 침체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오해는 기도의 엄청난 능력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내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인가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 기도의 효과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니 삼 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기도는 열쇠입니다. 작은 나라의 대통령을 면담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왕을 알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가 우리의 시간에 맞추어서 응답되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응답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면 그 시기와 방법도 믿어야 합니다.
기도의 어려움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첫째, 기도의 대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바른 기도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선한 일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육신의 눈을 뜨고 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기도하는 곳으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무엇을 두고 기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디까지가 내가 해야 할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나님이 하실 영역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을 알아야 기도를 하는데 그것을 모르니 아예 기도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내가 해야 할 영역과 하나님이 하실 영역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역이고 또 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나를 통해 성취하실 것입니다.
셋째,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한 마디 하면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처럼 성급하게 모든 일을 하셨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의 방법과 시기를 신뢰해야 합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바와 다르게 응답하실 수 있으며 거기에 하나님의 선한 뜻과 주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이름이 걸린 기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
신약 시대에 맺어진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은 성령이 교회에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부어진다는 것은 넘치게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의 등대는 감람유 기름통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져갈 때 새로 기름이 부어지면 등대의 불은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기름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기름인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약속인 성령이 우리 교회 위에 넘치게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고집과 편견으로 성령을 소멸시킬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계획들이 성령의 역사를 교회 안에서 몰아낼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불길은 점점 희미해지고 꺼져갑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교회에 성령의 강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열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행복한교회 최명일 담임목사
「기도가 전부이다」 저자